[이춘호기자의 푸드 블로그] 중국차 이야기(2)중국 황궁다법 이야기

  • 입력 2008-03-07   |  발행일 2008-03-07 제37면   |  수정 2008-03-07
소림사 쿵후, 찻상 위로 올라가다
황제용이라 잔에 손을 대지 않는다
유·불·선 정신 가미된 손동작 압권
[이춘호기자의 푸드 블로그]  중국차 이야기(2)중국 황궁다법 이야기
대나무 집게처럼 생긴 배사를 이용해 잔을 씻고 있다.

만물에는 다 기원이 있습니다.

중국 황궁다법(皇宮茶法)에 관련된 좀 더 깊숙한 얘기를 찾아다니던 중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습니다.

황궁다법에 중국 소림사 쿵후 품새가 섞였다는 겁니다. 우리의 다례와 달리 아주 현란할 정도로 동적입니다. 꼭 쿵후 시범을 방불케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 이야기를 하자면 당나라 2대 황제 이세민(재위 626~649)의 구사일생기를 대입해야 수긍이 갈 겁니다. 그가 사지(死地)에서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준 생명의 은인이 있습니다. 바로 소림사 승려들이었습니다. 이세민은 그 고마움을 갖은 보석 등 5가지 선물로 표했는데 그중 한 가지가 금색의 승복 착용을 허락입니다.

참고로 황제의 옷에는 12개, 왕의 복장에는 9개의 문장을 넣습니다. 면류관에 늘어뜨리는 구슬도 황제는 12개, 왕은 9개죠. 그래서 황제의 면복을 '12장복', 왕의 면복을 '9장복'이라 하죠. 황제는 황금빛의 '황룡포'를 입고, 왕은 붉은 '홍룡포'를 입죠.

그 일로 인해 소림사와 황실 사이에 '핫라인'이 개설됩니다. 소림사 승려가 졸지에 이세민 호위승으로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은 물론 전래의 황실 차문화까지 공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청·일전쟁에 지면서 황실다법도 용도폐기됩니다. 1960년대 문화 혁명기 때 차문화는 풍전등화 처지가 됩니다. 다인들의 수난시대가 시작됩니다. 이때 상당수 의식있는 문화예술인들은 숙청당합니다. 살기 위해 해외로 도망치는 차 사범들도 급증합니다.

그 한 흐름이 1943년 한국으로도 흘러들어옵니다. 서울 청파동으로 이주한 화엄대사는 소림사 쿵후는 물론 황궁다법 기능 보유자였는데 그 조카가 그 기능을 이어받습니다. 그가 바로 1993년 경주 보림선원 부설 다정원을 개원, 황궁다법의 명맥을 잇는 허주당 보원 스님입니다. 그는 68년 팔공산 동화사 선원에서도 쿵후를 가르쳤습니다. 황궁다법의 맥은 부산시 남구 대연동 한·중차문화연구회(원장 도림)로 건네지고, 대구에선 김경애씨가 지부장 겸 3대 전수자로 활동중입니다. 아이로니컬하게 중국이 뒤늦게 황궁다법을 배우기 위해 국내 황궁다법을 역수입하고 있답니다.

# 황궁다법 시연

지난해 5월 대구 EXCO에서 열린 국제차문화 축제에서 황궁다법을 지역에서 처음 선보였던 김경애 지부장이 종로 죽평다관에서 황궁다법의 대표격인 '다해작법(茶海作法)'을 선보였습니다.

그녀의 손동작은 마술사의 손동작 못지 않게 능수능란했습니다. 춤을 추듯 전·후동작이 대칭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좌우상하전후, 때론 시계·반시계방향으로 손과 팔을 돌리면서 기량을 맘껏 펼쳤습니다.

손동작만 무려 196가지. 모든 동작에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음양 오행사상과 유불선이 섞여 형성된 품새이기 때문입니다.

사용되는 차는 보이차류가 아니고 우롱차 같은 청차(靑茶) 계열입니다.

다구와 손동작의 이름은 의인화되거나 과장의 극치를 이룹니다. 용어도 유별납니다. 중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도기용 흙인 '자사(紫砂)'로 빚은 지름 60㎝ 둥근 찻상이 바로 '다해(茶海)'입니다. '차의 바다'란 뜻인데 차호 몸체를 놓는 곳은 큰섬(大島), 운대(뚜껑)를 놓는 자리는 작은섬(小島)이라 하죠. 다해는 작법의 주무대, 그 위에 깔리는 오방색의 다포는 옥성대(玉聲臺), 다관(茶罐)은 차호(茶壺), 잔(盞)은 배(杯), 잔받침은 배탁(杯托), 찬물은 매천수(梅泉水), 뜨거운 물은 용암수(龍巖水), 펄펄 끓는 물은 용천수(龍泉水), 상에 흘린 찻물을 닦는 데 쓰이는 첨궁(沾宮), 수구는 입구 넓이에 따라 설지·설병·설담, 차 담는 통은 차엽궁(茶葉宮)으로 불립니다.

특히 일반 다인들에게 가장 생소한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다림팔사(茶林八師)'입니다. 대나무 집게의 일종인 '배사', 말차 뜰 때 사용하는 차시처럼 생긴 '다합사', 차담는 차호는 '다엽궁사', 차칙은 다수사(茶收師), 거품 걷어내는 풍사(風師), 주전자는 주수자(注水子), 무릎을 덮는 수건인 슬건(膝巾)이 세트로 움직입니다.

황궁다법은 크게 3종류(다해작법, 개완작법, 문향품명배 작법)가 있습니다.

첫 순서는 헌향례입니다. 기제사 때의 '강신례(降神禮)'와 같은 의미입니다. 향을 피우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의 잡스런 기운을 정화시키는 의식이죠. 이때 황실 전통음악과 꽃도 깝니다.

옷도 팽주는 노란색, 사령(좌우 집사)은 붉은 색의 중국전통여성복 '치파오(旗袍)'를 입습니다. 특이한 예비의례 중 하나가 '향배(響杯) 돌리기' 입니다. 검지에 물을 묻혀 잔의 테두리를 돌려 청음을 피워올립니다.

다해작법은 예비절차와 본절차로 나눠져 20~40분간 집전됩니다. 본절차는 크게 6대 절차(잔이동·찻받침 이동·배사를 사용해 잔 씻기·주수자 다루기·차호 씻기·차 넣기·차 우려내기)로 나눠집니다.

배사 사용법도 황궁다법의 중요한 작법 중 하나입니다. 황제가 먹는 잔이기 때문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겠죠. 그래서 배사가 손가락 구실을 합니다. 집게 끝모양도 조금씩 다릅니다. 특히 찻물 담긴 잔을 들어 옮길 때 사용하는 배사 끝 부위는 찻물에 독이 들어간 걸 확인할 수 있게 은을 입힙니다.

잔 뚜껑 잡는 법도 황비익미(凰飛翊尾), 여래수인(如來手印), 오룡득주(五龍得珠) 등 5가지입니다. 특이하게 찻물을 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수구에 차호의 물대가 입수하듯 바로 꽂히는 걸 '패왕별희(覇王別姬)', 호를 높게 치켜들고 물방울이 점점이 수구에 떨어져 안개가 일도록 하는'비룡향진(飛龍香震)'입니다. 차호와 잔을 깨끗하게 씻는 절차는'가인세진(佳人洗塵)'. 찻물을 나눠줄 때도 봉황이 인사하듯 '봉황경배', 뱀이 사행하는 듯한 '장사진법', 비룡이 구름을 밟고 올라가는 '교룡운보' 등이 있습니다.

황궁다법에만 있는 또 하나의 절차가 '화룡토수(火龍吐水)'로 풍사로 물거품을 걷어내고 뚜껑을 닫은뒤 뜨거운 물로 차호를 데워 안과 밖 온도를 같게 해주죠. 잔은 동시에 64개까지 사용할 수 있고 다섯 잔이 일직선으로 놓일 때 가운데(土)가 황제용입니다.

개완작법은 차의 향과 기운을 뚜껑으로 덮어 두었다가 열어서 음미하는 작법으로 품새가 섬세하고 동작이 아름답습니다.


◇취재협조=죽평다관(053-256-0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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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서 시작, 좌우로 번갈아 가면서 뜨거운 주수자물로 잔을 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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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達)에 놓인 차를 다수사를 이용해 차호에 넣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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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을 천지인합(天地人合)의 품새로 개완작법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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