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푸드 블로그] 중국차 이야기(3)

  • 입력 2008-03-14   |  발행일 2008-03-14 제37면   |  수정 2008-03-14
"물과 가슴으로 닦아줘야 더 귀해집니다"
[이춘호기자의 푸드 블로그] 중국차 이야기(3)
의흥의 고급공예사 유근림의 가보 중 하나인 청나라 시형(枾形) 자사호. 현 소유자는 죽평 이경묵씨.

이번 중국차 기획 시리즈 아이디어를 제공한 죽평 이경묵씨(사진).

대구시 중구 종로 죽평다관 대표인 그는 중국차에 상당한 식견을 갖고 있는 명리학 전문가다. 그런 그가 자사호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 것은 2001년.

그는 중국차를 사러갔다가 의흥 현지에서 자사호와 인연을 맺는다. 의흥의 도공 오대생(吳大生)의 집에 한달간 머물며 수십 차례 자사호 제작과정에 참여한다. 2006년 봄에 또 의흥으로 건너가 55년 경력의 고급공예사 예순생(倪順生)의 견습생도 돼본다. 그 사이 그는 자사호 수입 업무를 보던 중 뜻밖의 명품을 손에 넣게 된다. 고급 공예사인 유근림(劉根林)과 배가 맞은 것이다. 유근림은 자기 6대조가 만든 감나무 잎 문양이 돋보이는 시형호(枾形壺)의 뚜껑을 그에게 닫도록 과제를 줬다. 이씨가 단숨에 닫은 것에 감동한 유근림이 인연이라면서 가보를 선물로 선뜻 내놓았다.

이씨는 현재약 20여점의 명품 자사호 등 200여종 1만여점의 자사호를 갖고 있다. 물론 자신이 직접 만든 죽평호도 있다. 요즘은 명품 문양을 중국에서 주문 생산도 한다.

그의 자사호 사랑법은 뭘까? 악기를 처음 사용하면 길을 들여야 하는데 이를 자사호에선 양호(養壺)라 한다. "신제품은 표면이 거칠고 투명하지 않다. 찻물로 자주 목욕시켜주고 다포로 자주 문지르고 맘때를 입히면 세월이 갈수록 반들거린다. 마음을 주면 준만큼 빛을 낸다. 제작자 열정 못지않게 사용자의 열정이 합심돼야 명품이 된다."


◇…자사호의 산지 중국 장쑤성 의흥

의흥(宜興).

중국 장쑤성 우시시 남쪽에 있는 자사호(紫砂壺)의 생산지죠. 자사호는 중국의 대표적 다기입니다. 보이차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자사는 자주색 모래흙, 그걸 반죽해 성형한 뒤 1천200℃에 구워내면 자사호가 되죠. 국내에서는 자사가 나지 않습니다. 일부 국내 도예인들이 자사호 제작에 도전하지만 아직 본토에 못 미칩니다.

의흥은 한때 '의흥(義興)'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송나라 태종 조광의(趙光義)의 이름자를 피하기 위해 '옳을 의(義)'를 '마땅할 의(宜)'로 고치면서 의흥(宜興)으로 정착됩니다.

요즘은 한국을 대상으로 자사호 체험투어 상품도 팝니다. 상점 옆 골목 안에는 작업장이 있습니다. 1인당 하루 10개 정도 만듭니다. 10년전만 해도 의흥은 꼭 강원도 탄광촌 같았습니다. 장작 대신 석탄을 사용하다보니 도시 전체가 분진 세례를 받습니다. 이젠 환경보호 차원에서 가스가마만 허용됩니다.

자사호는 중국 도기사에 획을 긋는 작품입니다.

출발점은 명나라 때(1505~1521). 강소성 의흥면 동남쪽 40리 밖 금사사(金沙寺)에 노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사를 갖고 차호 만들기를 즐겼습니다. 하지만 완성후 낙관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최초로 차호 밑바닥에 서명한 자는 명나라 의흥 출신인 공춘(供春)입니다. 그가 의흥 자사호의 창제자이죠.

◇…자사호 족보

자사호 작가도 등급이 있습니다. 국가급대사(최고 명인으로 현재 6명)-성급대사(인간문화재 수준으로 자사호를 한 경지 개척한 자로 자기 브랜드를 가져야 합니다. 세계적인 도자기 대회 및 중국 유수 대회 2등상 이상 경력)-성급명인(준 인간문화재급 2006년 현재 15명)-고급공예미술사(2006년 20명)-공예미술사(80명)-조리공예미술사-공예미술원(창작 못하고 손재주 있는 자) 순으로 내려갑니다. 자격증을 가진 자가 1천여명 이상이랍니다.

명인 족보도 챙겨둡시다.

공춘은 짙은 밤색 톤의 자사호를 즐겼지만 그의 작품이 이젠 워낙 귀해 가치를 따질 수 없습니다. 뒤에 '자사호 4인방'이 등장합니다. 바로 동한(董翰)·조량(趙梁)·원창(元暢)·시붕(時朋)입니다. 일명 '사가(四家)'로 불립니다. 사가에 이어 16세기말~17세기초 '삼대(三大)'가 나타납니다. 시대빈·이중방·서우천입니다. 이때 나온 자사호는 호박의 표면처럼 울룩불룩한 게 특징이었습니다. 일명 '남과호(南瓜壺)'입니다.

그 뒤를 이어 중국 4대명호 중 한 명인 혜맹신(惠孟臣)이 나옵니다. 바로 '맹신호'의 주인공이죠. 그는 독창적이어서 기존 호박형을 취하지 않고 둥글고 길쭉하고 납작한 걸 만들어 훗날 자사호 표준형의 기틀을 마련하죠. 17세기말~18세기말은 자사호 제2기로 '최고 위대한 의흥 도인'으로 불리는 진명원(陣鳴遠)이 '자연형 자사호 시대'를 엽니다. 제3기는 19세기초~19세기중엽, 이때는 문인과 도공이 의기투합하고 기하학적 문양이 등장합니다. 글과 그림이 자사호에 새겨지죠. 대표적 명장은 진만생(陣曼生)입니다. 그가 만든 걸'만생호'라고 하죠. 제4기는 19세기말~20세기초로 자사호가 상업적 흐름을 타며 대량생산됩니다. 명인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죠. 하지만 20세기초 자사호가 국제박람회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이에 자극받은 도공들이 다시 격조 있는 복고풍을 연출합니다. 이때 좌장은 왕인춘(王寅春)입니다.

◇…자사호 숨겨진 상식

자사는 원래 흙이 아니고 돌입니다.

주로 황룽산 등 55개의 광산에서 생산됩니다. 물론 광석은 그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기계용 쇳덩이처럼 노천에서 1년쯤 야적해서 풍화시킵니다. 그후 분쇄하고 체로 쳐 '자사니(紫砂泥)'를 만듭니다. 이 과정은 중국만 가진 원천 기술입니다. 참고로, 중국에선 우리와 달리 도공이 전 과정을 혼자서 하지 않고 협업과정을 거칩니다.

자사호는 열전도율이 높고 공기가 들락거리지 않는 '자기'와 달리 숨을 쉬고 열전도율이 낮은 '도기'입니다. 색깔도 다양합니다. 자색, 홍색, 검은 색, 푸른 색, 검붉은 색, 노랑 등이 기본색입니다. 이걸 섞어 모두 16가지로 불립니다.

호를 만들 때 몸통·받침·주둥이·손잡이·뚜껑을 따로 만든 뒤 결합합니다. 자사호 뚜껑엔 공기 구멍이 있습니다. 그 쓰임새를 알기 위해선 '삼수삼평(三水三平)'개념을 알아야 됩니다.

삼수란 출수(出水)·절수(切水)·금수(禁水)를 말합니다. 출수는 예상 지점에 물이 떨어지는 것이고, 절수는 물이 몸통으로 흘러내리지 않는 것, 금수는 뚜껑의 바람 구멍을 막으면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겁니다. 물론 조금이라도 나오면 불량품입니다. 명품일수록 주둥이와 뚜껑 사이에 틈이 없습니다.

삼평이란 물대 끝·몸통의 전(입구)·손잡이의 끝이 수평을 이루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기능상의 문제가 생깁니다. 물대 끝이 몸통의 전 높이보다 높을 경우, 다관을 많이 기울여야 물이 나오고 이때 전을 통해 찻물이 몸통 밖으로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취재협조=죽평다관(256-0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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