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서울 인사동 거리 먹거리 이야기

  • 입력 2008-03-28   |  발행일 2008-03-28 제37면   |  수정 2008-03-28
"이 거리 최고의 후식은 골목산책입니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서울 인사동 거리 먹거리 이야기
인사동의 터줏대감인 남도식 한정식 사천.

# 중국산 물건에 포위된 인사동 거리

이번주엔 국내 외국 관광객의 대표적 쇼핑거리로 변모한 서울 중구 인사동 거리를 다녀왔습니다.

히피·퓨전의 거리,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죠. 서울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종각역에서 내리면 됩니다. 3번 출구로 나와 300m 정도 동대문 방향으로 걸으면 종로2가 네거리가 나옵니다. 왼쪽으로 돌면 인사동 거리의 남쪽 입구가 보입니다.

현재 갤러리, 전시관 등 문화예술 관련 업소만 556개소, 전체 업소의 34.6%를 차지합니다. 상가번영회는 인사동 전통문화보존회(02-737-7890)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토·일요일은 차없는 거리로 변합니다. 2002년 서울시 조례에 의해 인사 문화지구로 지정돼 두 군데의 인사관광정보센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인사동이 문화거리라고 하지만 한국적 맛을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돈에 눈먼 상혼이 한국혼을 집어삼키고 있는 거죠. 상당수 리어카 부대와 보부상처럼 떠도는 번개상인이 가진 물건 상당수는 값싼 중국산입니다. 티베트 장신구도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오후 1시쯤, 남쪽끝 파고다 유료주차장 내 캠프를 이루고 있던 리어카 부대가 전투현장으로 이동합니다. 요즘 이들 중 가장 인기 좋은 게 한 개 700원짜리 옥수수 찹쌀 호떡이라네요. 털보네 호떡인데 체인점입니다.

인사동에서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훔쳐봤습니다.

임금 간식거리의 하나인 꿀타래를 라이브 공연처럼 즉석에서 만드는 5명의 총각들입니다. 실타래를 연상시키는 꿀타래는 말랑하고 덩이진 엿 복판에 나무송곳으로 구멍을 내 목걸이처럼 만든뒤 이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실처럼 만드는 겁니다. 수가 늘어날 때마다 가닥끼리 안 붙게 옥수수 전분을 묻힙니다. 이 총각들은 손님과 쌍방향 대화를 유도합니다. 2를 14번 곱한 숫자인 1만6천384가닥이 될 때까지 개그에 가까운 우스개 멘트를 날리는데 꼭 라이브 공연 같습니다. 마지막에 명주실처럼 변한 꿀타래를 거물망처럼 펼쳐보여줍니다. 기네스 묘기 같은 현란한 동작, 여기저기서 손님들의 탄성이 터져나옵니다. 10개 5천원.

이 버전이 곧 대구 동성로에도 조금 상륙한 것 같습니다. 이젠 맹목적인 호객 작전으론 물건을 팔기 어렵습니다. 상품에 '문화적 이벤트'를 코팅해야 됩니다. 다시말해 '스토리'가 있어야죠.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를 '펀(Fun) 마케팅'이라고 합니다. 어느 광고 문구처럼 주인이 '쇼를 해야' 물건이 잘 팔린다는 말입니다.


# 인사동에서 발우공양을 경험하다

너무 많은 식당이 있어 어느 집에 들어가야 할 지 헷갈릴 겁니다. 상당수가 민속주점형 식당입니다. 맛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족보있는 식당은 관광객에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오래된 한정식 집은 일명 '이모집'으로 불리는 '사천(734-5798)'. 뜨내기 손님은 없습니다. 거의 단골이죠. 1967년 문을 열었습니다. 주인 이정애씨는 작곡가 이봉조의 친누님이라서 한때 이봉조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알려지기도 했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역대 대통령이 다 거쳐갔습니다. 근처에 옛 민정당사가 있어 '정객의 구내식당'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음식은 남도식이며 일반 정식(6천원)과 함께 불고기 정식이 인기입니다.

후발주자인 산촌(735-0312)은 1980년 문을 연 국내 첫 사찰요리 전문점. 동양화가이기도 한 정산 스님(62)이 주인입니다. 식당 내부가 꼭 법당 축소판 같습니다. 300개 이상의 장아찌 통이 설치미술처럼 입구에 진열돼 있습니다. 불빛의 조도가 아주 낮아 음식 맛을 더 돋웁니다. 동절기엔 뜨끈한 대리석 바닥이 엉덩이를 편하게 해줍니다. 식탁 위에 연등이 달려 있습니다. 식기는 스님들이 발우공양 때 사용하는 목기입니다. 수저까지 나무라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매생이죽에서 디저트 유과까지, 모두 20여가지 먹거리가 나옵니다. 원추리, 산초 장아찌, 식해로 만든 김치, 중국에서 향차이로 불리는 비릿한 향기의 고소나물도 맛볼 수 있습니다. 부침개도 여느 집과 달리 주문 즉시 조리가 시작됩니다. 매일 오후 8시 전통음악 공연이 있습니다. 1인분 점심은 1만9천800원, 저녁은 3만5천200원.


# 그밖에 가볼 만한 맛집

12가지 고명이 들어간 황해도식 만두와 사골 육수가 만만찮은 도가니탕(6천500원)을 맛보려면 '사동면옥(722-5199)'이 딱입니다. 31년 역사. 주인 송점순씨(66)도 인사동 주당들에겐 '해장국 아줌마'로 통합니다. 찻집으로는 한옥 마당 위 빈공간을 아크릴로 덮은 '아름다운 차 박물관(735-6678)'이 기억에 남고, 집 담장에 홍익문고의 거리문고가 있고 입구가 대숲인 퓨전 한옥의 아리랑가든(720-1141)은 남도식이며 1만원짜리 정식에도 날이 서있습니다.

13년 역사를 가진 툇마루집(739-5683)은 된장 비빔밥의 전도사, 여기 된장 육수는 멸치와 띠포리(밴댕이 사투리)를 3~4시간 끓여 만듭니다. 정식은 6천원.

인사동 3길은 '웰빙푸드 골목'으로 불립니다. 콩·두부·비지가 맛있는 지리산(723-7213·정식 1인분 1만3천원), 약초 위주의 대표적인 채식 레스토랑인 '디미방(720-2417)'은 소금 대신 염전에서 자라는 풀인 함초로 간을 맞춥니다. 26년째 야생초 전문가로 살고 있는 권정연씨가 문을 연 야생초 전문점 '뉘조(730-9301)'도 약선식의 신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인기 아이쇼핑 코스는 '달팽이 쇼핑로'로 유명한 쌈지길 쇼핑센터로 가보세요. 걷다보면 커피와 분식을 먹을 수 있는 하늘 정원에 도착합니다. 광장에 떡메 치는 총각과 즉석 강정 코너가 손님을 몰아주는 촉매입니다.

인사동의 낮엔 밥집의 맛, 밤엔 술집의 멋이 핵이죠. 밤의 인사동에서 가장 풍류가득한 곳은 단연 백천의 소리마당(732-4866)입니다. 주인 백천은 사이먼 카펑클 히트곡을 오리지널 버전으로 연주해줍니다. 콩나물국이 특히 맛있으며 예약하면 휘파람 명인 박덕만씨가 서부영화 '황야의 무법자' 주제곡을 휘파람으로 연주해줍니다. 양식 마니아들이라면 가격은 세지만 인사동을 빠져나와 청와대 가는 삼청동길 국립민속박물관 맞은편 국제 갤러리 2층 'The Restaurant(735-8441)'를 꼭 챙겨보세요. 이미 검증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며 갤러리 레스토랑 중에선 최고급. 일반인이 가면 당황할 정도로 음식 주문 절차가 디테일하지만 그게 바로 격과 수준을 말하죠. 판박이 레시피를 단호히 거부하는 창조적 레시피가 혀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서울 인사동 거리 먹거리 이야기
국내 첫 사찰요리 전문점 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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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입구가 운치있는 남도식 한정식 아리랑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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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녹·홍차 빙수가 별미로 유명한 아름다운 차 박물관. 퓨전 한옥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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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레시피가 압권인 삼청동 국제 갤러리 2층 이탈리안 레스토랑 The Restau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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