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푸드] 와인야담(1)-애호가 5인 그룹인터뷰

  • 입력 2008-04-04   |  발행일 2008-04-04 제38면   |  수정 2008-04-04
"대구에서 와인엑스포 열자"
지역와인을 건배주로
[와인&푸드] 와인야담(1)-애호가 5인 그룹인터뷰
위클리포유가 마련한 와인야담 그룹인터뷰 참석자가 수성아트피아 테이블 13 별실에서 '대구 와인 최고'를 기원하는 건배를 하고 있다.

와인은 다분히'제국주의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그 종류도 워낙 광대무변해 입문자를 주눅들게 한다. 솔직히 "와인을 아느냐?"는 질문은 "재즈를 아느냐?"는 질문과 비슷하다. 안다고 하면 일단 '문화적 품격'을 인정받고 속물이 아니란 걸 지인들에게 은근하게 각인시킨 셈이다. 상당수 입문자는 '폼생폼사(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 단계에서 끝난다. 제대로 알려면 평생 걸리겠지만 병 열고 먹는 법만 익히려면 하루만으로도 충분하다. 겁낼 것 없다. 물론 모든 와인을 다 맛본 사람도 없다. 그래서 와인 앞에서는 누구나 아마추어, 단지 와인족 사이에서 고수와 하수가 갈라지겠지만. 와인을 모르지만 입문하면 곧 해소된다. 하지만 그 주눅 뒤에 '마니아의 오만'으로 왜곡되면 곤란하다.

이번주부터 격주로 '와인야담(Wine 野談)'이란 와인 스페셜 코너를 게재한다. 와인과 음식이 어우러진 가운데 와인 고수들의 'X파일급 한수'를 챙겨볼 작정이다. 지난 달 21일 수성아트피아 내 와인 전문 레스토랑 테이블 13에서 2003년산 이탈리아 레드와인 브리코디 부소(Briccodi Busso)를 곁들여 식사를 하면서 그룹 인터뷰를 가졌다. 여태룡 <주>세계주류 회장, 허백영 인비노 대표, 이건희 락선 매니저, 윤정희 까브 대표, 자리를 주선한 홍재만 테이블 13 대표가 참석했다.

에티켓 없다고 내치면 대구 와인시장 경색

세계육상선수권대회때 지역와인을 건배주로

여태룡=처음부터 와인을 아는 사람은 없다. 아는 쪽에서 모르는 이를 먼저 배려해야 된다. 와인 에티켓이 없다고 자꾸 내치면 대구 와인 시장도 경색될 수밖에 없다. 와인 전문가라고 하지만 이건 모르는 사람보다 좀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수준으로 봐야 된다.

한 친구는 죽어도 소주만 고수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와인을 모른다고 핀잔주면 안된다. 소주도 존중해야, 언젠가 그도 와인 곁으로 다가선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서울은 당연히 세계 각국 외교관이 산재해 있어 자연스럽게 고급와인문화가 정착될 수 있지만 지방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이제 제대로 된 와인 매니저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적절한 대접이 있어야 한다. 매니저 역시 오픈 마인드를 갖고 더 깊은 와인세계로 자신을 밀어넣어야 한다. 좋은 매니저가 충분하게 배출되지 않으면 업소간 매니저 스카우트 붐이 일어나 지역 와인시장을 교란시킬 우려도 있다. 지역의 기관 단체장들의 와인 마인드가 그렇게 높지 않은 것 같다. 2011년 대구에선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굳이 외국산 와인이 아니더라도 청도와 영천 지역의 향토 와인이 리셉션 건배주로 애용됐으면 좋겠다.

모르는 것 솔직히 밝히는 고객이 더 친근해

와인바 룰 지켜줘야 와인바 위상 올라가

이건희=요즘 속 상하는 일이 많다. 일부 고객의 무례한 처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와인바란 일반 술집과 다르다. 와인바에 맞는 룰을 존중해야 와인바의 위상도 올라간다. 물론 건전한 고객이 90% 이상이지만 일부 고객의 경우 문화적 수준은 상당히 높지만 와인 에티켓은 빵점이다. 특히 지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수십만원대 고가 와인을 자랑한답시고 가져와서 기본 음식만 시킨 뒤 주인한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먹는다. 와인을 개봉하고 따르는 과정에 필요한 봉사료조로 설정된 '코키지(Corkage) 차지'관례도 무시한다. 일부 손님은 전작으로 몇 차 한뒤 와인바에선 자기 좋아하는 안주를 다른 업소에 시켜 먹기까지 한다.

"부부싸움한 뒤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왔는데 아직 와인에 대해 잘 모르니 가격대비 괜찮은 음식을 추천해줬으면 좋겠다"고 정중하게 물었다. 이런 부류의 고객은 우릴 감동시킨다. 순간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받았다. 모르는 것을 솔직히 밝히는 그분의 인격에 공감이 갔다. 하지만 아직 이런 손님은 태부족이다. 다들 많이 아는 것처럼 폼잡는 데 익숙하고 누구한테 '와인맹'이란 지적을 받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마니아처럼 행세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업소 매니저는 사장의 지시를 받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손님에게 무조건 고가 와인을 강요한다.

베테랑 매니저, 대구보단 서울 선호해 아쉬워

대구는 '코키지'에 인색, 와인문화 활성화 걸림돌

허백영=나도 코키지 차지에 인색한 손님들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구입한 고가 와인을 갖고 온 뒤 친구들과 즐기는 건 맘껏 하면서 와인바 경영에 필수불가결한 코키지 차지를 절대 낼 수 없다는 분들을 만나면 숨이 막힌다. 1만~2만원대 코키지 차지는 깨어지는 고가 와인잔 손실비용은 물론 병을 여는 종업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같은 건데 그걸 부정하면 와인문화도 사라진다.

아직 대구에선 최상의 매니저는 몇 명 안되는 것 같다.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매니저군이 형성되지만 대다수 대구보다는 서울로 올라가려고 한다. 올라가면 고향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안정된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일단 와인문화 활성화를 위해 대구만의 지역색이 가미된 대구와인엑스포 같은 걸 대구음식박람회와 연계해 꾸려나가보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많이 배운 마니아들이 의외로 유통시장 교란 |

초·중급 교육뿐 아니라 고급자 위한 교육도 필요

윤정희=본질적으로 소비자는 비싼 걸 싸게, 공급자는 싼 걸 비싸게 받고 싶어한다. 문제는 많이 배울수록 유통시장을 교란시키려고 한다. 레스토랑에 가서 대표를 안다는 것만으로 코키지 차지도 챙기지 않고 자기가 갖고 있는 와인을 맘대로 먹는 곳을 와인바로 알고 있는데 이는 정말 후안무치한 처사다. 마니아들은 와인 가격을 거의 꿰뚫고 있다. 그래서 와인바 와인도 자기 맘대로 결정하려고 한다. 물론 이런 마니아들 때문에 공급자들이 와인값을 맘대로 부풀릴 수 없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지역 마니아들은 와인에 대해 이중적이다. 서울의 유명 호텔과 강남 와인바에선 그들이 원하는 코키지차지와 가격을 존중하면서도 대구에만 오면 무조건 싼 걸 요구하려고 한다. 초·중급자를 위한 와인교육시스템은 충분한 것 같은데 아직 고급자를 위한 과정은 미비한 것 같다. 앞으로 국제적 행사에 향토 와인을 내밀어 경상도 와인문화를 창출할 때다.

좋은 것에 비용 아끼지 않는 것이 진짜 에티켓

와인상식 결코 안어려워 아직 상당수는 폼만잡아

홍재만=황당한 손님을 종종 만난다. 하지만 우리로선 내색하기 어렵다. 잘 배우는 것 이상으로 잘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처음부터 너무 고급 수준만 강요해선 안된다. 우린 와인교육을 너무 강요하지 않는다. 일단 해당 와인에 맞는 음식을 잘 드시는 방법부터 알려준다. 한 개를 알고 나면 두 가지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더 깊게 들어가다보면 프랑스 등지로 와인유학까지 떠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입문자 모두 소믈리에가 되는 건 아니다. 일반인들이 알아야 될 와인 상식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일부 마니아가 와인을 부담스러운 존재로 부각시킨 점도 있다. 문제는 아는 게 아니고 먹는 법이다. 아직 상당수 폼만 잡는 수준이고 현장 노하우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 같다. 좋은 것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 그것도 에티켓이다.

◇취재협조=수성아트피아 테이블 13(053-763-3771)

참석자들이 좋아하는 와인

여태룡= 프랑스 레드와인 샤토 휘지약(Ch. Figeac)

이건희=이탈리아 화이트와인 엘 칼리에(El Calie)

허백영=칠레 레드와인 코얌(Coyam)

윤정희= 이탈리아 레드와인 리바이야(Rivaia)

홍재만=이탈리아 로제스파클링 브라게토 다퀴(Brachetto D'aque)

[와인&푸드] 와인야담(1)-애호가 5인 그룹인터뷰
[와인&푸드] 와인야담(1)-애호가 5인 그룹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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