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푸드] 와인야담(4)- 향토와인 순례 '영천과 청도'

  • 입력 2008-05-16   |  발행일 2008-05-16 제38면   |  수정 2008-05-16
"경북, 대한민국 와인1번지입니다"
[와인&푸드] 와인야담(4)- 향토와인 순례

◇…영천, 와인특구로 지정됐네

전국 제1의 포도재배단지가 혹시 어딘지 아십니까?

영천입니다.

영천이 타 지역에 비해 비가 적게 오기 때문에 대규모 탄약창도 들어설 수 있었던 가 봅니다. 요즘 와인 관계자들은 영천을 '한국의 보르도'로 부릅니다. 물론 포항시 청하면도 강우일수가 적어 포도재배 적지입니다. 하지만 세계 와인 지도에는 아쉽게 거기가 빠져 있습니다. 특히 화남면에는 기존 저당도의 캠벨(시중에서 보는 일반 포도)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고당도(16~21도)인 적포도 M.B.A(종자는 일본에서 수입)가 자라고 있습니다.

영천을 국내 와인 1번지로 만든 산파역이 있습니다. 바로 영천농업기술센터입니다. 지난해 5월 '영천와인산업선포식'을 거행했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해 2월 영천시는 경북대 생물건강·농업생명융합형 인재양성사업단(NURI)과 공동 주관으로 '지역와인산업의 활성화 방안 심포지엄'까지 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해 8월 농림부가 클러스터 사업을 공모했고 영천이 신청해 그해 12월 와인특구로 지정됩니다. 3년간 정부가 지원을 해줍니다. 일단 영천 내에 모두 15개의 와이너리(양조장)를 만들 건데 와이너리는 공장·마을·농가형으로 특색있게 꾸밀 모양입니다.

강원도 횡성이 한우와 복분자 와인을 발빠르게 관광상품으로 매치하듯 영천도 도남 한우숯불단지와 연계 '와인 & 한우'를 콘셉트로 부각시키면서 와인투어 상품을 팔면 되겠죠. 한발 더 나가 보현산 천문대 별빛마을까지 끌고와 '별빛와인'으로 내밀어도 될 겁니다.

현재 영천에는 2개의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경북대 김재식 박사가 2003년부터 이끌고 있는 경북대 포도마을, 한국 1호 와인인 마주앙('마주앉아서'란 뉘앙스를 가진 우리말) 양조책임자였던 하형태 대표(54)가 운영하는 (주)한국와인(www.vincoree.com)입니다. 상당한 양조술을 축적한 한국와인은 지난해부터 와인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주자는 '벵꼬레(Vin coree·불어로 한국와인이란 뜻)', 국내 최고의 와인 양조 전문가답게 그가 만든 레드와인 벵꼬레는 맛과 향에 날이 서 있어 현재 국내 대표 레드와인으로 등극했습니다. 이밖에 캠벨을 원료로 한 화이트 와인 로제, 단맛이 강한 무가당 아이스 와인 등도 출시했습니다.


◇…국내 첫 와인 마주앙의 포도원은 포항시 청하

마주앙 얘기를 하기 전에 잠시 국내 와인의 뒤안길을 들춰 볼까요.

다들 국내 와인 1호를 마주앙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국산 와인 1호는 1974년 태어난 해태 '노블와인'입니다. 이에 앞서 67년 애플와인 '파라다이스'도 있었지만 이건 사과주의 범주를 못 벗어났습니다. 노블와인은 흥미로운 탄생 비화를 갖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의사당 정면 해태상 밑에 와인 72병이 묻혀 있는데 그게 바로 노블와인입니다. 75년 타임캡슐처럼 땅속에 파묻혔고 꼭 100년 되는 2075년에 개봉될 예정입니다. 해태그룹이 국회의사당 이전 신축 때 화기를 누르기 위해 불을 잡아먹는 상징의 동물인 해태상을 건립했죠.

그렇지만 노블와인은 마이너급 국산 와인의 효시였고 정통 와인 1호는 3년 뒤에 나온 마주앙이란 평가입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국내 포도산업 발전에 일조했습니다. 그는 식량 부족에도 불구하고 상당량의 곡류가 술을 빚는데 소요된다는 사실을 알고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는 포도를 심을 것을 장려했습니다. 이런 시책에 따라 당시 동양맥주(지금의 두산)는 73년 국내 최초로 독일로부터 리슬링 등 우수 양조용 포도 품종을 도입, 독일의 라인·모젤 지방과 비슷한 기후와 토양을 가진 영일군 청하면에 포도원을 조성합니다. 77년 5월 마주앙 레드와 화이트가 태어납니다. 부푼 가슴을 감추지 못한 박 대통령은 신부와 수녀 10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와인 시음회를 갖습니다. 대체적인 평가는 화이트는 세계수준급, 레드는 보강할 점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마주앙은 계속 정제됐습니다. 시판과 동시에 천주교 미사주로 봉헌됩니다. 87년 12월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로부터 '신비의 와인'으로 격찬받았고 독일 가이제하임대에서 열린 국제 와인 세미나에서 세계 5대 우수 와인으로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87년 수입 개방에 따라 마주앙의 위상은 급락하고 국산 와인 생산도 중단되고 맙니다. 10년전 두산에서 독립해 나와 영천에서 한국와인을 세운 사람이 바로 하형태 대표입니다.


◇…청도의 대표와인 감그린

하 대표의 기술력은 국내 만찬주의 신지평을 연 (주)청도와인의 감그린 양조 과정에도 스며들어갑니다. 다들 포도만으로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게 아니라 가장 한국적 과일인 감으로도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역발상을 일으킨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하상오 청도와인 대표(49)입니다. 감그린은 청도의 명물 반시(감이 쟁반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로 만든 황금빛 화이트 와인입니다. 레드와인에서만 맛볼 수 있는 떫은 탄닌 성분이 화이트 와인에서 느낄 수 있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와인 마니아는 그냥 감그린이 감으로 만든 과실주 정도로 치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 대표가 특유의 비즈니스 파워를 발휘해 2005년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만찬주로 선정되도록 해 유명세를 탑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특수를 더욱 부채질하기 위해 지어진 지 100년 넘어 폐쇄된 경부선 철도 터널을 와인 저장고로 활용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거기서 색소폰 공연도 유치하고 시음도 하고 구매도 할 수 있는 '와인터널카페'를 만들어 전국적 관광명소로 둔갑시켜놓았습니다.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사진=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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