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푸드] 와인야담(7)- 향토와인 순례 '김천의 자두·포도와인'

  • 입력 2008-06-13   |  발행일 2008-06-13 제42면   |  수정 2008-06-13
"와인, 직지사 산채정식과 지례 흑돼지 묶는다!"
50여년 역사의 덕천포도원…신품종 포도 개발 박차
[와인&푸드] 와인야담(7)- 향토와인 순례
덕천포도원에서 생산한 와인류.

얼마전까지만 해도 김천을 먹여살리는 건 달랑 직지사 하나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혈기방장한 박팔용 전 시장이 나서 발전적인 밑그림을 그려놓기 시작했고 박보생 현 시장이 블루오션 마인드를 갖고 농촌형 원스톱 관광상품을 연이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부터 주말 가족 별빛 여행인 '김천직지 나이트투어'도 가동했습니다. 이 상품은 직지사와 김천의 새로운 관광명소인 직지문화공원, 그리고 지역 먹거리를 엮은 문화관광상품으로 토요일 오후 5시30분~ 밤 9시까지 열립니다. 직지공원의 명물인 음악분수쇼를 본뒤 미리 받은 3천원짜리 전통시장 상품권을 갖고 제철 농특산품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하네요. 1인당 참가비는 1만원(어린이는 5천원)입니다. 먹거리 중에는 김천의 대표 와인인 김천대 향토식품개발원에서 만든 자두와인과 덕천포도원에서 내놓은 포도와인(자연드림)도 있습니다. 그동안 직지사 하나만 갖고 밋밋했는데 볼·먹·즐길거리를 한 공간에서 해결하고 싶었던 겁니다. 물론 김천의 으뜸 먹거리 중 하나인 산채정식과 지례 흑돼지도 가세합니다. 현재 흑돼지의 경우 지례면 10여농가에서 각각 2천~3천마리씩 사육하고 있으며, 80kg짜리 한 마리당 35만원선에 거래됩니다. 지례 흑돼지 맛을 보려면 지례면 교리 20여곳의 흑돼지 전문식당에 가면 됩니다. 흑돼지와 김천와인은 찰떡궁합, 그것도 홍보 포인트이겠죠.


한국의 3대 포도산지는 영천, 김천, 충북 영동입니다.

많은 분들은 김천이 '포도의 고장'이란 사실을 잘 모를 겁니다. 이곳 포도 재배면적은 2천218㏊, 연간 4만t으로 전국 생산량의 13%, 5천여 농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2006년 재정경제부가 앞장서 김천 봉산(덕천리)·대항면(덕전리)을 포도 특구로 만들었습니다. 통상 특구사업을 추진하려면 각종 규제때문에 사업이 제 방향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이 특구에선 자치단체장이 각종 규제를 받지 않고 맘껏 사업을 펼치게 만들었습니다.

일단 생식용 포도 대신 포도가공상품과 포도 농장을 체험투어 상품으로 만들 작정인가 봅니다.

생식용 포도만 갖고 승산이 희박하죠. 어민들이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가듯 포도농가도 돈이 더 되는 포도즙, 포도잼, 와인 등 가공상품을 생산하자는 취지입니다.

또한 체험형 프로그램도 많이 개발했습니다.

대항면 반곡마을에선 전국에서 처음으로 산책이 가능한 400m 3색 컬러 포도 터널도 만들고 있습니다. 직지사 근처 직지농협에선 김천포도회 주도로 김천포도특구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을 통해 김천에서 생산되는 모든 포도를 한 자리서 맛보게 할 계획입니다.

김천은 특히 한국 거봉 1번지입니다.

20년전 일본을 통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거봉을 퍼트렸습니다. 그 주역 한 분이 현재 김천에선 유일한 포도와인 생산 공장인 봉산면 덕천리 덕천 포도원에 살고 있습니다. 이 포도원을 개척한 올해 여든의 김성순옹을 만나러 갔습니다. 농원 초입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일본에서 온 25년된 청포도 로자리오 비앙코였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산신령처럼 흰 수염을 기른 김옹은 가톨릭농민운동에도 간여한 지사적 풍모의 연구형 농부입니다. 지역은 물론 전국 포도인 사이에 '포도박사'로 통합니다. 아들 태연씨 내외가 대를 이어 포도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김옹은 60년 김천시 다수동에서 포도농사를 지었고 71년 현재 자리로 이전했습니다. 김옹은 오랫동안 한국포도회 회장으로 한국 토질에 맞는 고당도 포도를 개발하기 위해 50여년간 100여종의 묘목을 시험개발중입니다. 아들 태연씨도 일본으로 건너가 포도가공 노하우를 배워왔고 그걸 토대로 99년부터 농민주 면허를 받고 포도와인을 생산했습니다. 처음에는 정통 와인 수준은 아니었죠. 8개월 숙성시켰지만 아직 포도주 수준이었습니다. 초창기엔 포도주를 만들어 맥주병에 넣었고 포도즙은 음료수병에 넣어 한살림 등을 통해 유통시켰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포도주를 고급화했습니다. 드라이와 스위트 두 종류인데 드라이 자연드림은 750㎖ 2만원입니다. 김옹은 "한국와인과 수입와인을 단순비교하면 한국 와인의 미래는 없다"면서 차별화 전략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그가 한국 와인 산업의 비화 한 토막을 알려줍니다.

80년대 중반 전두환 대통령이 와인산업의 중요성을 감지하고 '국내 과실주 10개년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전국에 5개 와인공장이 추진됐습니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 과정에 외국 관광객에게 한국 와인의 저력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선진국에 진입하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전 대통령은 대뜸 와인시장을 개방해버리고 과실주 프로젝트는 백지화를 선언했습니다. 전국 포도재배농민들이 발끈, 김천역 광장에 몰려와 시위를 했습니다. 그때 와인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켰더라면 지금처럼 '수입와인 천하'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백건우·윤정희 부부도 마셨다"…김천대 향토식품개발연구원을 찾아서


자두가 변비 예방에 좋다고 하죠.

김천은 전국에서 자두가 가장 많이 생산됩니다. 1천203㏊에서 전국 생산량의 18%인 연간 1만2천400t이 생산됩니다.

그런데 자두는 가지에서 떨어져나온 뒤 실온 보관 기간이 채 열흘도 안돼 생식용보다는 가공용이 더 생산적이었습니다.

국내 자두 가공산업의 산파역은 98년 설립된 김천대학 부설 향토식품개발연구원입니다.

지난 4월 한국식품영양과학학회지에 '자두와인의 섭취가 흰쥐의 지질대사 및 지질과산하에 미치는 영향'이란 공동논문을 발표한 윤옥현 원장은 자두로 갖고 다양한 상품을 만드는 데 올인했습니다. 기자가 연구원을 방문한 날도 흰쥐를 갖고 자두와 변비의 상관관계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와인 시음실 전시대에는 자두로 만든 별의별 상품이 다 진열돼 있었습니다.

자두젤리, 자두떡, 자두식초, 자두 비누와 화장품, 자두차, 자두 캔디 등까지 개발해놓았습니다. 대구국제공항에 가면 자두와 포도 젤리를 맛볼 수 있는데 설탕이 많이 달라붙어 있는 여느 젤리와 달리 자연의 맛이 인상적입니다.

연구원은 2003년부터 자두와인을 출시했습니다. 자두와인도 청도 감와인처럼 국제와인시장에서는 생소하죠.

2006년 87회 전국체전 공식 건배주로 사용됐고, 김천에 공연을 온 세계적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아내 윤정희씨가 김천의 한 횟집에서 자두 와인을 맛보고 새콤달콤한 맛에 비상한 관심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자두는 당도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10브릭스 이하입니다. 국제시장에 통용되는 고급와인이 되기 위해선 적어도 13브릭스가 넘어야 되는데, 그런 와인을 만들려고 하면 김천에서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라는 20브릭스 이상 고당도를 가진 서양자두인 '푸룬(Plune)'을 도입해야 된다고 합니다. 참, 김천의 강수량은 연간 1천200㎜인데 전국에서 맨먼저 도입한 비가림 시설 덕분에 고당도 과일을 만들 수 있는 노하우가 풍부합니다. 특히 3년전 전국 최초로 체리까지 시설재배되고 있습니다.

자두 와인은 어떻게 만들까요.

포도와 달리 일단 붉은 빛의 자두를 으깨지 않고 씻은 뒤 착즙해서 과육은 버리고 즙만 영하 30℃에서 냉동보관, 필요할 때마다 사용합니다. 자두와인을 만드는 효모도 자체 개발해 특허를 받았습니다. 자두밭에서 추출한 자두효모 'P7'을 3번 배양한 뒤 3개월간 숙성조에서 숙성시켜 병입작업을 합니다. 자두는 특히 햇살에 약합니다. 자칫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녹색병을 사용하더군요. 와인은 평균 14~18℃에서 보관합니다. 처음에는 수입 오크통에서 숙성을 했는데 실패율이 높아 현재는 스테인리스스틸 숙성조를 사용합니다.

[와인&푸드] 와인야담(7)- 향토와인 순례
김천대 자두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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