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블로그] 맛집 유감

  • 입력 2008-06-20   |  발행일 2008-06-20 제38면   |  수정 2008-06-20
요즘 음식 꼭 '조립식 주택' 같아
감미료 길들여져 명품 음식 실종
[이춘호 기자의 푸드블로그] 맛집 유감

◇…주방장 & 오후 4시30분

오후 4시30분.

전국 주방장이 잠시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각이죠.

월급 주방장의 경우 눈이 있어 대놓고 홀에서 잘 수 없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그들은 자신도 모를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앓고 있습니다. 오페라 무대 뒷면처럼 손님들은 주방 내부를 잘 볼 수 없습니다. 주방은 세상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거룩한 식전(食殿)'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곳 조리사의 가슴은 그다지 영광스럽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예전 식당은 거리로 내몰린 궁핍한 자가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던 곳이기도 합니다. 비싼 음식을 만들지만 그 음식을 먹을 수도 없습니다. 조리사이면서도 음식에 소외된 자였습니다.

조리사의 피해의식은 극도의 경계심으로 발전하죠. 손님을 볼 때도 다정다감하지 못합니다. 뚱한 제스처에 딴전을 피운다거나 눈을 아래로 깔면서 상대방 얘기를 듣기 일쑤입니다. 그건 '일그러진 텃새심리'로 발전합니다. 그들은 손님이 주방을 기웃거리는 걸 무척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가장 편해하는 곳은 주방 뒷문 언저리입니다.

그곳은 북향인 경우가 많아 바람이 잦습니다. 그 시각이면 주방장의 몸은 땀에 절어있고 근육에 젖산이 푸짐하게 고여 피곤이 전신을 파고듭니다. 하품이 연방 입밖으로 발사됩니다. 얼굴도 부어있습니다. 표정이 무척 어둑해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을 보지만 한가롭게 흘러가는 구름의 운율을 즐길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는 번개처럼 쉬곤 야간 업무에 돌입해야 됩니다. 식당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리술도 갈수록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주인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자고 하면 거북해 합니다.

요즘 조리사 오전 11시에 아침과 점심을 겸하고, 오후 4~5시에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합니다. 틈만 나면 독립해 자기 식당을 차리는 꿈을 꿉니다. 자칫 음식도 처삼촌 벌초하듯 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그런 상황에선 그런 습성을 가지기 쉽죠. 대구의 경우 평균 조리사 월급은 200만~250만원선, 그것 갖고는 '꿈의 음식'은 언감생심인 것 같습니다. 자기 식당이 아니니 음식에 제 운명을 걸 것 같지도 않고.

주인과 주방장 사이에 묘한 불신의 골이 파져있다는 것 아세요.

이게 한국 음식의 최대 걸림돌입니다. 주인은 돈이 있지만 혀를 탄복시킬 요리술이 부재합니다. 조리사는 요리는 알아도 자본이 없어 존경이 안가는 주인 밑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모순입니다. 결국 주인은 주장방을 경계하고 주방장 역시 특유의 고집으로 주인을 흔들어봅니다. 주인이 돈을 많이 벌면 주방장은 배가 아프고, 그래서 딴지를 겁니다. 그게 화나 주방장을 해고시킵니다. 다른 주방장이 오면 맛이 변합니다. 단골이 반발합니다. 장사가 안됩니다. 결국 폐업이죠.


◇…주방장도 찬모도 없는 식당

일본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식회사급 매머드 식당을 제외하곤 일본은 거의 주인이 주방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도쿄대 최상위학과를 나와도 가업을 위해 기꺼이 식칼을 잡습니다. 국민은 그런 결단을 존경합니다. 물론 일본에도 프랜차이즈형 패스트푸드 붐이 일지만 그 못지 않게 100~300년 역사의 유서깊은 명품 식당이 더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일본 조리사는 돈보다 '제 집 음식이 최고'란 평가를 받는 걸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돈을 위해 돈 된다는 메뉴에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자기 성(姓)을 상호로 걸어둡니다. 그들은 최고의 식재료, 최고의 자연 양념을 가능한 제 손으로 빚어 단골에게 올립니다. 하루 전에 음식을 미리 만들어 놓지 않고 손님이 왔을 때 즉석에서 요리를 합니다. 늦게 오면 못먹고 돌아가야 됩니다. 더 받으려고 육수에 물을 넣는 일은 상상도 못합니다. 한 길로 가니 놀라운 발견도 합니다. 초밥의 경우 350여개의 밥알이 적당하고 그 온도가 사람 체온과 비슷해야 된다는 것. 생선 회를 만질 때는 손을 얼음물에 집어넣어 차갑게 만듭니다. 다른 종류의 회를 먹을 때는 혀가 중립상태가 되도록 보리차를 먹어야 됩니다.


◇…대구는 어떨까요

주인이 주방장인 경우 전체 식당의 8% 남짓합니다. 갈수록 내공없는 식당 주인이 범람합니다.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 식당을 열려면 주방장과 찬모를 둬야 하는 데 상당수 주인은 비싼 인건비 때문에 몇달만에 주방장을 내보내고 자기 혼자 인터넷에 유포된 요리법만 갖고 조립품 같은 음식을 만듭니다. 그래서 어디가도 그 음식이 그 음식입니다. 식단도 베끼기 일쑤죠. 그러니 요리를 모르는 새내기 주인들은 일반 한식집은 엄두도 못내죠. 만만한 게 프랜차이즈입니다. 심하게 말해 요리의 '요'자를 몰라도 식당을 경영할 수 있게 체인사업부에서 도와줍니다. 주인은 음식보다 식당 마케팅, 인테리어 등에 더 치중합니다. 되레 그런 집이 장인급 집보다 더 장사가 잘 되는 일도 벌어집니다. 식재료 백화점에 가면 입맛대로 포장육수를 사올 수 있는 세상. 장모가 사위한테 주는 밥상 같은 식당은 갈수록 보기 힘듭니다. 이일을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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