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미식가 4人 대구음식 대해부

  • 입력 2008-09-26   |  발행일 2008-09-26 제43면   |  수정 2008-09-26
"싼 음식 먹으며 비싼 대접 바라세요?"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미식가 4人 대구음식 대해부
대구음식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하며 요리 사진을 찍고 있는 대구의 대표적 미식가 4인방. 왼쪽으로부터 김홍일·백진우·박천봉·장재호씨

미식가 한 명 태어나기는 참 힘듭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의 경우 조리사 못지 않게 미식가는 명사로 대접받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엔 음식 평가 전문 매체도 미식가 그룹도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부설 미식가 협회가 있긴 하지만 그건 호텔 마케팅 전략 일환인 것 같습니다.

미식가는 특정 음식을 좋아해선 안됩니다. 모든 음식에 중립적 자세를 취해야 됩니다. 음식 제국주의적 발상도 사라져야 됩니다. 자기 나라 음식만 먹어선 안됩니다. 같은 메뉴도 여러 지방 먹거리를 동시에 맛봐야 됩니다. 비교음식학적 정보가 풍부해야 됩니다. 미식가는 '소문 맛'을 경계하고 현혹되지도 않습니다. 아마추어는 누가 맛있다고 하면 단번에 믿어버립니다. 미식가는 특정 식재료가 어떤 음식으로 만들어져야 되는 가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대구에도 이런저런 미식가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오푸드(www.ofood.co.kr)라는 식당 전문 관리 사이트도 있고, 윤병대씨가 관리하는 인터넷 다음카페 '맛따라 길따라', 다음 카페에 '멋집 맛집' 등도 흥미로운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이번주엔 수성구 어린이대공원 맞은편에 있는 아귀찜 전문 어성촌에서 미식가로 활동중인 장재호·백진우·김홍일·박천봉씨와 함께 대구식당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해봤습니다. 다들 전국 500여군데 식당을 둘러보고 그 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장재호= 잘 되는 식당은 잘되는 이유가 있고 안 되는 식당은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장이 욕심 내는 것을 고객은 기가 막히게 압니다. 이 대목을 사장은 잘 알아야 합니다. 음식 값을 계산할 때 만족한다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 집은 성공하리라 봅니다. 다 잘할 필요는 없겠지만 진짜 맛이 있든가, 양이 푸짐하든가, 값이 저렴하든가, 서비스가 끝내주든가…. 하나만 잘하더라도 고객의 발을 끌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식당을 갈 때 저는 주로 다른 식당과의 차별화가 무엇인가를 봅니다.특이한 메뉴, 특이한 콘셉트, 특이한 재료, 특이한 맛 등 다양성이 대구에는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전체시장이 작은 것도 있지만 한번 간 곳만 고집하는 보수성과 새로운 음식에의 도전성 부족도 한 몫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실험적인 음식, 공이 들어간 고가의 신메뉴에도 애정을 가져야 대구 음식문화가 한 단계 진화할 겁니다. 또 한 가지, 음식관련 스토리가 너무 부족합니다. 전주십미는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구도 십미를 만들었지만 이는 관변 주도일 뿐인 것 같습니다. 하다 못해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했던 음식'이라고 하는 에피소드라도 붙이면 더 솔깃해지죠.

▷백진우= 유행이나 인터넷이나 매스컴을 통한 직간접적인 광고에 너무 신뢰감을 보내는 것 같아요. 진짜로 맛난 대구의 숨은 맛집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습니다. 또한 주요리보다 부요리에 너무 관심을 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횟집의 경우 회보다는 회 옆에 어떤 스키다시가 많이 나오는 가에 목숨을 거는 것 같아요. 그럼 손님 눈치보다가 망하고 말 겁니다. 저는 회를 매우 좋아합니다. 칼질할 때도 회가 맛있도록 하기보다 어떻게 썰면 폼이 날까에 역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포를 넓게 두툼하게 저며내야 하는데 꼭 무 채썰듯 겉만 풍성하게 담아내는 게 불만입니다. 정통 일식집이란 곳도 대충 그런 식입니다. 본질에 충실하기보다 겉만 화려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손님들도 1만원짜리 먹으면서 1만원 이상의 것을 바라지말아야 합니다. 일반 식당에 가서 고급 식당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도 음식 맛없게 만드는 원인제공을 합니다.

▷김홍일= 대구는 너무 유행에 민감합니다. 한 음식을 잘 해도 돈이 되는 음식이 유행하면 자기가 잘 하던 메뉴를 쉽게 내팽개치고 유행메뉴로 바꿉니다. 그러니 메뉴가 천편일률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식당이 돈방석에 앉으면 그 음식에 전문가도 아니면서 자신도 돈 때문에 유행 메뉴를 카피해옵니다. 자연 유사식당이 줄을 잇습니다. 원조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겠죠. 결국 과당경쟁으로 인해 특정 음식을 선도한 식당까지 동반 붕괴되는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 떨어지는 홍시를 삼키려는 처사이고 결국 이건 특정 메뉴에 대한 테러나 진배없습니다. 종업원이 잘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사장의 마인드라고 봅니다. 비록 피곤하지만 별난 주문도 따뜻하고 성심성의껏 받아들일 때 명품 식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겁니다.

▷박천봉= 주인의 친절도가 너무 떨어집니다. 다른 지역 식당 가봐도 그걸 알 수 있어요. 서울쪽에만 가도 열 집 중 세 집이 불친절하다면 대구는 거의 7할 정도가 불친절한 것 같습니다. 물론 속내는 안 그럴지 몰라도 외지인들은 돈 내고 먹는 상황이니 친절함을 밖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음식의 경우 너무 보수적인 것 같아요. 다른 조리사들도 발전이 없고 해봐야 잘 어필이 안되니 할 수 없이 하던 것만 고집하는 것 같습니다. 먹는 사람도 골라 먹을 줄 알아야 되는 데 먹는 것만 먹습니다. 밥 한 끼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니 요리문화가 발전하지 못하는 거죠. 손님이 맛에 대한 신선한 자극을 조리사나 사장에게 줘야 하는 데 너무 음식에 대해 피상적이고 형식적으로 대해요. 호남이나 서울의 경우는 특정 음식에 대해 엄청 애정도 갖고 조리법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는데…. 그들은 정통과 퓨전을 동시에 경험하니 음식이 더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음식 질도 대구가 타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하되는 느낌입니다. 딱히 내놓을만한 특화된 음식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외지인이 오면 당혹스러울 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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