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와 남정율 셰프의 파스타 수다 .5] 스테이크 이야기

  • 입력 2008-10-10   |  발행일 2008-10-10 제46면   |  수정 2008-10-10
스테이크…바싹 구운 것 'NO', 핏기 머금은 것 'YES'
[이춘호 기자와 남정율 셰프의 파스타 수다 .5] 스테이크 이야기

◇ 불은 양치기 목동, 육즙은 양

-스테이크 요리에서 육즙 관리는 정말 중요하죠. 그런데 많은 손님들이 육즙을 못먹는 핏물로 착각하니 참 안타까운 사실이죠.

"공감합니다. 스테이크 요리는 불과 육즙과의 한판 승부로 압축됩니다. 아무리 좋은 선도의 소고기를 갖고와도 고기안에 숨어있는 육즙관리를 잘못하면 3류고기로 전락해버립니다. 셰프들은 스테이크 요리를 할 때 육즙을 한 마리 '양'으로 다룹니다. 불은 '양치기 목동'이죠. 양치기는 양이 담장을 넘어 도망가지 않도록 중앙으로 잘 몰아넣어야 합니다. 육즙을 컨트롤하는 것도 그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불판의 온도가 너무 낮으면 핏물이 밖으로 스며나옵니다.

갑자기 250℃ 남짓한 뜨거운 브로일 위에 고기를 올려놓으면 급격한 온도차에 의해 고기의 표면이 굳어지면서 세포를 꽉 압착시키죠. 자연 코팅효과가 나타나 육즙이 밖으로 스며나오지 못하고 반대편으로 이동하죠. 반대쪽으로 가면 고기를 뒤집어 다시 다른 쪽으로 밀어냅니다. 육즙이 중앙으로 모일 수밖에 없죠. 삼겹살 구울 때 핏기가 위로 스며나오는 걸 볼 때가 있는데 그건 불판 온도가 낮아서 그렇습니다. 스테이크가 그럴 경우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대구는 유독 바싹 굽는 웰던을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대구지역의 경우 중년 고객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핏물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웰던(Well done)으로 구워달라고 신신당부합니다. 마치 제상에 올라가는 소고기 산적같이 꾸덕꾸덕해진 스테이크를 맛있다고 먹는 걸 지켜보는 셰프들의 심정은 갑갑합니다. 저는 고객이 잘못된 음식 상식을 갖고 있는 걸 그냥 두고 넘어가지 못합니다. 1등급 소고기를 웰던으로 해먹을 바에야 차라리 다른 음식을 먹는 게 낫다고 얘기합니다. 저는 일단 핏기가 전혀 없이 바싹 구운 것과 핏기가 적당하게 고여있는 걸 함께 내놓고 시식해보라고 합니다. 그럼 핏기 있는 게 더 맛있다는 걸 알고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을 시인합니다. 그런데 상당수 지역 셰프들은 손님들에게 눈총을 받을까봐 겁이나서 그런지 적당히 구운 미디엄을 잘 권유하지 못하더라구요."


◇…안심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부위가 사토브리앙

-일단 안심과 등심에 대한 흥미로운 상식을 알려주시죠.

"등심 같은 경우 원래 이름은 로인(Loin)으로 불렸는데 나중에 영국 찰스2세가 아주 맛있는 이 고기 이름이 뭐냐고 관심을 보인이후부터 고기한테 존경의 의미를 갖고 있는 Sir를 작위처럼 붙여 서로인(Sirloin)이 됩니다. 양식용 스테이크 부위는 두툼하게 나오는 안심(Tenderloin)과 얇게 나오는 등심(Sirloin)으로 나뉩니다. 메뉴판에 필레 미뇽이나 사토 브리앙으로 적혀 있는 것은 안심이고 '립 아이' 'T본 스테이크' 등은 등심을 뜻합니다.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는 기호에 따라 굽는 정도를 달리하죠. '레어' '미디엄 레어' '미디엄' '미디엄 웰던' '웰던' 중에서 선택하면 됩니다. 안심은 길이 60㎝, 무게 2.5~3.2㎏ 정도 되죠. 이중 가장 맛있고 넓적하고 부드러운 부위가 사토브리앙입니다. 안심 한 덩어리에서 약 10~12인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동글하게 생긴 건 안심이고 돈가스처럼 생긴 건 뉴욕스테이크 스타일이죠. 저는 호주 청정우 곡물 350일을 사용하는데 '곡물 350일'이란 도축하기 전 360일간 곡물을 먹였다는 의미죠."

-그런데 우리 한우는 양식당 셰프들한테 그렇게 인기가 없는 줄로 압니다.

"사실 그 대목에 대해선 참 얘기하기 뭣한데, 한우는 숯불구이용으로 적합한 것 같고 스테이크로는 덜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수입 고기는 품질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운반과정에 잘 숙성돼 오기 때문에 취급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한우가 언제 도축됐는지 도축후 얼마 숙성됐는지를 모릅니다. 숙성이 많이 됐는데 그것도 모르고 다시 저온숙성을 1~2일 더 하면 육질은 그대로 녹아내려 먹을 수 없게 되겠죠. 사실 질긴건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아요. 숙성일수를 조정해 얼마든지 부드럽게 만들 수 있어요."

◇…스테이크 요리엔 반드시 감자가 붙어줘야

-고기는 그냥 숙성합니까, 아니면 오일을 발라줍니까?

"저는 푸어급 올리브 오일을 로션 바르듯 살짝 발라준 뒤 2~5℃ 냉장고에서 하루 정도 숙성시킵니다. 고기를 그냥 상온에 두면 육즙이 다 날아가버려 육포처럼 변해버립니다. 고기를 냉동하면 육즙이 안빠집니다. 하지만 냉동한 걸 해동할 땐 상온에서 해선 안됩니다. 반드시 3~5℃ 냉장고에서 저온해동 해야됩니다. 스테이크는 무조건 센불에 구워야 합니다. 미디엄의 경우 고기 속 온도가 약 60℃입니다. 그래야 세균이 박멸됩니다."

-아마추어들은 자꾸 고기를 뒤집고 누르잖아요. 그럼 삼투압에 의해 육즙이 밖으로 스며나오죠.

"저는 1.5㎝ 두께 안심의 경우 미디엄으로 굽기 위해 약 1분30초 정도 굽습니다. 다 구운뒤 잠시 따뜻한 곳에 두면 육즙이 전체적으로 골고루 퍼집니다. 너무 빨리 내면 별로 안좋은 것 같아요."

-스테이크 요리에는 무조건 감자가 들어가잖아요.

"고기는 산성이고 감자는 알칼리이니깐 중화 효과를 보기 위해 사용합니다. 저는 감자 전분을 제거한 퓨레를 스테이크 바닥에 깔아줍니다."

-한꺼번에 수백명이 들어닥치면 어떻게 하죠.

"오후 6시가 리셉션이라고 하면 1시간 전에 센불에 다이아몬드 같은 불탄 자국이 보이게 마킹 작업을 해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게 응급조치를 취합니다. 접시에 담기전 대형 오븐기에서 살짝 익혀내면 됩니다. 참, 자기가 생각하는 육질이 아니라고 하면 당연히 NO를 외치세요. 절대 무례한 행동이 아니고 주방을 긴장하게 만들고 요리를 더 잘 만들게 만드는 촉매 구실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셰프들은 다시 요리를 내줍니다. 특히 하루살이는 약 60℃ 온도에서 그대로 죽어버리고 이로 인해 죽은 벌레가 셰프도 모르는 사이 음식에 떨어질 수도 있으니 늘 주의해야 됩니다."


◇취재협조=스파밸리 그린비(053)608-8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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