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한우 아저씨의 쓴소리

  • 입력 2008-10-24   |  발행일 2008-10-24 제38면   |  수정 2008-10-24
"자꾸 싼 한우만 찾으면 고급 한우 서울에 다뺏겨"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한우 아저씨의 쓴소리
'대구 한우 지킴이'를 자청한 대구시 달서구 송현동 합천숯불식당(아래)의 옥재영 사장은 수입육·한우육 구별보다 한우의 등급을 기준으로 현장 조사를 하라고 당국에 촉구한다.

◇…한우갈비집 주인은 왜 소를 닮았을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우.

한우를 제대로 구별할 줄 아는 이는 1천명중에 한 명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솔직히 주인이 한우라고 하면 한우인줄 알고 먹었습니다. 이젠 상황이 좀 달라졌지만. 직접 소를 키워 도축하고 그걸 유통하고, 마지막엔 식육점과 숯불갈비집을 원스톱으로 동시에 취급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이제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에서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가격을 따지자면 수입육을 먹어야 될 것 같고, 국내 축산농가의 미래를 생각하면 부담이 되더라도 1주일에 한번 한우를 구워먹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우 시장을 보면 고생하는 건 축산업자인 것 같습니다. 너무나 잘 아는 진리 하나. 소값은 소가 정하지 않고 중간상인들이 매깁니다. 한우를 생산하는 농민들은 구조적으로 키워서 도축업자한테 넘기는 것까지만 간여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유통업자가 독점하다시피하고 있습니다. 식당 주인들도 쇠고기 값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며칠전 대구시 달서구 송현동 승마장 맞은편 합천숯불식당 옥재영 사장(43)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한우 아저씨'로 불리는 옥 사장, 그는 한우에 대해서 쓴소리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한 한우 마니아들이 알고 있어야 될 한우 상식과 확대시행되기 시작한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 등에 대해 속시원하게 할 얘기가 많다고 했습니다.

옥 사장의 처가는 1987년 송현시장에서 고향 이름을 붙인 식육점을 경영했습니다. 현재 자리로 오기전까지 20여년간 한우만 외쳤습니다. 합천식당은 식재료상과 거래할 때 반드시 확답 받아놓는 게 있습니다. 만약 수입육을 속여 팔면 그때부터 거래를 끊는다는 것입니다.

식당에 도착하니 홀서빙하는 2명의 아주머니가 마늘을 직접 까고 있었습니다. 더 감동적인 대목은 주방 가스레인지 위에 한우 해체작업할 때 착용하는 면장갑을 끓는 물에 넣고 소독하고 있었습니다. 조리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고 벽에 조리기구가 크기 순으로 나란히 걸려있었습니다. 삼성라이온즈의 빅스타 양준혁이 이 식당을 자주 이용합니다. 고기맛 못지않게 칼맛도 일품입니다. 갈비살의 경우 칼질을 잘 해야 맛이 더 납니다. 발골용 칼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18년 경력의 김성수씨(38)가 듬직하게 버티고 서 있습니다. 한짝에 20~30㎏ 갈비살에서 기름 제거하고 약 8㎏짜리 갈비살을 추출하는 것, 일반인들에게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일은 최첨단 기술을 요구합니다.


-이제 수입육을 한우로 둔갑시켜 파는 주인은 없겠죠.

"손님들도 어떤 고기가 맛있는 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한우 관련 정보도 많이 보편화됐습니다. 이젠 바보가 아니고서 수입육을 한우로 바꿔 팔려는 사람은 없다고 보고 싶습니다. 문제는 '한우 등급 속여팔기'입니다. 아직 이 대목에 대해 단속반이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죠. 저등급 한우를 고등급으로 둔갑시킨다는 말입니까?

"정말 좋은 한우는 안타깝게도 우리 지역에선 거의 보기 힘듭니다. 대구에서 소 한 마리가 500만원일 경우 서울로 가면 100만~200만원 더 받을 수 있으니 어디서 팔려고 하겠습니까. 또한 소 관상 보는데 도가 통한 전문가들이 도축하기 전 입도선매하듯 명품 한우를 점찍어 서울 등지로 팔아올립니다. 대다수 한우 최상등급인 일등급 투 플러스, 원 플러스만 운운하는데 기타등급도 있어요. 기타 등급은 병들고 늙은 소입니다. 이들은 너무 질겨 식용으론 부적합합니다. 최상등급과 비교할 경우 최고 8배 차이가 납니다. 기타 등급도 한우는 한우이죠. 이런 게 막구이로 잘 팔리겠죠. 제대로 된 한우를 먹으려면 1인분에 최소 2만원은 넘어야 합니다."


-질긴 걸 부드럽게 만드는 법도 있잖습니까.

"칼집 삼겹살처럼 숱한 칼집을 넣고 강력한 연육제만 이용하면 질긴 것도 부드러운 한우로 만들 수 있습니다. 참, 상당수 좋은 한우는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줄 아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금 졸깃합니다. 수입육은 상대적으로 부드럽습니다. 고등급으로 둔갑된 한우는 양념을 가미해야겠죠. 그래야 들통이 나지 않을 겁니다. 가격이 턱없이 낮은 한우는 기타등급으로 보면 될 겁니다. 이제 한우 둔갑 여부만 조사하지 말고 등급 둔갑 여부도 조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단속만 하지 말고 실제 좋은 고기를 팔고 있는 곳은 그렇다는 마크를 부여하면 좋겠어요."

현재 옥씨는 갈비살 150g을 2만원에 팔고 있다.


- 대구는 갈비살, 서울은 등심을 좋아하죠.

"맞습니다. 숯불갈비집에서 가장 애지중지하는 건 갈비살입니다. 마니아들은 주먹시와 안창살을 즐길거고 나머지는 기타급으로 분류됩니다. 식육점과 식당에서 고기를 잘라내는 방법이 서로 다릅니다. 식육점은 덩어리별로 팔지만 식육점은 부위별로 추출해냅니다. 대구 사람이 좋아하는 육회 생고기 등은 뒤쪽 엉덩이 살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육회 생고기의 경우 살속에 너무 많은 지방질(마블링)이 생기면 안되니 지방질이 덜 있는 황소 저등급을 선호합니다. 대신 로스구이용은 적당하게 마블링이 많이 스며들어야 하기 때문에 거세 한우가 인기입니다."

인터뷰 말미, 옥 사장이 한우의 진미를 맛보고 싶은 사람과 진검승부를 하고 싶다고 하네요. (053)621-6667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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