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경북대 치대 병원 근처 '은행나무'

  • 입력 2008-11-28   |  발행일 2008-11-28 제43면   |  수정 2008-11-28
대구 藝人들의 단골식당 순례…은행나무 가지에 '풍류(風流)' 달렸소!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경북대 치대 병원 근처
음식의 맛과 문화의 멋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로하스 문화 공간 은행나무(왼쪽)가 최근 남구 이천동에서 중구 동인동 중구청 맞은편 골목 안으로 이전했다. 지인들이 건네는 술잔을 마다않고 넙쭉 받으며 지역 예인의 사랑방 만들기에 나선 남윤호 대표.

◇…찬 바람이 분다~ 또 술을 마셔야겠다

대구 낭만1기 주무대는 다방이었죠.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다방은 지고 술집형 식당이 사랑방이 됩니다. 아직 건재하고 있는 대표 다방이라면 중구 종로 진골목 미도다방 정도죠.

80~90년대 막걸리파는 용두방천 옆에 있던 번지없는 주막(현재는 봉덕 래미안 부지에 편입돼 사라짐), 남산동 도로메기를 비롯해 공주식당, 곡주사, 무림식당 등으로 분산됐고, 맥주파들은 법원 맞은편 뒷길 두레(페업)와 마메종(현재 수성구 두산동 나무노래로 이전) 등으로 갑니다. 이제 실버 세대가 된 예인들은 덕산빌딩 화방골목 중간 풀 하우스로 갑니다. 식당으로는 반월당 은정식당(폐업)과 행복식당, 육국수로 유명한 종로 '진골목 식당'이 운치있죠. 대구의 마지막 막걸리 시인 취석 금동식은 한때 행복식당에 있다가 지금은 종로 무림식당의 터줏대감이죠.

현재 지역 예인들의 사랑방은 어딜까요.

경북대 치대 병원 근처 '은행나무(476-6677)'·프린스호텔 맞은편 '세종 한정식(253-0118)'·대구문화예술회관 근처 '돌담길 국시마당(656-8558)'에 얽힌 음식과 풍류담을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은행나무엔 '대구의 윤경렬' 남윤호가 자란다

불콰한 어투와 은백의 헝클러진 머리카락이 성성한 경주 출신 수필가 남윤호(49).

사람들은 그가 '마지막 신라인'으로 통했던 윤경렬의 뒤를 잇는 문화재전문가로 발돋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2006년 언론사를 그만둔뒤 느닷없이 식당 사장으로 변신합니다.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다들, 며칠 못가 문 닫을 거라고 봤죠. 이미 언론인 출신 소설가 우호성이 한때 대구 봉산문화거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거덜낸 사실까지 들먹였습니다.

남씨는 대구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적이 있고 관오사에서 발행하는 '나눔'이란 책자 편집장도 맡아봤습니다. 그런데 호남에는 문자향 가득한 식당이 많은데 대구는 그렇지 못한 걸 그는 속상해 했습니다.

적당한 공간을 물색하던 중 은행나무집 식당이란 보신탕집을 봤습니다. 그가 뺏다시피 합니다.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200만원. 그는 당시 빈털터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가 하는 사업도 거덜난 상태. 돈이 필요해서 주위로부터 급전도 빌렸습니다. 식당 경험이 있는 처형을 셰프로 기용하고 웰빙식단을 꾸리기 위해 두부기계까지 구입합니다.

아는 사람을 상대로 장사해선 안된다. 분위기 못지않게 맛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흑두부와 등겨로 만든 전통주를 내놓았습니다. 주당에게 딱인 생고기와 김천 지례에서 배워온 흑돼지 바비큐도 개발합니다.

원래 예술가가 장사하면 거의 말아먹는다고 하잖아요. 아는 사람 오면 같이 붙어 자기가 술을 더 먹고, 분에 넘치는 서비스 안주를 내놓으니 영업이 될 리 만무하죠. 거기다가 외상까지 가세하면.

◇…이렇게 빨리 뿌리 내린 비결은?

은행나무는 일단 어렵사리 착근했습니다. 요즘 열 집 중 아홉집은 힘들다고 하는데. 그 묘수가 뭘까요.

원칙을 정했다네요. 아는 이라도 가려서 정중하게 합석하자는 거죠. 후배가 온다고 해서 거기 앉아 선배 행세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나중엔 부담스러워 오지 않을 겁니다. 그도 그걸 간파한 모양이네요. 친한 이가 오면 인사조로 맥주 5~10병을 서비스로 냅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식당에서 쉽니다. 주량(소주 5병 정도)을 넘기면 절대 손님에게 비틀거리는 모습을 안보이고 즉시 사라져버립니다. 가능한 아침엔 목욕을 합니다.

개업식은 안 했습니다. 대신 문 연지 6개월쯤 지나 조촐하면서도 알찬 문화행사를 폈습니다. 마당발인 그의 인맥이 어느 정도인가를 여실하게 보여줬습니다. 강현국 시인(당시 대구교육대 총장), 경북대 국악과 교수 이동복, 경북오페라단장 김혜경, 전 대구음악협회회장 감재열, 색소포니스트 박병기가 최악의 개런티(?)를 받고도 기꺼이 출연했습니다. '한 풍류있는 집'으로 소문납니다. 계절이 바뀔 때쯤 그는 꼼꼼하게 은행나무 통신을 1천명에게 발송합니다. 경주로도 14차례 답사도 떠났습니다. 단골들이 기분이 날 수밖에요. 식당과 문화의 동거, 열정이 없으면 병행 못하죠. 김지하 시인, 역사연구가 이덕일, 주강헌 등도 불러 특강을 깔았습니다.

그런데 일이 생겨 지난 5월30일 남구 이천동 시대를 끝내고 중구 동인동 중구청 남쪽 골목 안으로 이전합니다.

◇…그가 알려주는 한 수

"예술가가 식당을 하려면 자기만의 색깔이 없으면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얼마전 새 둥지로 이전했다. 처음엔 주차 공간이 부족해 어려웠다. 그러나 기죽지 않았다. 7년간 폐가로 방치된 집을 내 스타일로 개조했다. 특색이 없는 식당은 망할 수밖에 없다. 일단 손님이 편하다는 기분이 들도록 노력했다. 문설주는 그대로 남겨두고 청동칠을 했다. 담장은 허물고 철도 침목으로 조경했다."

마당에 있는 덩치 큰 은행나무가 운치를 더합니다. 토방 책장에는 시집 등 문학서와 각종 책들이 수북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분위기 좋고 문사들이 들끓는 탓에 화가 조홍근, 안창표, 권기철, 남학호, 권시환, 류영희 등 지역 유명 미술가들이 30여점의 작품을 기증합니다. 그 작품이 방방마다 걸려 있습니다. 갤러리 같아요.

은행나무는 계절음식 전문점. 사철 주메뉴가 달라집니다. 요즘 매생이·추어·대구탕이 맛있답니다. 여름엔 청국장과 게장 비빔밥이 인기.

손님은 살피면서도 제 몸은 안 돌보고 술을 진탕 마신 탓에 그는 인터뷰 내내 잔 기침을 합니다. 돈 벌기 참 힘들다는 생각. 그러면서도 그가 참 대단하다는 기분입니다. 하여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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