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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 통나무 시골집
취객의 주사(酒邪)가 돌부리처럼 분출되는 식당이 있습니다.
이런 식당, 주인의 심성이 별로거나 손님들이 너무 얌전한 탓이죠. 서울 종로구 피맛골의 한 시인다방에선 취객이 술병을 벽에 던져도 그게 특별한 사건으로 각인되지 않습니다. 벼락스러운 행동도 도저한 술집 분위기에 다 묻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집은 식당 주인의 소유가 아니라 단골의 소유로 진화됩니다. 유명 식당은 메뉴가 유명한 게 아니라 단골의 심성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종로 인사동 콧구멍만한 고 천상병 시인의 혼이 서려 있는 찻집 '귀천(歸天)'도 실내 기운은 무지렁뱅이 같아도 객들은 도골선풍의 경지를 겨냥합니다. 식당 이상의 식당은 한 고장의 문화재죠. 1686년 생겨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르 프로코프(Le Procope)의 성공 비결도 루소·볼테르·디드로 같은 명사들이 제집처럼 들락거렸을 정도로 편안한 거겠죠.
토담길 국시마당(대표 최명순).
그 식당 때문에 평소 그믐달 같은 두류공원 네거리에서 대구문화예술회관 가는 길이 보름달로 부풀었습니다.
그녀의 품새는 점입가경입니다. 처음엔 그냥 여느 식당 주인같은 데 30분만 얘기하면 눈높이 사이가 되고맙니다. 타고난 끼겠죠. 경남 거창여고 시절 문학소녀였습니다. 좋은 구절 보면 일일이 노트에 적어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77년 대구에 와 경화여중고 행정실에서 근무하다 10년전 국시집 여사장이 됩니다. 통나무집을 포함, 10개의 방을 감싼 기와집은 천고가 무척 높아 시골집처럼 편해 보입니다.
이 집은 그녀가 시집살이하던 곳입니다. 나중에 빈집이 됐고 세가 나오지 않아 결국 그녀가 국수집으로 만들어 갑니다. 돈 벌고 싶다는 생각은 없고 그냥 빈집을 활용한다고 생각했죠. 주메뉴는 해초 수제비. 처녀 시절 북한에서 피란온 이웃 어른이 만든 왕만두 만드는 법을 응용한 메뉴인데 이게 어필됩니다. 또한 만두전골, 해초국수도 인기였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촌집 같은 분위기가 지역 문인들에게 딱 들어맞았죠.
◇…갈 때 문만 닫아놓고 가이소
백석의 명시 '여우난골족'이 집 곳곳에 어른거립니다.
특히 이번에 대구문인협회장이 된 구석본 시인을 비롯해 도광의·박곤걸·문무학·이일기, 소설가 이수남·우호성, 수필가 김규련·장사현, 홍종흠 대구문화예술회관장, 김완준 현 계명아트센터 관장 등 예술계 거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툭하면 자정 넘게 주연이 벌어집니다. 그래도 주인은 태연합니다. 집에 갈 땐 "문만 닫고 가이소"라고 한 마디만 남깁니다. 따뜻하게 배려하는 그 맘에 평생 단골이 될 수밖에 없었겠죠.
구석본 시인은 내 마음은 일편단심 토담길. 5년전 어느 여름날 난생처음 일행과 날밤을 지샙니다. 거기에 사장도 앉았습니다.
"술을 많이 먹는다 먹는다 하지만 구 선생님만큼 많이 드시고도 초롱한 자태를 보이는 분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자리가 끝나고 나니 출근할 시간이 되어버렸지 뭡니까."
대구에서 가장 술값 잘 내기로 유명한 도광의 시인도 자신의 대표시 '갑골길'만큼 토담길을 그리워합니다. 두번째 시집 '그리운 남풍' 출판기념회도 호텔 마다하고 돌담길을 고집했습니다. 이유는 "오줌누러가기 편해서"랍니다. 고 김춘수 시인 팔순례가 대구 프린스호텔에서 열리던 밤입니다. 노시인은 오후 8시30분쯤 토담길에 도착했습니다. 4년전 위암 수술을 한 처지라 체중이 채 50㎏이 되지 않았습니다. 산사춘을 거나하게 마시고 기념으로 사장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예인들은 안채 옆 별장처럼 보이는 통나무집을 좋아합니다. 거기엔 도광의 시인의 시 '본리동 시절'을 비롯해 시와 수필을 쓰는 여사장의 오빠 최종이의 작품, 춘원 이광수의 시 '애인'등이 걸려있습니다. 안방 벽엔 지두화에 능한 고홍선의 장난스러운 그림이 붙여져 있네요.
그녀도 지난해 5월 '지리산 야생차'란 수필로 월간 문학에 등단했습니다. 늦깎이 등단이었습니다.
◇…토담길의 성공 비결
식당 문 입구에 바람꽃 등 80여점의 야생화가 발밑에서 나직하게 인사합니다. 그녀는 15년전부터 야생화에 푹 빠져삽니다. 여느 집과 달리 꽃물처럼 달싹한 감로차를 내놓습니다. 남 때문에 장사가 잘 된다면 당연히 이익금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된다네요.
손님을 읽는 방법도 터득한 모양입니다.
"처음엔 사람들 마음 못 읽었습니다. 저는 콜라를 먹어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술을 못 먹어요. 가끔 취해 지나친 농담을 하는 단골이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뉘우친 게 있어요. 나는 술이 안취했고 그들은 취했는데 당연히 제가 그분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다짐했죠."
그녀는 돈 이전에 좋은 사람 많이 알게 된 걸 더 행복해 합니다. 손님의 70%가 단골이고 개업 때 홀 아주머니가 아직도 주방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번 온 사람이 다시 오면 그녀는 정확하게 그를 기억하고 아는 척을 해줍니다.
"지인 몰고 왔는데 사장이 아는 척도 안 하면 그분 체면이 어떻게 되겠어예~" (053)656-8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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