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중구 종로 '무림식당'

  • 입력 2008-12-19   |  발행일 2008-12-19 제38면   |  수정 2008-12-19
"자식과 일이 멀어지면 무림주막에 오세요!"
메뉴판 없고 시키는 건 다 만들어줘
취석 금동식 시인에게만 밥 무료로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중구 종로

◇…종일 막걸리만 마시는 취석 금동식 시인

까무룩함.

대구시 중구 종로 2가 골목 한 켠에 있는 무림식당, 거기만 생각하면 늘 그 단어가 떠오릅니다. 안쓰러움과 처량감이 증폭되면서 왠지 모를 비애감이 느껴지죠. 디지털 세상에도 그런 '진공관 버전의 주막'이 있다는 것, 대구 문화를 위해선 참 고마운 데죠.

여든에 든다는 것, 자식도 그렇게 살갑게 느껴지지 않고 별로 심각하지도 않는 추억담을 심각한 톤으로 대화할 수 있는 술친구가 가장 소중할 겁니다. 물론 그런 게 가능한 목로주점도 있어야겠죠. 고노(古老)에게는 든든한 호주머니보다 푸짐한 얘기가 간절합니다.

1950~70년대 향촌동 낭만시대가 대구에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그 끝자락이 무림식당에서 아직 넘실대고 있습니다.

취석(醉石) 금동식 시인. 올해 78세. 세사를 멀리한 모습도 그렇고 종일 술만 마시면서도 말문을 열지 않는 석불 같은 자태가 퍽 귀해보입니다. 취석의 자리는 늘 두번째 테이블 왼쪽 의자. 밤이 이슥할 때까지 거기서 예인 만나고 술 먹고 시구상하다 집으로 갑니다.

현재 대구 문단은 취석을 그렇게 살갑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가 문단 행사에 절대 참석하지 않는 탓도 있을 겁니다. 젊은 문인들도 그를 찾지 않습니다. 너무 가난한 탓일까요. 그럴 지도 모르죠. 그는 돈이 없습니다. 생활보호대상자입니다. 하지만 행색은 귀공자 같습니다. 뒤에서 의롭게 그를 돕는 몇 분이 계시다니 안심입니다.

"많은 말을 하고 너무 즐거우면 시가 안되지, 시인은 더 깊은 고독에 침잠해야 돼!"

지난해 봤을 때만 해도 기력이 좀 성성했는데 그새 오른쪽 눈이 완전 실명됐고 왼쪽 눈까지 망막 수술을 해야 될 판입니다. 남산동 헛간 같은 집에는 책밖에 없습니다. 평생 모은 일부 책은 얼마전 수성구청에 기증했고 나머지 가치 있는 자료들은 고서 수집가 김여천씨에게 분류작업을 위해 맡겨뒀습니다.

그는 고독한 시인이 되기로 작정한 듯 지인을 집에 데려오지 않습니다. 늘 혼자입니다. 가족과도 절연한 상태입니다.

"고독은 외로움을 먹고 살지"라면서 매일 엄습하는 고독을 시상 갖고 닦아냅니다. 다음 달 10년만에'겨울 매미'란 시집을 출간합니다. 비용은 그를 아끼는 후배들이 냈고 홍익대 서양화과를 나온 최돈정씨가 표지화를 그렸습니다.


◇…무림 고수들 이야기

취석이 무림에 나타납니다.

무림의 하루도 비로소 발진합니다.

집에서 무림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일어나면 어김없이 맨손체조와 온수마찰을 합니다. 35년간 하루도 건너뛰지 않았습니다. 아침은 콩죽으로 대신하고 점심은 무림식당으로 와서 오후 2시30분쯤 먹습니다. 칠순의 주모 이달순씨는 누가 뭐라해도 취석을 '위대한 시인'으로 모십니다. 주모는 취석만을 위해 점심 밥을 따뜻하게 짓습니다. 무림은 어쩌면 취석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지도 모릅니다.

주모는 얼마전 메뉴판을 떼버렸습니다. 무용지물이라네요. 주문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무림은 되는 음식도 안되는 음식도 없습니다. 일반 손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골도 거의 점심을 다른 데서 먹고 여기선 술만 먹습니다. 안주는 별도로 주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메뉴도 주문만 하면 금방 뚝딱이죠. 근처에 염매시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 반찬으로 콩나물, 김치, 꽁치, 젓갈, 돼지 두루치기 정도만 깝니다.

단골의 평균 연령은 70대. 호주머니 사정 때문에 주모는 1만원 이상의 술 안주를 강요하지 못합니다. 그걸 강요하면 무림의 내공도 끝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죠. 그냥 막걸리·맥주·소주만 시키면 안주는 공짜로 따라나옵니다.

무림은 30년 이상 된 해묵은 주점입니다. 여기 오기 전 중앙시네마 동편 골목 안에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테이블이라고 해봐야 고작 3개, 초창기에는 예술가보다 대학생들의 주무대였습니다. 돼지숯불갈비, 족발 등이 인기였답니다. 허외과 원장 등 몇몇 의사 등이 단골로 왔지만 무림의 전성시대는 취석이 몰고 옵니다.

분위기도 지금과 비교 될 수 없었습니다. 홍대 미대를 나와 대구MBC 미술부장을 역임했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파리의 화가' 이묘춘을 비롯해 젊어서 한 주먹했던 권모씨, 춤에 일가견이 있었던 백모씨, 그 중에서 최고의 한량은 '잡기의 달인' 여운동씨(작고)였습니다. 고함에 일가견이 있는 전 대구대 총장 조기섭이 등장하면 취석의 심기는 불편해집니다. 하지만 조기섭은 이제 술도 담배도 못하고 와병 중이라네요.

김신길씨가 송판에 무림주점이란 글을 적어왔고, 동양화가 김일서씨가 달마도, 박찬호씨는 쓸쓸한 정경의 수채화 한폭을 걸어줬습니다.

취석은 무림으로 오기전 동성로 '쉬어가는 집'과 반월당 행복주점도 섭렵했습니다. 지금 그의 말벗은 전 MBC 보도국장 이재인, 전 대구대총장 박정옥, 서양화가 겸 조각가인 이광달, 전 대구 MBC 달구벌 만평 초대 진행자 김경호 정도입니다. 독재와 맞서다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대구의 대표적 민주운동가인 팔순의 강창덕 선생이 오시면 무림의 골격은 더욱 성성해집니다. 가끔 시인 권기호, 소설가 이수남, 호랑이 그림에 능한 운사 성기열, 서예가 율관 변창헌, 화가 최돈정 등이 썰렁한 무림에 훈기를 보탭니다.

밤 10시30분쯤 취석은 부시시 일어나 어둑한 종로 골목 속으로 사라집니다.

취석이 타계한다면 다음 무림의 터주는? (053)255-2460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중구 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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