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제주 성게국, 남도 보릿국, 경상도 미나리… 벌써 봄물 올랐어요

  • 입력 2009-02-20   |  발행일 2009-02-20 제38면   |  수정 2009-02-20
봄맞이 제1호 꽃은 제주도 복수초와 수선화
목포 노하도 앞바다 옥빛 감돌면 완연한 봄
산수유·매화마을도 봄봄봄…고로쇠 수액 인기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제주 성게국, 남도 보릿국, 경상도 미나리… 벌써 봄물 올랐어요
지난 입춘무렵 청도군 청도읍 한재미나리 작목반에서 올해 첫 햇미나리를 수확하고 있다.

◇… 봄이 되면 목포 앞 노하도 물빛이 달라진다

봄이 오는 징조.

분명 어떤 패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하늘색을 보고, 어떤 이는 바람결을 보고, 어떤 이는 물결의 표정을 봅니다. 그래도 일반인들에겐 꽃이 제일 만만하죠. 누군가는 벌의 날갯짓에서 봄을 찾는다고 합니다. 심마니는 가지를 꺾어보면 단번에 안다고 합니다. 한겨울엔 뚝뚝, 잘 부러지지만 봄이 올라치면 수액이 차 올라 잘 부러지지가 않죠.

보름전 달서구 지하철 상인역으로 걸어가는 중 0.1㎜ 정도 눈을 뜬 산수유 꽃을 봤습니다. 꼭 파충류의 눈매 같았습니다. 그런데 개나리·진달래 필 때, '아 봄이 왔구나' 하면 그런 분은 진정 봄의 맘이 뭔지 모릅니다. 외관으로 보이는 모습만 갖고는 한 계절이 오는 각도를 제대로 감지 못합니다. 진정한 고수는 겨울바람 속에서 춘풍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입춘이 지나면 바람 기운부터 달라지죠. 옛 사대부들은 그런 낌새를 단번에 알아채죠. 입춘 즈음이 되면 육지의 땅은 꽝꽝 얼어 있지만 제주도로 오면 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주시 북제주군 한림읍 협재리 한림공원(1971년 개장)은 12월 중하순부터 1월초 사이에 어김없이 복수초와 수선화의 꽃망울을 벙글게 만듭니다. 물론 육지에서도 겨울을 나는 '떡배추'로 불리는 삼동초와 포항시 칠포해수욕장 근처 곡강 마을의 포항초(시금치)와 포항시 대보면 구만리, 전남 고창군 학원농장, 전남 함평군 대동면 덕산마을 보리밭 등도 '겨울 속 봄'을 알려줍니다. 또한 해남 산이·화원·문내·황산면은 국내 최대의 월동배추의 메카입니다. 여기서 국내 소비량의 75%가 출하됩니다.

복수초와 수선화 향기는 조생종 유채꽃과 어우러져 카페리 가는 속도로 남도로 걸어갑니다. 이때 목포 앞에 있는 노하도 근처 바다색이 달라지고, 파도 위를 스치는 바람의 냄새도 미끄러워집니다. 앙칼지던 바람의 날이 뭉긋해지고 차가운 것 같으면서도 나른한 표정이 느껴지죠, 바다색에 조금 옥빛이 감돕니다. 파랑에 연두색 기운이 묻어나는 거죠. 이때가 되면 바닷속에서 잠을 깨는 어패류가 있습니다. 제주도 서쪽 우도 근처에서 성게가 하품을 합니다. 2월말~3월말이 성수기죠. 이 성게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식재료는 바로 제주 미역입니다. 경상도의 경우 소 양지머리나 북어, 말린 홍합류 등을 넣지만 제주도에선 그런 게 귀하니깐 노릇누릇한 성게 속살을 넣습니다.

산방굴사가 있는 산방산 근처 중앙식당(064-794-9167)'이 입소문을 탔네요. 그냥 허름한 백반집 같습니다. 이 집은 성게와 함께 '바다 다슬기'로 불리는 제주 명물 보말을 섞어 더 진한 맛을 냈습니다. 이른바 '성게보말미역국'입니다. 시간이 좀 더 있다면 모슬포항 근처 덕승식당(064-794-0177)에 가면 겨울~봄 많이 잡히는 쥐치로 끓인 매운탕의 별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된장맛이 스며들었습니다. 여기는 양념은 적게, 재료는 푸짐하게 원칙을 지킵니다. 일반 관광객들은 웬만해선 그곳과 인연을 맺지 못합니다. 현지인들도 그곳을 잘 모르니깐요.

참고로 제주도에는 나물 전문 한식집이 없습니다. 있다면 육지산 나물이 공수된 걸 겁니다. 4월초가 되면 겨우 고사리 햇순이 등장합니다.

◇…남도의 홍어애 보릿국

동백꽃이 피고, 광양군 고로쇠 나무가 울면 매화도 이에 화답하듯 '영춘송(迎春頌)'을 부릅니다. 동백꽃 말이 나왔으니 한 가지 정보를 알려드릴 게요. 우린 동백꽃 하면 자꾸 여수 오동도만 거론하는 데 그건 '관광용'이라 여기세요. 고수들은 여수 돌산도 끄트머리 향일암의 동백꽃을 제일로 칩니다. 그 종류도 무려 다섯 가지입니다. 아침동백·하늘동백·밤동백·바다동백·허공동백. 그 다음 괜찮은 건 강진 백년사 동백, 야생차가 안개처럼 피우는 흰꽃도 보성 차밭에서 봐야 이른 봄을 봤다고 외칠 수 있는 겁니다.

텁텁한 겨울혀를 한방에 날릴 음식을 찾으세요.

그래요, 전남 강진, 해남, 나주, 목포 등 흑산도 홍어 산지권 보리밭에서 나는 야들야들한 보리싹에 된장과 홍어애(내장) 넣고 끓인 '홍어애 보릿국'이 '남도 1호 봄맞이 국'이죠. 그런데 대구쪽 미식가들은 이런 국이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흑산도 홍어 대량 유통 센터인 전남 나주시 영산동 38년 역사의 홍어1번지에 가면 사철 보릿국을 맛볼 수 있습니다. 강진의 대표적 한정식 해태·명성식당은 미리 연락을 해야 끓여준다고 합니다. 대구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동구 '대구 홍어 1번지'에서 보릿국을 선보였는데 올해부터 끓이지 않는다네요.

보릿국 맛본 방랑객은 연이어 매화타령을 부르는 광양군 다압면 도사리 매화마을 매화를 구경하고 경남 통영과 거제로 가서 봄맞이 국 제2탄을 맛봅니다. 바로 '도다리 쑥국'입니다.


◇…경상도의 봄은 한재 미나리에서 온다

매년 입춘 무렵 경상도 미식가들을 유혹하는 먹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청도 한재와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정대 미나리입니다.

전국에 봄 미나리 붐을 일으킨 주인공 한재 미나리, 청도역을 지나 밀양 방면 25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유호검문소 옆에 '무농약 농산물 재배단지'라는 입간판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한재미나리 작목반이 있는 한재마을. 청도읍 평양1·2리, 음지리, 상리 등 4개 마을을 끼고 있습니다. 친환경 인증 무농약 농산물 재배지역으로, 전체 재배농가는 120여호. 이중 작목회 소속은 110농가. 온상 미나리는 빠르면 1월 중순부터 나옵니다. 이때부터 5월초까지 특수를 누리는데, 주말에는 차량 교행이 힘들 정도. 예전에는 노름이 판을 쳤는데 이젠 미나리가 판을 칩니다. '상전벽해'란 이 마을을 두고 생긴 말 같습니다.

맛도 맛이거니와 된장 찍은 삼겹살 한점 돌돌 만 미나리를 배우자의 입에 넣어주며 해바라기처럼 웃는 아녀자의 푸짐한 얼굴이 자꾸 그려집니다. 저도 거기 한번 다녀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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