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이병우 롯데호텔 총주방장 生生 인터뷰

  • 입력 2009-02-27   |  발행일 2009-02-27 제43면   |  수정 2009-02-27
"맛은 기본…이제는 감각파 조리사시대"
국가의 음식 위상은 '국력'과 비례
세계적 조리사는 어학에도 능통해야
전통음식도 현재·미래와 소통 필요
스타급 한식 조리사 세계무대 세울때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이병우 롯데호텔 총주방장 生生 인터뷰

◇…일식에 자장면을 섞을 수도 있다

서울 롯데호텔 총주방장 이병우씨가 지난주 대구에 와서 만나봤습니다.

그는 현재 세계 요리의 흐름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 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셰프 중 한 명입니다. 1996년 '아시아의 위대한 요리사' 서울 대회에 참가, 프랑스의 대표적인 요리인 푸아그라(거위간)에 된장을 섞은 크림소스를 곁들인 요리, 일명 '한복 입은 푸아그라'로 영예의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의 음식을 먹은 세계적 VIP도 적지않습니다. 이번에 서울에 온 힐러리도 그렇고 코피아난 전 UN사무총장은 '튜나 타르타르'에 매료됐습니다. 담백한 맛이 특징인 이 요리는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해 튜나 자체의 부드러움이 혀를 감싸죠.

2002 한·일월드컵 때 롯데호텔에 장기 투숙한 히딩크 감독은 '최상급 한우 안심 스테이크'를 즐겼습니다. 2006년 4월 롯데호텔에 머물렀던 미국 프로 풋볼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계 혼혈인 하인스 워드는 신선로와 구절판 요리는 물론 떡볶이와 순대도 먹었습니다.

뜻밖에 그의 고향이 포항시 흥해여서 더 친근감을 느꼈습니다.

대구시 중구 대신동 세화요리 & 외식연구소 박성숙 원장의 초대로 대구에 특강하러 내려온 그는 1시간30분 남짓 올챙이 조리사를 대상으로 특강을 했습니다.

세계요리경연대회 심사위원으로 자주 참석하는 그가 강연 서두에 한 말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일식에 자장을 섞을 수 있다"와 "요리사 경력과 성공은 무관하다"였습니다. 그는 "원칙만 고수해선 살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바로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음식의 퓨전화'의 한 흐름이라고 봅니다.

"이제 맛만 있어선 성공하지 못한다. 멋도 있어야 한다. 경력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감각이 있다면 10년만 배우면 충분히 고수가 될 수 있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테크닉 측면에선 한계가 있어 더 발전하지 못한다."

음식 감각과 창조성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또한 은근히 한국외식산업을 교수들이 좌지우지하는 현실도 지적했습니다.

"앞으로 안목있고 창조적인 조리사들이 전면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하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조리사들의 감각이 낙후되어 있고, 고도의 미식가가 없기 때문에 긴장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냥 기본기로 버티는 것 같다. 특히 미래에 대한 도전의식, 새로운 메뉴개발에 애착을 보이는 실험적 조리사가 설 자리가 너무 좁다. 그래서는 지방의 양식 문화가 일취월장할 수 없다."

◇…요리만 잘 해선 결코 1인자가 될 수 없다

그는 요리만 잘해선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조리사는 요리만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음식만 만드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세계적 요리사는 정치인 못지 않게 세계 유행의 변화를 예의주시한다. 바로 패션과 트렌드의 향방을 예리하게 캐치하는 것이다."

그는 '한식의 국수주의'도 경계했습니다.

"한식도 자꾸 전통만 고집해선 살지 못한다. 동시대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전통음식은 사실 박물관에 전시되어야 할 음식으로 전락한 거나 마찬가지다. 전통을 뿌리로 해서 현재와 미래의 음식라인을 재창조해야 된다. 조선 수라상이나 궁중요리 등은 박물관에서 재현형식으로 보여주면 된다. 더 중요한 건 달리진 세상에 맞게 개조하고 리모델링을 해야 된다."

요리의 본질은 뭘까?

그는 단연코 '감각'이라고 합니다.

"음식은 산수가 아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되는 게 아니다. 한식은 한 가지 음식을 갖고 한 가지 맛을 내지 않고 여러 가지 요소를 믹싱한다."

300여명의 조리 관계자를 움직여야 하는 총주방장의 하루는 무척 바쁩니다.

"물론이다. 내가 모든 것 다 챙길 수 없다. 롯데호텔 조리부는 모두 13개 파트가 있다. 그 파트장을 불러 오늘의 음식 흐름, 이 주의 흐름, 한 분기의 흐름, 1년의 흐름에 대한 지침을 주면 디테일한 건 파트에서 알아서 한다. 세계적 VIP가 오면 내가 직접 나서 레시피까지 지시한다."

요즘 젊은 조리사들이 세계적 요리경연대회에서 두서의 성적으로 입상합니다. 그런데 한국음식은 아직 세계무대에서 밀리죠. 그 이유는 뭘까요?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하지만 아직 세계메이저급대회에는 역부족이다. 간혹 큰 상을 받지만 그것과 한식의 세계화와는 별개의 문제다. 한 국가 음식의 위상은 결국 국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부에서 한식 조리사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만약 어떤 조리사가 미국 뉴욕에 과감하게 식당을 내려고 할 때 지원도 해주고, 스타급 한식 조리사도 국제무대에 띄워야 한다."



◇…앞으로는 식당 주인이 아니라 오너셰프 시대가 온다

예전에는 식당 사장이 전권을 행사했습니다.

이젠 전문 조리사가 경영까지 겸하는 '오너셰프(Owner chef)'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요즘 서울 강남 청담동 등에 예약 해야만 음식을 들 수 있는 '고급 부티크 레스토랑'이 생기고 있습니다. 조만간 지방에도 이런 버전의 양식당이 득세를 할 것입니다.

그는 호텔 양식당 시대도 그렇게 롱런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또한 조리사의 4대 덕목을 ' Passion(열정)·Sense(감각)·Faithfulness(성실)·Bilingualist(외국어 구사)'로 보더군요.

"같은 재료라도 감각있는 조리사를 만나면 다른 차원의 멋진 음식으로 둔갑한다. 접시의 색깔, 재질, 크기, 그리고 거기에 맞는 음식의 양, 다른 식기와의 크기·세팅 지점을 정리해야 된다. 또한 식탁보와 조도, 음악, 심지어 티스푼과 물잔의 각도까지 배려해야 멋진 식탁이 된다. 자연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안목이 있어야 된다."

그는 대구10미 중 하나인 동인동 찜갈비를 담는 찌그러진 양은 냄비한테는 그렇게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습니다.

현재 롯데호텔 대표적 양식당은 프랑스 요리 명인이 직접 자기 이름을 건 '피에르 가니에 서울'입니다. 풍부한 디저트로 유명하죠.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이병우 롯데호텔 총주방장 生生 인터뷰
서울롯데호텔 양식당 삐에르 가니에르의 한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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