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우리밀 지킴이 김월자 아줌마

  • 입력 2009-06-12   |  발행일 2009-06-12 제43면   |  수정 2009-06-12
"이제 가창에선 저 혼자 밀농사 짓고 있어요"
벼추수 직후 파종해 다음해 6월중순 수확
도정공장 없어서 성주까지 가서 제분해요
우리집 명물은 밀기울로 만든 동동주·된장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우리밀 지킴이 김월자 아줌마

◇…텃밭에 우리밀이 자라고 있어요

자기 텃밭에서 직접 밀을 키우고, 그 밀로 밀가루를 만들어 칼국수를 만드는 식당, 과연 없을까요?

그런 정신으로 요리를 하는 식당을 수소문 해봤지만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들 농사 짓는 것도 힘든데 그걸로 식재료를 만들어 요리하는 건 너무 번거롭고 시대착오적이라 했습니다. 그래요, 농사 따로·식재료 따로·요리 따로 세상입니다. '분업 세상'이니 할 수 없겠죠. 요리사는 자기 손안에 들어오는 식재료가 어떤 경로를 거쳐 만들어졌는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자경자작 시스템이었고, 양념부터 식부자재까지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천연의 맛이 가능했습니다. 이젠 그렇게 해선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모든 파트가 따로 돌아갑니다.

다행히 최근 장인 정신이 스며든 한 식당을 발견했습니다. 대구시 가창면 삼산리 팔조령 터널 아랫 마을, 우록리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서 만났습니다. 우리밀할매손칼국시(사장 김월자)입니다. 이 집을 소개해 준 분은 여류화가 김문숙씨입니다.

올해 마흔넷의 여주인 김씨는 옛 여인처럼 쪽을 찌고 있습니다. 두 달전쯤 이성복 시인과 함께 그 집에서 뚝배기처럼 생긴 용기에 담겨져 나온 우리밀로 만든 칼국수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원시버전의 칼국수를 맛봤습니다. 개떡처럼 투박한 질감의 면발에서 잃어버린 고향의 국수 맛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여느 수입산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와 달리 이 칼국수는 그렇게 매끈거리지는 않고 메밀묵처럼 수수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요즘 국수 스타일에 길들여진 분들에겐 맛이 좀 심심할 지 모르겠네요. 원래 고수들은 담백하고 심플한 걸 좋아하잖아요.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버전으로 살아가는 여사장

이제 농꾼으로 사는 여주인 김씨 얘기를 좀 해볼까요.

이 동네에서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습니다. 그녀는 올해 일흔셋의 어머니(배분도)가 요리 코치를 해주는 바람에 음식하는데 그렇게 큰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손맛도 다 전수했습니다. 어머니는 1991년 현재 자리에서 일반 국시집(가창 칼국수)을 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 근처에는 우록리 염소고기 전문식당인 '화담' 이외에 식당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외식 개념이 이곳 사람들속에 싹틀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녀는 뜸뜸이 오는 귀한 손님들에게 수입산 밀가루로 칼국수를 빚어주는 게 영 마뜩찮았습니다. 그래서 15년전에 예전 방식대로 우리가 밀농사 해서 제분해서 면발을 뽑아내자고 결정했습니다.

식당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세 마지기(1천980㎡) 밀밭이 있습니다. 가을 벼 추수가 끝나자마자 파종해 6월중순께 추수를 합니다. 40㎏ 들이 50포대 정도 소출이 난답니다.

김씨가 기자에게 밀과 보리를 구분해보라 합니다. "잘 모르겠다"고 하니 직접 둘을 비교해주면서 설명해줍니다.

"겨울을 나는 밀과 보리는 벌레가 달려들지 않아서 농약을 치지 않아도 됩니다. 밀과 보리는 비슷하지만, 밀은 듬성듬성 알이 박히고 보리보다 좀 더 굵지만 보리는 촘촘하게 알이 박혀 있습니다. 일반 정미소에는 밀을 제분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가창에도 밀 제분소가 있었는데 세상이 변해 밀 농사 하는 데가 우리 집 한 곳밖에 없으니 밀 제분소도 사라질 수밖에요. 그래서 성주군 가천면에서 밀을 가루내 옵니다. 밀은 보리와 달리 손으로 껍질을 벗길 수 있습니다. 붉은 색의 속껍질이 나오는데 이걸 벗기면 바로 밀기울이 됩니다. 이걸 갈아서 실온에 두면 습기가 있어 벌레가 생기니 3~4℃ 저온냉장고에 보관해 필요할 때마다 사용합니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3시쯤 기자는 김씨의 밀밭을 구경했습니다. 밀밭은 추수 직전에 달해 적황빛 기운이 수런대고 있었습니다.


◇… 질그릇에 농주처럼 담겨져 나온 칼국수

반죽은 생콩가루에 밀가루 적당량 섞어 소금 넣고 물을 넣습니다.

생콩가루는 쫄깃함을 더 내기 위해서 넣습니다. 여름엔 찬물, 겨울엔 따뜻한 걸 넣어야 반죽이 잘 됩니다. 칼국수는 평범해 보이지만 반죽에서 채썰기까지 여간 기량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대충하면 면이 수제비처럼 뚝뚝 끓겨져버려 상품가치가 없습니다. 20~30분 손으로 치대면서 익반죽을 해서 나중에 기계에 넣어 한번더 반죽해줍니다. 면발을 채썰어낼 때는 가장자리가 오므라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식칼로 직접 가지런하게 썰어냅니다. 육수는 멸치와 다시마, 무 등을 넣어 백철솥에서 만들어냅니다.

"국수다 다 끓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나무 젓가락으로 면발을 휘휘저어 딱딱한 기운이 느껴지면 다 되지 않은거고, 보들한 느낌이 나면 다 된거죠. 처음 끓일 때 국물맛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 감자를 넣고 나중에 애호박, 부추, 배추를 넣습니다.

이집의 명물은 칼국수 이외에 밀기울로 직접 빚는 농주(밀동동주)가 있습니다. 김씨는 밀기울에 효모를 섞어 그늘에 두달 정도 숙성시켜 천연 누룩도 만들어 밀로 만든 동동주를 직접 주조합니다. 식당 한켠에 놓인 옹기에서 빗소리가 들립니다. "저 소리가 뭐냐"고 물으니 바로 술익는 소리랍니다. 찹쌀 고두밥과 누룩물, 감주 등을 항아리에 넣어두면 약 2일간 술익는 소리가 격렬하게 들린다고 하네요. 성냥불을 켜 안 꺼지면 속에서 가스가 올라오지 않는거니 술이 다 된거로 본답니다. 된장도 여느 집과 달리 옛날 쌈장 같습니다. 통밀, 고춧가루, 보리쌀, 일반 된장을 섞어 만듭니다. 김치도 텃밭 배추로 만들고 멸치 젓갈도 직접 집에서 노모가 장만합니다. 칼국수는 5천원. 농주 한되 8천원. 부침개 4천원. 휴무 없고 밤 10까지 영업.(053)767-9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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