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통영굴의 메카 양촌마을을 찾아서

  • 입력 2009-12-04   |  발행일 2009-12-04 제42면   |  수정 2009-12-04
농한기 시작되면 통영 굴양식장은 '굴번기' 돌입
전국 굴생산량의 80∼90%가 통영서
10월13일 햇굴 출하…10㎏당 11만원선
경매는 전국 유일 수하식굴수협에서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통영굴의 메카 양촌마을을 찾아서
1시간20분 거리의 양식장에서 따 온 굴껍질을 벗기고 생굴을 빼내는 작업장인 박신장 2층 구내식당에서 내려다 본 모습. 통영 양촌마을 박신장에 일하러 온 할머니들의 숙달된 손놀림.

◇…통영 양촌마을 '박신장' 할머니들

구마고속도로를 거쳐 대전~통영고속도로 통영IC를 통해 나왔습니다.

불과 5분거리에 있는 '한국 양식굴의 메카'로 불리는 통영시 용남면 삼화리 양촌마을에 사는 굴 삼형제를 만났습니다. 김동원·동현·동원 형제입니다. 겨울에 가끔 파래와 함께 초무침 형태로 나온 굴을 맛봤지만 그놈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밥상에 오르게 됐는지를 현지에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남해안 생굴은 경남 통영과 고성, 거제, 마산, 전남 여수를 중심으로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말까지 4만t 이상이 생산됩니다. 이는 전국 생굴 생산량의 80~90%를 점하는 수준이고 통영시 동호동에 있는 전국 유일의 수하식(굴을 바다에 늘어뜨려 키우는 방식) 생굴 수협 등을 통해 전국에 보내집니다.

양촌마을을 깨우는 건 굴 까는 작업장인 '박신장'입니다.

오전 4시를 조금 넘기면 곧 통영시에서 할머니를 태우고 작업장 앞에 내려놓는 봉고차 전조등 불빛이 어촌을 깨웁니다. 할머니들은 박신장에서 종일을 보냅니다. 80호가 모여사는 이 마을의 박신장은 모두 8군데입니다. 아침이 되면 아버지는 굴양식장으로 굴따러 가고, 어머니는 일용직 할머니와 굴을 까고, 아이들은 혼자 남아 굴껍질을 갖고 놉니다. 굴이 없는 통영은 암흑입니다. 굴이 이들을 먹여살립니다. 오전 11시쯤 굴마을에 들어섰는데 인기척이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굴번기' 라서 그렇습니다. 굴마을답게 굴껍질이 모여 형성된 굴담이 인상적입니다.

농사보다 바닷일은 몇 배 더 힘이 듭니다. 농부들에게는 농한기가 있지만 어부들에게 사실 그런 게 없습니다. 양식 굴도 10회 이상 바다로 들락거려야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5~6월 코팅사에 매다는 종패가 8월 정도가 되면 조금 커져 줄이 바닥으로 처지게 되는데 이때 부표를 달아주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특히 박신장 할머니들의 손목은 말이 아닙니다. 통증이 심해 일하는 중간, 뜨거운 물에 한 손을 담그기까지 합니다.

박신장 안으로 들어가서 "안녕하세요" 인사했는데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습니다.

일당 때문이죠. 모두 경쟁적으로 굴을 깝니다. 깐만큼 돈을 주기 때문이죠. 깐 굴은 11㎏ 단위로 비닐봉지에 채워져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월~토요일 어둑해지먼 열리는 동호동 경매장으로 보내집니다. 포장과 세척 일을 담당하고 있는 동명씨의 아내 최옥자씨(46)가 억척스러운 할머니들을 자랑합니다.

"시간당 시급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굴을 깐만큼 돈을 주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일을 합니다. 심지어 낮 12시 점심을 먹어도 5~10분만에 밥을 후딱 비우고 다시 작업대로 갑니다."

할머니들의 굴깐 성적표가 화이트 보드에 적혀 있습니다. 굴까기의 달인은 백경자씨, 그녀는 하루에 다른 할머니보다 2배 이상 까 13만~14만원 정도 법니다. 이집 박신장에는 다른 곳에서 절대 볼 수 없는 명물이 있습니다. 바로 2층 구내식당 식탁 다리와 일체식으로 달려 있는 식탁용 의자였다. 의자가 식탁에 붙어 있기 때문에 더 일하기가 쉽다고 하네요.

◇…굴은 아무나 못 깐다

굴은 아무나 까지 못합니다.

기자가 한번 시도했는데 삐끗 칼날이 오른손 바닥을 찌르고 말았습니다. 굴 눈 아래 연하 부위를 칼로 밀어 넣은 뒤 속살이 상하지 않게 상하좌우를 과학적으로 파고들어야 열립니다. 족히 한달은 숙련해야 작업대에 오를 수 있습니다.

다른 어패류는 새벽에 경매를 하는데 굴은 오후 5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야 동절기 특성상 18시간 햇빛에 노출되지 않고 전국 곳곳으로 배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경매시각 때문에 삼형제는 오전 5시 박신장에서 무려 1시간20분 떨어져 있는 고성만 굴목장으로 갑니다. 굴배 타는 어부들의 아침은 거의 굴라면입니다.

바다도 주인이 있습니다. 수산 당국에 허가를 받아야 양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젠 한려수도 굴양식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당국이 더 이상 양식장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바다를 사용하려면 ㏊ 당 6천만원 정도 내야 합니다. 생굴 10㎏ 당 4만원은 넘어야 이윤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한번 바다로 나오면 4~5t따옵니다. 매출액은 1천만원선. 현장으로 가는 배를 여기선 '뗏목선'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자동 채굴기를 통해 따낸 굴을 500㎏ 쯤 되는 망을 뗏목선으로 옮기는 리프터가 장착돼 있습니다. 굴양식장 제작 지침이 있습니다. 인종 종패장에서 가져 온 종패를 매달아 키우는 양식줄을 지탱하는 가로 밧줄 길이는 200m, 40㎝ 간격으로 6.5m 코팅사에 굴 종패 25~26개가 붙습니다. 굴이 바닥에 빠지지 않게 5천원짜리 스티로폼 부표를 답니다.

요즘은 담치가 극성을 부립니다. 반은 담치가 매달려 있습니다. 굴이 올라오면 60㎝ 길이로 잘라줘야 담치 제거기가 잘 작동됩니다. 올해의 경우 10월13일 첫 경매가 이뤄졌습니다. 요즘 10㎏ 한 박스 경매가는 11만~12만원입니다.

한국의 굴은 크게 양식굴과 자연산 굴로 나뉩니다. 서해안 굴의 메카는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포구 굴맛 체험장과 천북 굴단지, 그래서 서해안 굴이 '천북굴'로 불리죠. 여긴 통영과 달리 수하식이 아니고 직접 바위에 붙은 굴을 쪼아 속을 캐내는 방식입니다. 아낙네들은 물이 들어오는 오후 2시까지 일합니다. 또한 거제도 구조라 해수욕장 인근 갯바위에선 해녀들이 캐올린 갓난애기 머리만한 자연산 통굴이 명물입니다.

◇…굴에 대한 에필로그

앙탈부리는 거친 껍질을 돌파하면 비너스보다 더 고운 피부의 굴이 두 팔을 벌립니다. '점입가경' 어패류인 굴. 역사상 가장 많이 먹은 예술가는 누굴까요. 대작가인 발자크는 한번에 1천444개를 먹었다고 합니다. 미스터 섹스로 불리는 카사노바는 하루에 네 번 굴을 먹고 먹을 때마다 12개씩 먹었다죠. 굴에는 아연 성분이 풍부합니다. 정자가 활동적이려면 아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니 굴 미식가들은 자연 파워풀하게 살 수밖에 없겠죠.

통영 가시면 반드시 케이블카 타고(오후 4시에 마감) 반드시 미륵산 전망대에 올라 360도로 펼쳐지는 한려수도의 진경을 만끽하세요. 남해 풍광이 그렇게 미학적으로 그려진 곳은 없는 듯 합니다. 그리고 시내로 가서 통영식 실비집인 '다찌'(4명이 5만원 정도면 먹을 수 있고 소주 한 병 1만원)도 꼭 가보세요. 참고로 굴떡국·굴해장국의 밑물은 쌀뜨물입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