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부산 돼지국밥 이야기

  • 입력 2010-01-22   |  발행일 2010-01-22 제36면   |  수정 2010-01-22
밀양이 '씨앗'을 뿌렸고 부산에서 '꽃'을 피웠다
밀양 무안면이 '한국 돼지국밥 메카'
부산은 6·25 때 피란민 틈속에서 번창
평산옥은 '육국수', 덕천고가는 '장국'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부산 돼지국밥 이야기
부산 국제시장 옆 부평시장, 부산대와 함께 부산의 3대 돼지국밥골목으로 유명한 서면시장 돼지국밥골목 전경.

◇…돼지국밥의 유래

부산 돼지국밥에는 '야성'이 있습니다.

부산 출신 최영철 시인의 지적입니다.

밀양·부산·대구에서 '삼국지열풍'에 가깝게 붐을 일으키는 돼지국밥은 유래가 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중국에서 쇠고기는 인기가 별로입니다. 고기라 하면 돼지를 일컫습니다.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가 정리한 한국 식품사 연표(한국음식 오디세이, 생각의 나무 간, 2007년)에 따르면 1325년 조정에선 소와 말의 도살을 금지하고 이를 돼지, 닭, 거위, 오리 등으로 대체하도록 합니다. 돼지요리가 번성했겠죠. 국내에 육식문화를 본격적으로 퍼트린 건 몽골입니다.

돼지국밥은 국에 밥을 말아둔 형태인데 예전에는 '탕반(湯飯)'이라 했습니다. 탕은 양, 밥은 음이었고 탕반은 음양이 교합된 먹을거리였죠. 중국 문헌에서 탕반의 본격적 출현은 양나라(502-557)입니다. 이때 나온 옥편에 따르면 국에만 밥을 '찬(鑽)'이라 했습니다. 1800년대 말에 나온 조리서 '시의전서'를 보면 탕반 레시피가 등장합니다. 18세기 중반 전국 오일장이 무려 1천여곳. 그러니 얼마나 다양한 탕반문화가 발전됐겠습니까.



◇…부산 돼지국밥 & 밀양 돼지국밥

식품사학자들은 밀양면 무안면 동부식당을 중시합니다.

경상도 돼지국밥의 원형이 거기에 숨어 있다고 분석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부산 부평시장과 서면시장 뒤편 돼지국밥골목에도 밀양 돼지국밥이 성업 중입니다. 밀양 돼지국밥이 그만큼 유명하다는 반증이죠. 대구도 남구 대명동 앞산네거리 근처에 밀양돼지국밥이 들어와 있습니다.

밀양 돼지국밥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본 강점기 고 최성달씨가 밀양 무안면 시장터에 '양산식당'이란 국밥집을 선보인 것이 시초죠. 여긴 다른 집과는 달리 돼지 뼈와 쇠뼈(우골)를 섞어서 육수를 만들기 때문에 국물이 맑습니다. 그후 며느리인 김우금 할머니(83)가 현재의 '무안 식육식당'에서 밀양 돼지국밥 브랜드를 형성시킵니다. 현재 김씨의 아들 3명의 '무안 식육식당(첫째 아들)', '제일 식육식당(둘째 아들)', '동부 식육식당(셋째 아들)'이 지근거리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3곳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김 할머니는 국밥 만드는 일에서 손을 뗐습니다. 장사가 잘 되는 곳은 동부식당(055-352-0023)과 제일식당(055-353-2252)입니다.


◇…100년 역사의 평산옥 & 서면시장 송정국밥

국밥 고수만 아는 돼지국밥집 한 곳이 부산역 맞은편에 있습니다.

상하이거리 옆 평산옥(051-468-6255)입니다. 4대 100년 역사를 자랑합니다. 여기선 국밥에 밥 대신 설렁탕처럼 소면을 넣어줍니다. 꼭 제주도의 고기국수 같습니다. 이집은 6·25 피란민들에게 공짜 국밥을 많이 베풀었죠. 육수는 일본의 돼지사골육수 '돈코츠' 같습니다. 이집 돼지 육국수(2천원)는 워낙 국물이 맑고 개운해 단골이 줄을 잇습니다. 도무지 잡내가 나지 않습니다. 특히 달콤새콤한 질금장 소스도 이집만의 자랑이죠.

그 다음으로 유서가 깊은 곳은 서면시장 내 송정돼지국밥(806-5722)입니다. 서면역 롯데백화점 뒷골목에 있습니다. 대구 국일따로처럼 1946년 오픈했고 김기훈씨가 3대째 이어받고 있습니다. 부산 사람들에겐 조방 앞 송정국밥하면 다 압니다. 평산옥에 비해 육수가 매우 두텁고 기운찹니다. 돼지 뒷다리를 사용하지 않고 전지와 사골뼈만으로 육수를 만들고, 항정살과 삼겹살 부위만 사용합니다. 뜨거움을 식히고 느끼함을 지우는 부추는 부산 돼지국밥의 가장 중요한 반찬이죠. 3~4회를 한 타임으로 모두 20여타임 토렴을 해야 맛이 납니다.


◇…낙동강 최고 객주가 덕천고가 장국

부산 돼지국밥 중 가장 독특한 형태는 바로 구포시장 근처에 있는 덕천고가(337-3939)입니다.

주인 권경업씨는 기인입니다. 히말라야급 산악시인으로 유명했죠. 조만간 인도트레킹도 기획중인 모양입니다. 그가 생계를 위해 장국 재현에 나선 겁니다. 이집에서 한국 객주가의 국밥 원형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900년대초 북구 덕천동 부근에 살았던 김기한이란 거상이 자기 집에서 김해, 양산 일대의 보부상, 거간꾼, 뱃사람 등에게 내놓았던 독특한 형식의 돼지국밥인 '장국'입니다. '돼지육개장' 같습니다. 부산에선 탕(湯)을 '땡'이라고 합니다. 진탕을 '진땡'이라고 합니다. 장국을 만들려면 우선 진땡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최소 24시간 초벌탕을 만듭니다. 고압가스에 7~8시간 끓이면 사골 골수가 다 나오게 되고 석회질만 남습니다. 사골만 넣고 잡뼈는 넣지 않습니다. 다시 그 뼈를 진땡에 넣고 재·삼탕을 만들어 장국 육수를 배합합니다. 남은 뼈는 사료업자가 수거해 갑니다.

장국 한 그릇은 5천원에 불과하지만 만드는 과정은 정말 비쌉니다.

초·재·삼탕 육수를 잘 배합하고 거기에 배추 우거지 중 가장 질긴 부위만 넣고, 부추, 파, 마늘 고춧가루를 넣고 끓입니다. 우거지도 1년 먹을 걸 가을에 비축합니다. 옥상에 토장(간장을 빼지 않은 된장)을 넣습니다. 된장을 넣는 방식은 대구 봉덕시장 내 돼지국밥집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다른 집과 달리 뚝배기를 늘 끓는물에서 끄집어낸 뒤 국과 밥을 말아냅니다. 일종의 토렴과정이죠. 육개장, 시래기국, 설렁탕, 돼지국밥이 하나로 합쳐진 덕천고가 장국. 그래서 그런지 개업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줄을 잇습니다.


◇…스페셜 팁

시간이 남으면 대구 교동시장 좌판 할매버전의 국제시장 당면국수좌판도 접해보세요. 30명이 넘는 할매들이 밤을 지킵니다. 주당들이라면 충무의 다찌집과 같은 실비집인 감포집(부산시 중구 국제시장 1공구 A동·245-9848)에 가보세요. 고둥에서 시작, 바지락 칼국수까지 모두 20여가지 안주가 나옵니다. 기본은 2만원. 그럼 맥주 3병에 안주 한 세트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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