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빠베로 셰프 박소진씨 "대구식 이탈리아요리 진수 보일 것"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해외유학파 셰프를 찾아서-1 빠빠베로 오너셰프 박소진씨](https://www.yeongnam.com/mnt/file/201011/20101119.010360739370001i1.jpg) |
공부하라고 외국에 보냈더니 공부는 안 하고….
그런 해외유학파들이 국내로 들어와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 예전 부모들은 거의 '한숨천만'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잘 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이 더 성공률이 높아서 부모도 적극 밀어준다. 청년백수공화국, 학벌만으로 성공적 삶을 장담할 수 없는 무한경쟁의 세상, 갈수록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저마다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고'란 구절이 절실해지는 요즈음이다. 특히 유학갔다가 그 나라 음식에 중독, 급거 귀국해 자기만의 식당을 오픈하는 20대들도 적잖다. 대구에서도 지역 미식가를 감동케 하는 '해외유학파 오너셰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구 식당문화가 더 성숙해진다는 증거다. 이번주부터 그 주인공들의 유별난 삶의 행간을 음미해본다.
◇ HEY, PAPAVERO!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 있다.
바로 '빠빠베로(PAPAVERO·양귀비꽃)'이다. 그 꽃에 매료 된 한 해외유학파 여성이 있었다. 바로 박소진씨(29). 그녀는 바다 건너에서 자기 삶의 키워드를 찾았다. 이탈리아에서 10년쯤 기본기를 닦고 지난 8월 대구로 와서 일을 저질렀다. 그 꽃이름을 상호로 가정식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수성구 상동에서 오픈한다.
지난주 토요일 오전 10시30분 그녀를 만났다.
수성못 수변 호반레스토랑에서 파동 오거리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보이는 사진찍기 좋은 테라스가 딸려있는 빠빠베로. 넓은 유리창 안으로 내부 풍경이 보인다. 잘 익은 '바게트 냄새'가 전해온다. 브런치풍이다. 식당 안팎에 노랑 국화 화분이 빼곡하게 놓여 있다. 박씨는 이탈리아 음식으로 끝장을 보기 위해 남편도 이탈리아 사람으로 택했다. 두 살 위인 미켈레와 이탈리아에서 결혼했다.
현재 빠빠베로는 가족 운영체제. 주방은 박씨와 남편, 그리고 매니저는 어머니. 벌써 모녀의 팔 곳곳이 화상 투성이다. 어머니는 딸 박씨를 '박셰프'라고 부른다. 박씨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물품은 바로 이탈리아 친구가 자기 이름을 적어 선물로 준, 피자용 도(반죽 된 밀가루)를 굽는 데 사용하는 부삽이다. 시어머니가 준 원목 싱크대를 비롯 이탈리아에서 사용하던 피자용 화덕, 프로슈토 절단기 등도 컨테이너 박스로 공수해왔다.
체크무늬 테이블 보, 피자용 접시, 양귀비꽃이 그려진 비지리 접시, 체스판 문양 같은 바닥 등이 쿨버전이다. 유럽풍의 접시도 그림처럼 벽에 진열해 놓았다.
◇ 박소진의 이탈리아 유학기
대구 가톨릭대 서양어문학부 시절 1지망에 이탈리아어과를 선택해 교수들을 놀라게 한다.
2학년을 마친 2001년 12월 이탈리아 뻬루쟈 국립대 교환학생으로 이탈리아로 간다. 심화학습이라기보다 '돌파구 모색용' 유학이랄까. 이탈리아어를 배우며 이탈리아 문화를 익히던 중 부모로부터 이탈리아 요리를 권유받는다. 순간 감전되는 것 같았다. '그래, 소진이 너는 어렸을때부터 남달리 요리책이나 요리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또 관심이 많았잖아. 왜 그걸 아직 몰랐지.'
셰프의 길이 자기가 갈 길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에는 결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정한 즉시 밀라노, 로마 등 여러 도시의 유명한 요리학교를 견학하며 사전조사에 착수한다. 이탈리아 피렌체 꼬르동 블루(Cordon bleu)를 붙든다.
"단지 테크닉만 중요시하는 다른 요리학교와는 달리 요리의 기초에서부터 이탈리아 각 지방의 지방식 향토식 명절음식 등 전통과 이야기거리가 다양한 음식을 하나하나 배울 수 있는 것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지금 화두가 되고있는 푸드스토리텔링의 중요성도 거기서 배운다. "요리술만 배운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단지 요리공부 하나로는 진정한 이탈리아인들의 식문화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탈리아 음식에 맞는 와인, 식사를 마무리해주는 에스프레소 등에 대한 기본기도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즉시 이탈리아 와인 소뮬리에 협회(A.I.S) 에서 주관하는 소뮬리에 과정과 바리스타 과정을 연마한다. 음식을 축으로 이탈리아 현지인의 체감음식문화를 리얼버전으로 익힐 수 있었다.
"오랜 이탈리아 생활을 뒤로 하고 제 고향 대구에 빠빠베로를 오픈하면서 내가 꼭 외교관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 대구 & 이탈리아
-대구음식문화와 이탈리아음식문화가 많이 다를 것이다.
"우리는 '빨리빨리문화'지만 이탈리아는 그렇지 않다. 중국보다 더 만만디다. 2~4시간 식사에 기꺼이 할애한다. 우리는 식기를 빨리 치우면 빨리 나가라는 눈총으로 받아들이지만 이탈리아는 극진한 서비스로 여긴다. 나폴리에는 별도 메뉴판이 없다. 이는 주인이 알아서 해주는 걸 먹으라는 식이다. 그만큼 자존심이 높다. 매니저와 웨이트도 우리와 달리 정장차림의 노인들이다. 와인의 경우 우린 병마개를 따주는 코키지차지가 있지만 현지에는 없다. 또 주방복 입은 채로 밖에 나와 손님과 얘기하는 것에도 아직 대구는 덜 익숙해져 있더라."
-개업한 뒤 가장 큰 어려움은 없었는가.
"10년간 이탈리아에 있다 보니 확실히 정서적 차이가 느껴져 극복하느라 힘들었다. 대구분들 파스타 삶는 걸 잔치국수 삶는 것과 동일시한다. 우린 파스타 육수 하나도 3일간 3탕해서 만들고 면도 여느 집과 달리 한번 삶아 올리브 오일로 버무려 냉장보관해 내지않는다. 주문 즉시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그런데 자꾸 빨리라고 하면 요리가 망가진다. 내가 가서 왜 시간이 길어지는 지 그 이유를 설명하면 대부분은 알아듣는다. 앞으로 느긋이 즐기는 마니아가 많아 질 거라고 본다."
-그래도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지 않는가.
"맞다. 이제 대구의 빨리빨리 문화도 이해해주려고 한다. 한식에 대한 감각도 필요한 것 같아 농림수산식품부가 주관하는 경희대 한식 스타셰프 과정도 지난 7월 입학해 수료했다. 30명이 들었다. 한식을 하면서 지역민들에게 무조건 이탈리아를 고집하는 것 못지 않게 가장 이탈리아적인 것과 한식적인 것을 절충하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도 했다. 스타일을 고집하려다 이젠 고집 않는다. 대구 음식 뒤떨어져 있다고 하는데 실제 대구를 깊게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더라. 대구에서도 잘 하면 세계적인 셰프가 될 수 있다."
PS
기자는 소진씨보다 어머니가 더 대단한 것 같았다. 어머니는 대구로 오기 전 세계음식의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2년간 싱가포르도 데려가줬다. 한때 소진씨와 아들 정준군(입대)과 함께 뻬루자 대학에서 3명이 함께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유학기를 책으로 엮고 싶어하는 어머니, 현재 딸과 함께 영남사이버대 호텔외식창업경영학과에 재학 중인데 내년 9월 함께 졸업한다.
이날 기자는 6만원 상당의 이탈리아 가정식 풀코스식을 먹었다. 이탈리아 브레드 스틱인 그리씨니, 막걸리를 넣고 오랜시간 발효시켜서 만들어 직접구운 이탈리안 빵 세트(시금치빵, 오징어 먹물빵, 포카챠), 이탈리아 프로슈토와 메론 살라미 전채요리와 움브리아 주의 전통빵 또르따 알 떼스또, 프로슈토를 감아 오븐에 구운 새우요리, 시아버지의 레시피 그대로 만드는 수제 소시지 살시챠와 송이 버섯을 넣어 만든 노르치아 지방의 파스타, 최상급 한우 안심에 양귀비 씨앗을 붙여서 구운 스테이크, 오렌지 발사믹 드레싱의 샐러드와 이탈리아 가정식 반찬 3가지, 수제치즈를 넣고 맛을낸 이탈리아 정통 티라미수와 망고 샤베트, 스페셜 커피 샤께라또, 카카오와 초콜릿으로 맛을 낸 마로끼노를 먹었다. 맛은 교과서적이고 진지했다. (053)765-8805. 이춘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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