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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로 작곡 공부를 하러 갔다 파스타에 매료돼 레스토랑을 오픈한 변창민 셰프(왼쪽)가 자신의 요리지기인 김현동 셰프와 손을 잡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 사장과 셰프는 찰떡궁합
대구시 남구 대명9동 패션거리 내에서 젊은이들에게 제법 인기를 끌고 있는 파스타 전문점 파스타민.
가게 주인 변창민(31)은 네살 아래인 셰프 김현동(27)과 함께 인터뷰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좀, 이례적이었다.
"사실 오늘의 파스타민은 전적으로 김 셰프의 몫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19세에 요리를 시작한 김 셰프는 한때 삼덕동 프랑스 레스토랑 디종에서 일을 했고 가장 대구적인 그리고 자기만의 파스타를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 그를 발탁한 것도 오너셰프 유전자가 짙은 사장 변창민이기에 가능했다. 셰프를 불러도 자기가 요리를 꿰차고 있어야 실패하지 않는다는 걸 변창민은 잘 알고 있다.
외모만 봐선 그가 도무지 외식사업을 할 사람 같지 않다. 조금은 '모범생' 같기도 하고 물정 모르고 부모 덕분에 왕자처럼 유유자적할 것 같은데 실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왜 식당을 오픈했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았기 때문에 창업이 안겨주는 각종 고생을 맛있게 삼킬 수 있었다.
그는 원래 작곡가가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피아노를 치고 교회 성가대에서 합창을 하고 후에 교회 지휘자로도 활동을 했다. 상당수 음악가가 그렇듯이 그의 혀는 예민하다. 유명 식당이 있다고 하면 직접 혀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돼지국밥도 대구·밀양·부산 버전이 어떻게 다른지 분석해야 직성이 풀렸다. 특이한 맛이면 즉시 주방장에게 어떻게 만드는가도 물어봤다. 음악적 열정과 조리사적 열정이 어떨 때는 합창, 또 어떨 때는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다.
"스무살 즈음인가, 집에서 스파게티를 직접 만들어봤죠. 시내 디종의 크림해산물 스파게티에 반했습니다. 식당에서는 맛있는데 실제 집에서 해보니 그 맛이 아니었어요. 집과 식당의 차이점을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부엌과 식당의 가스 온도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걸 안 것이죠."
◇ 작곡 공부하러 이탈리아로
일단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 대구 가톨릭대 종교음악과에 입학했다. 툭하면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탈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 현지 스파게티는 우리 지역에 비해 아주 식재료가 간단하게 들어가면서도 하나 같이 특정 음식의 본질이 직접적으로 전해졌어요. 조미료는 뒤로 밀렸어요. 깔끔했고 그 음식을 먹으면 마치 기도하는 맘이 들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맘에 드는 실내 인테리어 사진을 모아나갔다. 귀국해 틈틈이 종교음악 작곡에 몰입했다. 대학 3학년 때 휴학을 하고 이탈리아를 더 해부하기 위해 로마 근교 라띠나로 음악 연수를 떠났다. 산타시칠리안대학에 다니는 친구의 집에 머물렀다. 눈에 번쩍 뛰는 식당이 줄지어 그를 유혹했다. 작곡 공부보다 음식 체험이 훨씬 더 값지고 황홀했다.
어느 날 자신은 음악이 아니고 음식이 천직이란 직감이 들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지역에서 일가를 이룬 패션디자이너인 부친 변상일도 아들의 기질을 존중했다. 대학 졸업 후 변창민은 시내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바짝 엎드린 세월을 보낸다. 월급도 받지 않고 음식을 배운다. 스스로 밑바닥이었다.
"음악을 하기 위해선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뭔지 알아야 하듯 나도 청소를 하고, 남는 시간에 양파를 까고 면을 삶고 토마토소스도 끓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아버지한테 매달려 사업자금을 받아 창업하지 않았다. 자기가 하려는 이탈리아 요리가 정확하게 어떤 버전인지 확고하게 알고난 뒤에 창업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한다.
"잡일을 하면서 주방의 희로애락을 체험할 수 있었어요. '주방일이 정말 힘드는구나'하는 걸 절감했기에 지금의 김 셰프와 절친으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원하는 요리가 뭔지를 알아요. 나는 좋은 식재료를 확보하러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상당수 사장들은 주방이 뭔지 몰라요. 그러니 조리사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죠. 요리를 알기 전에 주방의 조리사부터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볶는 것에 목숨을 건다
사장은 음식 익는 시간을 알아야 한다.
오너가 그걸 모르고 무조건 빨리빨리를 외치면 주방이 발끈할 수밖에 없다.
"조리사들은 항상 화상과 칼로 인해 부상을 당할 수 있어요. 상당수는 다쳐도 다른 사람한테 방해가 될 것 같아 상처를 대충 숨기는데 그러면 다친 본인은 물론 자칫 핏물 등이 음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상처를 입으면 그날 하루는 주방 대신에 바로 병원으로 보내요. 그게 효율적이란 걸 알았어요."
그도 직접 스파게티를 만들어 서빙을 했고 개업 전 서울의 음식에 대해 체험을 했다. 그런데 별 감흥이 없었단다.
"생각보다 그렇게 대단하지 못했고 가격만큼 맛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죠. 내가 해도 그만큼 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습니다."
2007년 10월 현재 자리에 오픈을 했다. 그는 매일 오전 3~4시 장을 보러 칠성시장 등에 나간다. 자신이 직접 장을 봐야 성공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파스타민만의 히트 메뉴
파스타민만의 히트 메뉴가 있다.
현재 21가지 파스타가 마련돼 있다. 그중에서 커리 & 칠리, 숙주와 파, 청경채, 해물 등이 들어간 상하이, 뇨키 파스타 등은 경상도 기질이 듬뿍 담긴 파스타민 스타일이다. 파스타민은 생면이 무조건 낫다는 선입견도 밀어낸다. 건면이 더 졸깃하고 고소하다고 본다. 무조건 즉석에서 해야 능사도 아니란다. 사람이 몰리는 낮 시간대는 어쩔 수 없이 미리 파스타를 삶은 뒤 올리브오일에 마사지해 냉장보관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끓는 물에 한번 데쳐 기름을 벗겨내고 요리한다. 식재료도 중시하지만 참 파스타의 맛은 '볶음의 미학' 속에서 탄생한다고 믿는다.
"고압 온도를 적정하게 유지하지 못하면 면과 소스가 뭉쳐진 실처럼 보기싫은 앙금이 생겨요. 식재료도 연한 것과 질긴 것을 구별, 마늘 다음에 양파, 그리고 육수를 붓는 식으로 차례차례 공략해나갑니다."
#오너셰프 변창민씨의 후배에게 한마디
모두 변신을 배신쯤으로 보는 것 같다.
국내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탈리아 현지 음식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 본토 음식도 항상 변한다. 파스타와 관련 뭐가 정통이고 퓨전이냐고 묻는다. 대구식 파스타는 무조건 폄훼하려 든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물론 기본이 사라진 대구식 파스타는 반대다. 기본 위에 변신이다. 까르보나라도 원래 계란 노른자가 첨가되지만 우린 베이컨, 양파, 마늘 등을 넣어 변형시켰다. 마늘올리브스파게티도 마늘 슬라이스 대신 더 강한 맛을 내기 위해 으깬 형태로 간다. 계속 변해야 산다. 그러면서도 변하지 않아야 된다. 유학파는 늘 자기가 아는 파스타를 최고라고 본다. 그게 과연 답일까. 나는 '착한 가격'을 고집했다. 웬만한 건 1만원 미만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배려해 주문할 때도 어린이 메뉴라고 확인시켜 준다. 나이드신 분들도 파스타를 먹도록 했다. 논나해산물토마토파스타는 경상도 어른들이 즐길 수 있게 한 얼큰한 뚝배기 파스타인데 '이탈리아 시골할머니식 스파게티'로 명명해 론칭했는데 어필됐다.
(053)656-0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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