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6] 해외유학파 셰프를 찾아서…범어동 일식집'마이도야' 강영하씨

  • 입력 2010-12-24   |  발행일 2010-12-24 제36면   |  수정 2010-12-24
방송PD 되려고 日서 유학 "그때 학비 벌려고 일식집 알바 시작했다 조리사 길로…"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6] 해외유학파 셰프를 찾아서…범어동 일식집

기자는 얼마전 일본 오사카와 교토 식당가를 로드인터뷰 형식으로 훑고 돌아왔다. 기자가 눈여겨 본 대목은 그들의 서비스(친절) 마인드였다. 그 탁월한 마인드는 식당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지 않기에 가능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일본이 우리 음식보다 낫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본의 경우 모든 음식의 베이스가 되는 기본 육수(다시) 하나는 세계 정상급이다. 나머지는 우리도 이제 일본 못지않다. 한국의 한식 드림팀인 '수라' 같은 경우는 현재 세계 최고급이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한국에서 오너셰프가 됐을 때 세계를 석권할 수 있을까. 기자는 어렵다고 본다. 아직 한국은 식당만 있고 문화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오후 4시 대구KBS방송총국 근처에 있는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居酒屋) 스타일의 일식당 마에도야(每度屋)에서 오너셰프 강영하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번 시리즈 대구미식가 쓴소리 릴레이때 소개됐다. 이번에는 전번에 언급하지 않은 대목만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그는 역시 깍듯했다. 인터뷰 내내 사무라이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문을 열면 내가 직접 화장실 청소부터 한다. 그래야 아랫사람이 나를 믿고 따라온다. 이건 일본 유학시절 몸에 밴 습성이다."


◇ 방송 프로듀서에서 조리사로 터닝

1990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단 어학이다싶어 오사카 기타센리에 있는 한 어학원에서 9개월간 머물렀다. 다음에는 오사카 덴노지에 있는 한 마케팅 전문대학교에 시험을 쳐서 들어갔다. 일본은 이론보다 실기에 중심을 두고 커리큘럼을 짠다. 대기업, NHK, 교토에 있는 영화 촬영소인 에가무라, 호텔, 유명 레스토랑 등을 찾아 3년간 현장체험형 수학을 했다. 그때 방송국 PD를 겨냥하고 있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본어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사카 다마데에 있는 일식당 나가이(長井)였다. 거기서 발목을 잡히게 된다.

"일본의 아르바이트는 우리와 질적으로 다르다. 일단 시간 엄수다. 출근시간도 칼 같이 지킨다. 정해진 시각보다 최소 15분 전에 도착해야 한다. 근무 때는 사적인 행동을 못한다. 걸려오는 전화도 못 받게 돼 있다. 가게에 비치된 탄산음료도 마실 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알바생에게 말을 놓기도 하는데 일본에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서로 존대어를 사용한다. 가령 손님 앞에서 차를 쏟았다고 하자. 우리는 알바생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거기선 실수하면 자기가 직접 수습하지 않고 담당 매니저에게 맡긴다. 알바라도 면접시 계약서를 작성한다. 우리는 일당제가 있는데 일본은 그런 게 없다. 20여년전 시간당 500~700엔을 받았다. 우리보다는 시급이 많이 차이가 난다."



-일본 식당에 들어가면 일본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사실 한국인들은 일본의 속내를 잘 감지하기 힘들다. 겉은 주인·종업원 사이가 참 형식적이고 딱딱한 것 같은데 실은 너무나 친근하고 가깝다."



-그래서 요리로 전공을 바꾸었는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지만 알바 생활 중 일본 서비스 정신에 감동받아 결국 일을 낸 것이다. 당시 내가 생각하는 한국 조리사와 일본 조리사의 수준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 보이더라. 그래서 일식을 배운 것이다."



◇ 일본 조리사의 두 가지 얼굴

-한국인이 요리를 배우려고 하니 무시하고 괴롭히지는 않던가.

"일본 조리사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거시적으로는 한국을 무시하는 듯 한다. 하지만 장인의 세계에 들면 국적을 초월한다. 지극하고 잘하고 열정적인 놈은 무조건 인정한다. 지적을 하나 하면 칭찬은 열 가지를 할 수 있는 게 일본 사부들이다. 규정에 의거, 모든 걸 다 배워주었다. 우리나라는 핵심 노하우는 빼놓고 쭉정이만 가르쳐주기도 하는데 그들은 모든 걸 다 내놓더라. 하지만 두번 물으면 절대 말해주지 않는다."



-처음에 무슨 요리부터 배웠는가.

"첫날에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더라. 그냥 의자에 가만히 앉아 종업원과 손님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동선만 지켜보라고 지시했다."



-그 다음부터는 뭘 배워주던가.

"요리부터 가르치지 않는다. 사철 식재료가 어떤 것이고, 보관되고 요리 될 때는 어떻게 처리되는 지를 하나하나 다 경험하도록 해주었다. 채소별 손질하는 법도 다 달랐다. 음식별로 쓰임새가 다 다르고 다듬는 법도 달랐다. 생강별 레시피를 다 익히면 다음은 양파, 당근, 감자 등으로 옮겨가고 나중에 생선을 손대게 하더라. 생선 다듬는 법을 배우고나면 주방에 들어가서 불을 만지게 하고 다음은 튀김, 구이, 찜, 맨나중에 사시미와 초밥을 만지게 한다."



-고수들은 잘려진 생선 단면만 보고 조리사의 수준을 단번에 평가한다고 하는데….

"맞다. 일단 흰살과 붉은살 생선의 사시미 두께가 다르다. 붉은살 생선은 1~1.2㎝, 흰살 생선은 0.5~0.7㎜로 썬다. 그 이유가 뭔 줄 아는가. 흰살 생선은 두꺼우면 볼품이 없다. 반대로 붉은생선은 얇으면 볼품이 없다. 씹을 때 흰살 생선은 이빨에 바로 끊겨지지 않고 미끌어진다. 그래서 45도 정도 각을 줘서 으슷썰기를 하는 것이다."



-일본요리는 입으로 먹지 않고 눈으로 먹는다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푸드 데코레이션 수준이 엄청나게 좋을 것 같다. 무슨 원칙이 있는가.

"아무리 예쁘도 먹는 음식이다. 억지로 꾸며선 안되고 깔끔하고 단순하게 배치를 해야 한다. 그건 배워주지 않고 나름대로 기예를 터득해야만 한다."



-일본 사부와 지금도 서로 연락을 하고 있는가?

"오사카의 사부 다카하시(高橋)는 지금도 특정 소스를 개발할 때 1주일 이상 식음을 전폐한 채 연구에 몰두한다. 다 배운 분 같은데…, 그래서 더 놀란다. 폼을 전혀 내지 않고 계속 한계에 도전하는 장인 정신에 감동받는다. 그가 한국에 왔을 때 서울의 몇몇 한식당에 데려갔다. 그가 한 마디 하더라. '한국의 메뉴판은 다 비슷하고 집중과 분산이 전혀 되어있지 않다. 모든 걸 다 잘 한다는 건 전부 못한다는 말이다'라고."



◇ 만약 누가 일본 가서 요리를 배우고 싶다면

-후배 중에 누가 일본 현지 요리를 배우고 싶다면 어떤 조언을 주고 싶나.

"일단 언어가 중요하다. 가능한 한 한국인이 적은 어학원에 가라. 유학센터보다 지인이나 현지 관계자를 통해 소개받는 게 낫다. 일본 친구를 많이 사귀어라. 정말 도움이 된다. 일본의 반한적 흐름도 현실로 받아들여라. 일반 서민적 음식부터 익혀라. 재래시장의 식재료 분포상황을 체크하고, 일본어가 어느 정도 능수능란해지면 특정 일식당을 정해 도제식으로 2~3년 직원으로 일을 하라. 하지만 대충 마인드로는 현지에서 요리 배워주는 조리사가 없다는 걸 명심하라."



-한국 식당에 한 마디 한다면.

"돈만 벌기 위해 오픈한 식당은 오래 가지 못한다. 손님 없다고 인건비 줄이고 난방비 줄이고 저급한 식재료 사용한다면 그건 손님에 대한 테러다. 한국은 식당 오픈 준비 때 요리를 배우는데 일본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기본기를 다 마스터한 뒤에 식당 오픈을 오래 고민한다."


#TIP 강영하씨의 토마토 숙성법

강씨의 요리 감각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토마토 숙성법 하나.

토마토를 뒤집어 냉장실에 3~4일 둔다. 그럼 즙이 아래로 내려온다. 다시 원위치 해서 하루 정도 두면 토마토 즙이 완벽하게 교류돼 절정의 맛을 보여준다. 표고버섯도 떫은 맛 잡기 위해 물에 집어넣어 둔다. 겨울 양파도 독하기 때문에 얼음물에서 독기를 잡는단다. 마이도야 각 메뉴는 그렇게 '대장간 버전'으로 만들어진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 예약도 한 테이블 정도만 받는다. 1인분 5만원짜리를 시키면 두부, 고기, 굴, 불고기, 사시미, 조개탕, 튀김, 구이, 장어, 우동 등 8~10가지를 맛 볼 수 있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6] 해외유학파 셰프를 찾아서…범어동 일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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