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은행 VIP라운지 '그린나래 레스토랑' 홍세진씨

  • 입력 2011-01-07   |  발행일 2011-01-07 제37면   |  수정 2011-01-07
(7) 해외유학파 셰프를 찾아서
"이탈리아 요리는 꾸미지 않아 최상의 식재료에 목숨을 걸죠"
대학 졸업 후 6년여 이탈리아서 요리 배워
몇달전부터 대구에서 '나만의 메뉴' 개발
치밀한 주문 문화 없는 것이 대구 최대 약점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은행 VIP라운지

◇ 대구은행 본점 레스토랑 그린나래에서

대구은행 본점 VIP라운지 3층에 '그린나래'란 이름의 레스토랑이 있다. 군더더기 없는 인테리어라인이 맘에 든다. 고급스럽지 않으면서도 정돈되고 심플한 기운이 고여있다. 지역 기관단체장들이 많이 애용하는 곳이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그곳이 있는 지 잘 모른다. 인터불고호텔 조리부장인 차현식씨가 사장으로 있다.

오후 2~4시 조리사들이 쉬는 시각.

기자도 그 때를 노려(?) 이곳의 홍세진 헤드셰프를 겨우 만났다. 올해 32세. 대구 출신으로 영남고와 대구가톨릭대 이탈리아어과를 나와 이탈리아로 가서 6년쯤 요리를 공부하고 온 유학파. 2003년 군에 갔다 온 뒤 1년간 중부 이탈리아 옴브리아 지방에 있는 페루지아에서 어학연수에 주력한다. 돌아와 졸업을 하고 다시 2006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직업전문학교인 CAPAC에서 2년간 기본기와 실기를 배운다. 체류 비자를 받는 과정에 절친한 친구를 얻는다. 그는 음식보다 그게 더 소중했단다. 이탈리아 친구가 좀처럼 맘을 내기 힘든 신원보증 건을 선뜻 해결해준 것이다. 학교에선 주5일 수업을 하는데 사흘은 실무, 이틀은 이론이었다.

이에 앞서 그는 요리의 길을 위해 양식자격증을 졸업 후 국내에서 따고, 경기도 부천의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실전을 쌓는다. 하체에 쥐가 나고 발바닥에 군살이 박힐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재밌어한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기질이 있다는 방증이었다. 밀라노 시절에는 월 50만~60만원의 하숙방에 있었다. 초창기에는 부모한테 신세를 졌지만 후반기에는 부업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 이탈리아가 세계 음식의 종착역은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맨 처음 만난 식당은 어딘가.

"'자크 코모 비스토'란 레스토랑에 취직했다. 팔순의 노셰프인 자크 코모가 지키고 있던 식당인데 거기서 사부한테 맨 처음으로 감동적인 교훈을 얻었다. 식당의 모든 음식은 셰프 만족이 아니고, 손님 만족이란 사실이다."



-이탈리아에서 배운 게 뭔가.

"분위기만 익히고 온 것 같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터득해야 될 일인 것 같다. 이탈리아가 한국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원칙적으로 안 하고 싶다. 한국 요리 실력 이젠 세계적이다. 이탈리아에서 발견한 그들의 습성이 몇 가지 있다. 일단 입맛이 우리와 좀 다른 것 같다. 의외로 마늘을 싫어하더라. 또한 엄청 짜게 먹더라. 낮보다 점심에 모든 걸 거는 같다. 길게는 4시간 이상 식사를 한다. 식사를 할 때도 처음부터 음식을 먹지 않고 식당에 딸린 바 같은 데서 잡담을 나누며 본 게임에 앞서 식전주를 들고 홀로 이동한다. 그들의 에스프레소 사랑은 알아줘야 한다. 디저트의 말미도 에스프레소와 식후주 대미를 장식하는데 홀 서빙 멤버의 경우 5~10유로 정도의 팁을 받고 와인을 제외하고 풀코스 가격은 120~150유로다."



-사람이 어떤 사물에 대해 환상과 신비감을 갖게 되면 본질을 잘 보지 못한다. 이탈리아도 그런 것 같다. 이탈리아에 가면 무조건 요리 달인이 되는 것처럼 여기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 이탈리아를 능가하는 이탈리아 요리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감한다. 2003년 난생 처음 로마 공항에 내렸을 때 충격을 받았다. 담배를 물고 공항을 누비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았고 너무 지저분하고 쓰레기도 많았다. 유럽에 대한 환상이 깨어졌다. 대구는 거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깨끗한 편이라 생각한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공무를 보려면 평균 2~3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한국 식당과 이탈리아 식당의 차이점은 뭐든가.

"이탈리아 유학 시절 세군데 식당을 옮겨다녔는데 거의 인테리어나 음식 데크레이션에 신경을 쏟지 않더라. 파스타도 그냥 위에 바질이나 파슬리 정도 올리는 것으로 끝이다. 티본 스테이크를 즐기는데 그냥 옆에 감자 한 덩이 올리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담을 때 어떻게 담을까, 초코액으로 바닥 디자인을 하지도 않는다. 그냥 수수하다.그들은 음식의 맛에 승부를 거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최고의 신선한 제철 식재료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 김치에는 그들도 백기를 들었다

-손님들의 오전과 오후 어떻게 달라지는가.

"오전에는 나이든 단골들이 주로 온다. 밤에는 돈있는 분들이 많은데 이들은 단품 요리를 시키지 않고 풀코스를 먹는다."



-우리처럼 주방 군기 같은 게 있던가.

"주방 군기라. 없었다. 사부도 셰프란 말을 무척 거북해 하고 싫어하더라. 그냥 이름을 불러주고 친구처럼 지내기를 원하더라."



- 우리에게는 만연된 화학조미료를 어떻게 보던가.

"그들은 신선하고 최상의 식재료만 확보하면 거기에 이미 모든 조미료를 다 들어있다고 본다. 그런 재료에 아무리 좋은 소스를 곁들여도 효과는 그다지 나지 않는다고 본다."



-이탈리아에서 배워 온 요리는 몇 종류 되는가.

"다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200여종쯤 될까. 2장의 CD에 저장해뒀다. 하지만 일이 워낙 바빠 다 활용할 겨를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탈리아 친구들에게 한국음식을 요리해 줘봤는가.

"부침개, 김치, 불고기 등을 내놨지만 상당수 김치에는 맥을 못추고, 고기와 전 종류를 즐기더라. 우리는 역겹기 이를 데 없는 공포의 치즈 고르곤졸라를 그들은 너무 맛있게 먹는 걸 보면 우리가 청국장 맛있게 먹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음식습관은 쉽게 교류가 되기 힘든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린나래에 온 지 얼마 안되었는데 요즘 무슨 생각을 많이 하는가.

"대구로 오기 전에 서울의 한 피자집에서 일하다 내려왔다. 이탈리아 요리에 구성 요소만 조금 달리해 대구식 퓨전 스타일로 바꾸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가령 정통 타르타르 경우 소스에 고기와 생선류가 들어가는데 오늘처럼 키위, 수박, 파인애플 등을 섞어 만든다든지, 뭐 그런 식이다."



◇ 후진 구조의 우리의 음식 주문 인프라

-우리의 레스토랑이 개선해야 될 점은 뭐라고 보는가.

"다른 사람들은 자꾸 대구의 레스토랑에 대해 낮은 점수를 주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국제적 수준에 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아쉬운 게 있다면 디테일한 주문문화가 별로 없는 것 같다. 홀 멤버가 주문을 받기 위해 가면 아직 상당수 고객이 자기가 먹을 음식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가령 스테이크 미디엄 같은 경우 육즙이 어느 정도 살아 있는 걸 원하는 지에 대해 직원과 전혀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중에 핏물이 너무 많다면서 더 구워달라는 불만이 생기기도 한다. 주문이 구체적일수록 셰프는 더욱 자극받고 열정적으로 일하게 만든다. 요즘 레어급 스테이크를 즐기는 이도 생기는 걸 보니 앞날이 무척 밝다."



-아직 수련기인 것 같다. 요리의 길은 끝이 없고 아무리 달인의 경지에 올라도 그는 그가 아는 범위 내의 요리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종착역에 왔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물론이다. 지금 나는 이탈리아에서 배워 온 걸 다양한 형태로 변형시켜보면서 손님과 깊은 교감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탈리아를 배웠기 때문에 다음은 세상의 모든 인종이 다 모여있다는 미국 뉴욕 같은 곳에서 양식의 허와 실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



-부모가 당신의 길에 대해 반기는가.

"교육자이신 아버지는 남자가 왜 요리라면서 처음엔 무척 반대하셨다. 그런데 누나가 지원사격을 잘 해줘서 일이 쉬워졌다." 010-9692-5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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