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해외유학파 셰프를 찾아서 (8·끝) 시리즈를 마치며…

  • 입력 2011-01-21   |  발행일 2011-01-21 제36면   |  수정 2011-01-21
"지역서 안 지켜주면 '유능 해외유학파 셰프' 서울에 뺏길 것"
유학파 상당수가 이탈리아에 편중
외국서 배워온 실력 대구서 지켜야
완벽한 정통 구축후 변신해도 안늦어
한식당 경영하는 유학파도 나오길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해외유학파 셰프를 찾아서 (8·끝) 시리즈를 마치며…
대구시 수성구 상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빠빠베로' 오너셰프 박소진씨.

사람들은 대구에 '해외유학파 오너셰프 문화'가 형성되기 힘들다고 했다.

그건 대구음식을 은근히 '촌티버전'으로 폄훼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설령 그런 조리사가 있다고 하면 모두 서울로 갈 것이다'라는 메시지도 함축돼 있다. 그동안 모두 7명의 해외유학파 오너셰프가 지면에 소개됐다. 6명은 이탈리아, 1명은 일본에서 요리를 배우고 돌아왔다. 10명을 채우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10년간 이탈리아에 있다가 들어온 수성구 상동 '빠빠베로(PAPAVERO·양귀비꽃)'의 박소진씨, 이탈리아로 성악 공부하러 갔다가 성대결절로 요리사의 길로 접어든 수성구 지산동'까를로'의 김학진씨, 이탈리아로 작곡 공부를 하러 갔다가 남구 대명동 파스타 전문점 '파스타민'을 차린 변창민씨, 계명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가서 파르마 아리고 보이토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달서구 성서 계명대 동문 건너편 골목에 자리한 '오 솔레'의 대표이자 테너인 임제진씨, 한때 잡지 기자 하다가 환멸을 느껴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수료한 뒤 토리노, 시칠리아, 로마 등 이탈리아 전역을 나그네처럼 돌다 현재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꼼마'에 정착한 파스타의 전도사 박찬일씨, 일본 오사카에서 방송프로듀서 길을 걷다가 돌연 일본요리사로 변신했고 현재 KBS대구방송총국 근처에 이자카야 '마이도야'를 운영하는 강영하씨, 대구가톨릭대 아탈리아어과를 나온 뒤 이탈리아 밀라노 직업전문학교 CAPAC를 거친 뒤 현재 대구은행 본점 VIP라운지 내 레스토랑 '그린나래'에서 요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홍세진씨.

이 중에서 가장 환영 받은 셰프는 박소진씨다.

박씨는 그린나래의 홍세진씨처럼 대구가톨릭대 이탈리아어과를 나왔는데 2001년 뻬루쟈 국립대 교환학생으로 이탈리아로 가서 어머니로부터 셰프를 권유받는다. 이탈리아 피렌체 꼬르동 블루를 거쳐, 이탈리아 와인 소믈리에 협회 와인 과정도 거치고, 10년을 이탈리아에 있다가 귀국, 지난해 7월에는 경의대 한식 스타셰프 과정도 다녔다. 이 과정에 대구에서 이탈리아 가정식 스타일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유학기를 정리한 책 출간 계획을 짤 정도로 열정적이고 치밀하게 살아가며 현재의 박씨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모친의 '마더파워(Motherpower)'가 대단하다.

현재는 어머니와 함께 영남사이버대 호텔외식창업경영학과에 재학중이다. 기사가 나가고 난 뒤 많은 사람들의 격려가 이어졌다. 박씨는 요리하기가 더 겁난다고 했다. 식전에 나오는 스틱 브레드, 시금치빵, 오징어 먹물 빵, 포카챠 등 이탈리아 현지 빵 등 현지 스타일의 메뉴를 직접 맛볼 수 있어 지역 마니아들을 기분좋게 만들었다.

까를로의 김학진씨는 적자를 감수하고도 매달 지역 성악가를 불러 살롱음악회를 꾸려가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비싸고 폼나는 이탈리아 음식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저렴하면서도 제대로 된 이탈리아 음식을 선보일 거란다. 오 솔레의 임제진씨는 참 놀라웠다. 현역 테너이면서 직접 주방에서 일을 한다는 자체가 경이롭기까지 했다. 주방에서 발생하는 기름연기는 성악가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고, 그게 어쩜 자살행위와도 같은데 그는 그게 인생이라고 믿으면서 갈 때까지 간다는 입장이다. 그에게 한 표를 던진다.

마이도야의 강영하씨는 요즘 대구에 부는 일본식 선술집인 이자카야(居酒屋) 문화를 제대로 전파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는 그냥 이자카야 음식이 술안주 음식으로 폄훼하는 걸 용서할 수 없단다. 직접 일본식 다시(육수) 뽑는 모습도 그렇고 종업원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화장실 청소하는 대목이 감동스럽다.

요리도 하나의 작곡으로 보는 파스타민의 변창민씨, 그는 요즘 단골층을 매우 다양하게 확보하고 있다 뚝배기 스타일의 파스타는 물론, 계란이 들어가지 않은 까르보나라 등 '대구식 파스타'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남들은 그게 정통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게의치 않는다. 그린나래의 홍씨는 아주 겸손하고 착해 보였고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면서 미국 뉴욕으로 가서 세계 음식의 다양한 흐름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수성구 범어동 아트리움, 수성구 들안길 이자카야 스타일의 일식당 덴바치(天橋) 등에도 유학파가 있었지만 아직 더 연마해야 될 시기라서 후일을 기약했다. 상당수 지역의 식당 관계자들은 대구에도 해외유학파 셰프가 포진해 있다는 사실에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이들이 거의 이탈리아에 다녀온 것이 '옥에 티'로 남았다. 중국 현지에서 요리를 배워 온 지역 출신의 중식당 셰프는 찾을 수 없었다.



◇ 해외유학파 셰프들에게 한 마디

비록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충분히 대구음식의 미래가 '청신호'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이 문제가 아니다. 대구의 '보수적 혀'가 문제다. 그 보수적 혀는 실험적인 요리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전도양양한 천재적 셰프들은 대구에서 버티지 못하고 서울 등지로 축출되는 것이다.

현재 대구에서 그들의 요리를 이해하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층은 5~10% 정도 될까 모르겠다. 그들이 대구 음식의 미래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명 셰프들에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자극을 줘야 한다. 김상환 일신학원 이사장은 직접 집에서 이탈리아 풀코스 요리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손님들에게 대접할 정도의 미식가. 그는 본 시리즈에 큰 의의를 두면서 셰프들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언론에서 계속 힘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쉬움도 있었다.

외국에서 배운 양식을 베이스로 한식당을 꾸려가는 셰프가 있었으면 했는데, 경계를 넘어서는 사람은 지역에선 눈에 띄지 않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무릎을 치게 하는 경이로움을 연출하는 단계에는 못 온 것 같았다.

기자는 경기도 양평에서 '산당'이라는 한식당을 경영하는 방랑식객 임지호, 그리고 군에서는 취사병이었다가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미국 뉴욕에 있는 CIA를 졸업하고 세계 각국의 요리를 경험한 뒤 2009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정식당'을 차려 '강남 음식계의 아이돌'로 급부상한 임정식(32), 그리고 무림의 고수가 되려다가 요리를 갖고 동서양 레시피를 현란하게 조롱하고 있는 포스 넘치는 요리강사 겸 신사동 '테이스티블루바드' 대표인 최현석의 행보를 지역의 해외유학파 셰프들이 세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임정식은 '프렌치 & 이탈리안 스타일의 한식당'을 지향하고 있다. 식재료를 갖고 마술하는 것 같다. 그걸 싫어하는 이도 있지만 언론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식당 낸 지 1년 남짓만에 스타가 된 것. 머루를 이용한 푸아그라(거위간), 당귀 아이스크림 등과 같이 국내산 식재료를 주면 그의 상상력은 빛의 속도로 돌아가면서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레시피를 창조해낸다. 너무 정갈해 꼭 '분자음식' 같다는 평가도 받는다.

기자는 조만간 그를 단독 인터뷰 해서 그의 음식적 상상력의 본질이 뭔가를 해부해 볼 심산이다. 그는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지구상에 가장 복잡하고 다양한 음식군을 갖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외국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식재료의 중심부에 한국이 만두소처럼 자리해야 하고 그걸 감싸는 형식을 외국으로 하면 충분히 특정 국가를 감동시킬 수 있다는 전략이다.



◇ TIP

혹, 주변에 해외유학파 셰프가 있으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강호 고수급 조리사, 희한한 요리를 개발한 식당이 있으면 (053)757-5296로 연락을 주면 즉각 현장에 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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