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대표 밥상

  • 입력 2011-02-18   |  발행일 2011-02-18 제42면   |  수정 2011-09-02
이제 '외국 VIP용 밥상' 고민 필요
10味 활용한 대구밥상 활성화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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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제연어와 철갑상어알을 곁들인 납작만두

◆전주비빔밥 마케팅 유감

'대표음식.'

좀 전체주의적이고 포퓰리즘적인 느낌이 감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지인들은 특정 국가나 지방을 방문하면 대표 음식이 뭔가를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묻는다. 죽은 마이클잭슨이 서울에 왔을 때 비빔밥을 먹고 감동받았다거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에 와서 생일상을 받으면서 한국 비빔밥과 안동 밥상이 단번에 국제적 관심을 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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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전주비빔밥만 있다고 몰고가면 결국 전주도 죽고 나머지 비빔밥도 죽는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전주에서는 가족회관, 갑기회관, 선미당, 한국관 등 명품 비빔밥집들이 전주를 위해 힘을 합쳤다. 그래서 수출용 비빔밥 표준 레시피까지 합의해서 비빔밥 공장을 지어 일본 등지로 1회용 비빔밥까지 수출하고 있다. 전국 브랜드로 치고나온 후발주자 고궁은 1천인분 비빔밥 이벤트 행사까지 구사한다.

전주비빔밥 조리명인으로 지정된 김년임씨(74). 1979년에 전주 중앙동에 '가족회관'이라는 전문음식점을 개업, 전주비빔밥을 세계에 알리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산증인이다. 2008년에는 전라북도 지방무형문화재 전주비빔밥 기능보유자로 지정돼 현재 한식세계화 민관합동 추진단에서 비빔밥전문가 대표자격으로 위원에 참여하고 있다.

전주비빔밥은 어떻게 전국 랭킹 1위가 됐을까. 서울로 올라간 오너셰프 중 호남 출신이 절대적 파워를 구사한 측면도 있고, 더군다나 90년대초 국내 외식사상 처음으로 대한항공 기내식으로 비빔밥이 채택되면서부터 힘을 얻게 됐다. 또한 전주시가 주도적으로 비빔밥을 띄우기 위해 집중과 선택 전략을 구사했다. 2002년에는 전국 팔도 비빔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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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자연송이 꽁소메

한 곳에 끌어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전주비빔밥 역사는 진주 천황식당과 울산의 함양집 비빔밥에 비하면 일천하다. 전주는 60~70년대 형성됐으며, 천황과 함양집은 80년 역사를 넘겼다. 천황은 3대, 함양집은 4대째 대가 이어진다. 함양집에 들어서면 벽면에 걸어 둔 역대 사장 등 4명의 얼굴 사진이 눈에 띈다. 1대 강분남 할머니(13년 전에 104세로 작고)가 80년 전 경남 함양에서 울산으로 이주해서 문을 열었으며, 며느리 안숙희 할머니(작고)에 이어 황화선 할머니(63), 윤희씨한테로 손맛 계보가 이어진다. 한번 가보시라. 천황식당은 (055)741-2646, 함양집은 (052)275-694

◆ 대구의 대표밥상을 찾아서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은 찾아냈다.

대구십미(따로국밥, 찜갈비, 막창, 누름국수, 뭉티기, 복불고기, 야끼우동, 논메기매운탕, 무침회, 납작만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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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곁들인 요구르트 샤롯데

2009년부터는 대구 음식 맛 브랜드를 찾았다. 바로 '대찬맛'이다. 2010년 3월에는 대구음식 맛지킴이인 대구식객단(329명)을 구성했으며, 이들은 대구음식 홈페이지(www.daegufood.go.kr)도 가동됐다. 현재 2기 식객단 18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7개월간 '맛의 고장, 대구 대찬맛'이란 글씨가 적힌 대찬맛 홍보탑이 서울역에 도착한 승객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에 세워졌다. 또한 전국적 인지도가 있는 4개(따로국밥, 찜갈비, 막창, 떡볶이) 음식을 집중 관리하기 시작했다. 용역을 줘서 따로국밥과 찜갈비의 표준레시피를 개발했으며, 동인동 찜갈비의 경우 외국인들에게 흉물스럽게 보인다는 지적에 따라 양은냄비를 대체할 만한 소재를 찾고 있다.

하지만 아직 대구의 음식 파워는 전국에서 후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유는 뭘까. 음식 맛때문일까. 절대 아니다. 이제 전주와 대구의 음식 맛은 거의 비슷해졌다. 문제는 음식의 인지도다. 전주는 대구와 비교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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샥스핀을 곁들인 병어요리

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그러니 대구보다 더 맛있다고 믿는 것이다.

시쳇말로 단번에 뜨려고 하면 '강호동의 1박2일'에 언급되면 그 파장은 일파만파다. 강원도 속초 아바이 순대의 명가 단천식당도 그 프로에 나간 뒤 동네 전체가 스타마을로 둔갑했다. 또한 배용준이나 아이돌스타 아이유가 주말마다 동인동 찜갈비를 먹기 위해 내려온다는 소문이 퍼지면 10~20대들은 맛과 상관없이 대구음식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 소속 프로덕션이나 매니저들이 바보가 아니다. 대구시의 유혹에 쉽게 혹하지 않는다. 여수 출신인 식객 허영만은 대구시 음식홍보대사 역할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빅 브랜드를 움직이려면 엄청난 돈이 든다. 대구시는 현재 대구 홍보대사인 은퇴한 삼성야구단의 양준혁을 음식 홍보대사로 적극 기용할 태세다. 문제는 외국의 VIP들이 대구에 와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을 때인데, 딱히 마땅한 답거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몇년전 동남아 라이온스 대회 때 대구십미를 외국인들에게 뷔페식으로 내놨지만 '바로 이게 대구'라는 변별성이 없었다. 그냥 '잡화점 음식' 같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었다. 음식을 둘러 싼 스토리와 디자인이 부족했다. 고민한 끝에 지난해 결성된 대구경북미식가위원회(회장 이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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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와 선지로 맛을 낸 예천한우 안심스테이크

가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외국인과 외지인들을 위한 '대구음식 정찬메뉴'를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이미 미식가들을 통해 시식회를 가졌다. 납작만두를 이용한 샐러드, 팔공산 자연송이 콩소메, 동해안 생선요리, 청도홍시 셔벗, 선지와 후주로 맛을 낸 한우안심스테이크, 감포 멸치젓으로 맛을 낸 시저 샐러드, 사과를 곁들인 요구르트 샤롯데, 커피와 떡 등 모두 여덟가지 코스 메뉴를 개발했다. 인터불고 차현식 조리부장 등 지역의 호텔 수석 셰프들이 동참을 해서 개발한 것이다. 위원회는 대구시에 건의서를 통해 이 정찬이 채택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시는 고민중이다.

기자의 생각은 이렇다. 대구의 대표밥상 논의는 정말 중요한 사안이다. 단번에 끝낼 사안이 아니다. 이미 2002년 한일월드컵과 대구유니버시아드 어름에 이 문제를 공론화했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행사가 너무 임박했지만 일단 이 를 계기로 대구정찬의 가능성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거쳐봐야 될 것 같다. 대구정찬 요리경기대회를 2011 대구국제음식관광박람회에 연계할 수도 있다. 또한 대구십미별 퓨전요리 경연대회를 열고, 그 다음에는 그 재료를 갖고 한식·양식·중식·일식 등으로 변화시켜 보는 것이다. 이때 서울과 지역의 유수 셰프를 참가시켜야 한다. 때로는 경기도 양평 산당의 오너셰프이자 방랑식객으로 유명한 산당 임지호씨 같은 조리사를 불러 와 대구십미를 갖고 새로운 버전 음식을 국제감각에 맞게 개발해볼 수도 있다. 또한 푸드스타일리스트, 식기 전문가, 테이블 전문가, 조명 전문가 등도 동원해야 한다.

그걸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트디렉터를 통해 토털 디자인 작업을 해야 한다. 이것을 지역 언론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받아주고 서울의 오피니언 리더를 움직여야 한다. 이 테크닉은 원소스멀티유저(One source multi user) 마케터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건 공화국 하나 만드는 것 이상의 열정이 필요하다. 단발 자문회의, 단발 용역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대구시장이 배수진을 쳐야 된다. 대구음식 세계화에 대한 대선언을 해야 되고, 전담 음식홍보전문대사와 홍보마케팅 전문 대행사도 장기적으로 몰고가야 한다.

'맛의 고장 대구 대찬맛' 같은 문구는 너무 아날로그적이다. '매운 맛 보러 대구 올래?'와 같은 쿨하고 기억에 남는 헤드카피 정도는 '난초 꽃 피다' 같은 명 카피를 만든 지역 홍보대행사인 '밝은사람들'의 카피라이터 정도면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다. 능히 대구시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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