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스토리텔링 밥상 (하)

  • 입력 2011-03-04   |  발행일 2011-03-04 제42면   |  수정 2011-08-26
전주 음식전문가들 "경상도 班家음식과 古조리서 두 권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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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 음식디미방보존회가 재현한 동아누름적(상)과 꿩고기와 7가지 갖은 채소로 만든 잡채. 사진제공=안동시, 영양군

◆ 경상도 음식 & 전라도 음식

'전주 음식전문가들도 경상도를 부러워하는 게 있다.'

독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다. 음식이라면 전라도인데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법도 하다.

아직 수면 아래에 숨어있다시피한 경상도 명문 종택의 기품있는'반가(班家)음식'과 특히 안동과 영양이 갖고 있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조리서 두 권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사실 경상도 반가에선 전라도 음식을 너무 허드러져'술안주상 스타일'로 폄훼한 것도 사실이다. 전라도는 음식자랑을 해도 경상도는 그러지 않았다. 이때문에 전라도가 욱일승천할 수 있었지만 이젠 상황이 좀 달라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안동의 '수운잡방(需雲雜方)'과 영양의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 대한 방송 다큐물, 신문·잡지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일본 미식가들조차 군침을 흘린다. 연이어 안동시와 영양군이 앞장서 레시피에 의거해 원형을 재현하고 있다. 올 연말쯤 대중화 흐름을 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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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잡방음식연구원 회원들이 재현한 청포묵 등을 토대로 만든 삼선어아탕, 육면, 두부·이화주

문화체육관광부도 외국에서 온 국빈이 가장 한국적인 지역과 음식을 먹고싶어할 경우,

'전주 한옥마을로 갈까. 안동 하회마을로 갈까.' 사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무게추가 전주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안동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에 따라 안동을 낀 '경북 북부유교문화권'을 더 주시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먹을 게 많고 음식 차림새도 남달랐다. 전주를 '묻지마 전통음식메카'로 정했다. 이젠 생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한상차림인 남도 한정식으로 말하자면 전주보다 강진을 더 쳐준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남도먹거리 1번지'를 강진 한정식으로 꼽는다. 남도 한정식은 바다 갯벌을 끼고 앉아 있는 하구의 고장이어야 제격이다.

전라도 음식이 '가야금' 같다면, 경상도 반가음식은 '거문고' 같다.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양념과 소스도 극도로 줄인다. 그래서 무척 맑고 심플하다. 전라도 음식이 '봄 꽃밭' 같다면 경상도 반가음식은 '겨울 계곡' 같다고 할까.

◆ 한국의 고조리서

'현재 한국 전통음식사에 비교적 정통한 학자들은 누굴까.'

한국 고요리서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은 국내 식품사학계의 수장격인 고(故) 이성우 교수다.

그 다음은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65년 '음식디미방'을 발견하고, 73년 한희순 상궁에 이어 제2대 조선왕조 궁중음식(무형문화재 제38호) 기능보유자가 된 황혜성 여사(작고). 그녀는 76년 한국요리백과사전을 펴낸다. 그를 잇는 사람은 수운잡방을 발굴해 번역한, 안동 불천위제사음식의 권위자인 안동대 식품영양학과 윤숙경 명예교수, <사>한국궁중음식문화협회 김상보 이사장(대전보건대 전통조리과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 이연자 <사>한배달 우리차문화연구원장, 정혜경 한국식생활문화학회 부회장(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등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고요리 전문서는 뭘까.

1400년대 중반 '의방유취'를 지은 당시 의관 겸 식품학자였던 전순의(全循義)가 지은 '산가요록(山家要錄)'. 여기에는 술 빚는 방법 63가지를 포함 모두 230여 종류의 음식 레시피가 수록돼 있다. 김치의 경우 나박김치, 생강김치, 송이김치, 동아김치, 동치미, 토란김치 등 무려 38종류를 소개하고 있다. 식품학자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대목은 바로 채소류의 경우 '온상재배의 필요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그 다음은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조선 초기 1540년경에 안동에서 거주한 탁청공 김유(金綏·1481~1552) 에 의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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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강진의 한상차림 한정식.

술된 요리책이다. '수운(需雲)'은 격조를 지닌 음식문화를 뜻하며, '잡방(雜方)'은 여러 가지 방법을 뜻한다. 즉 풍류를 아는 사람들에게 걸맞은 요리법을 의미한다. 상하권 두 권에 술빚기 등 경상북도 안동 지방의 121가지 음식 조리법을 담고 있다.

한글로 된 가장 오래 된 조리서는 단연 정부인 안동장씨(장계향)의 음식디미방(1670년). 국내에 한권밖에 없는 음식디미방 원본은 현재 경북대 고문서 보관실에 있다. 원래 장씨부인의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李玄逸)의 후손이 보관하다가 도난을 우려해 60년 경북대 도서관 고서실에 영구기증했다.

이 책의 존재를 맨 처음 알린 사람은 경북대 김사엽 박사. 그는 60년 '고병간 박사 기념논총'에서 '규곤시의방과 장씨부인의 아들 존재 이휘일의 전가팔곡(田家八曲)'이란 논문을 발표한다. 이어 김형수 박사, 66년 손정자 교수, 99년에는 안동대 윤숙경 교수가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조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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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디미방의 칠첩반상.

기 음식법에 대한 조리학적 고찰에 대한 논평'을 정부인 안동 장씨 추모학술대회 발표 논문집에 실었다.

황혜성의 딸 한복려, 한복선, 한복진은 '다시보고 배우는 음식디미방', 한복진은 다시 그해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조선시대 중기 음식법에 대한 조리학적 고찰'을 펴낸다. 2006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백두현 교수는 당시 어원을 거의 정확하게 추적한 끝에 '음식디미방 주해'(글누림 刊)'를 낸다.

경북도는 한국 전통음식 조리책인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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