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호텔 레스토랑

  • 입력 2011-04-15   |  발행일 2011-04-15 제42면   |  수정 2011-04-15
“스테이크 알아서 구워오라" “김치 달라"'대구식 양식 문화’가 양식당을 죽인다
“비싸다" “기념일에 먹는다" 등 시민 마인드 자체가 '反양식적’
손님90% 안심스테이크만 찾고 고기는 한꺼번에 다 썰어 놓아
외국선 10분이상 걸리는 주문도 “알아서 달라" 단 한마디로 끝내
실력파 셰프 '신기술’ 발휘못해 초봉 낮은 조리사는 脫대구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호텔 레스토랑
인터불고호텔 양식당 마드리드 식탁 정경.

호텔은 공항처럼 한때 '있는 자’의 공간이었다.

없는 자들은 궁궐처럼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던,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었다. 특히 호텔 레스토랑은 당대 최고의 정찬을 맛 볼 수 있고, 거기서는 최고의 격조와 품위, 매너, 에티켓 등이 총망라됐다. 그가 어느 정도의 교양미를 가졌는지를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거기서 최고의 셰프와 최고의 음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럴까. 90년대로 접어들면서 호텔이 결혼식장화되고, 각종 콘퍼런스급 행사 공간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무궁화 다섯 개 특1급호텔의 경우 한·중·일·양식이 엄존했다. 하지만 대중적인 행사가 너무 많다보니 호텔식을 선호하던 미식가들이 호텔 밖 전문레스토랑으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이젠 뷔페식이 주메뉴가 된 것 같다.

◆ 현재 호텔 한식당은 거의 고사상태

90년대초 한식당이 없으면 특급호텔로 등급을 내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양식당을 없앤 뒤 한식당을 만드는 호텔들이 많았으며, 곧 한식 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2000년대 초, 불황과 경쟁 속에서 호텔 식음업장도 수익사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수익성 낮은 호텔 한식당은 대량 구조조정을 당한다. 2004년 더욱 가속화되어 인터컨티넨탈 서울의 '한가위’, 조선호텔의 '셔블’, 호텔신라 '서라벌’은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차례로 문을 닫았다. 현재 특 1급의 경우 롯데호텔의 '무궁화’, 르네상스 서울 호텔의 '사비루’, 메이필드호텔 & 리조트의 '봉래정’,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의 '온달’ 네 곳만이 운영 중이며, 특 2급에서도 제대로된 한식당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유는 뭘까?

한식이 갖는 치명적 제약조건 때문이다.

한식당은 반찬 수가 많은 만큼 필요한 재료의 종류가 많고,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음식이 많다. 자연 인건비와 재료비 부분이 양식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든다. 외국 요리의 경우 식재료가 완제품 또는 반제품으로 들여와 즉석에서 조리가 가능하지만 한식의 경우 식재료를 처음부터 다듬고 씻는 등 사전작업이 길고 수작업이 많아 타 레스토랑보다 인력이 2~3배나 더 필요하다. 게다가 일반 한식당과 비교해도 그곳에서 열명의 인원이 필요하다면 호텔은 호텔 서비스 특성상 그 배의 인원이 필요하며 근무시간도 8시간으로 제한되어있으니 인건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요즘 워낙 괜찮은 한식당이 시내에 많이 생겨 그들과 경쟁력에서도 뒤지고 있는 탓도 있다.

고객은 외국인이 많을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다. 가족 행사, 비즈니스 접대, 오랜 단골들이 한식당의 주요 내국인 고객이다. 패키지 외국 관광객은 주로 외부에서 식사를 하고, 호텔 한식당을 이용하는 외국인은 내국인이 비즈니스를 위해 데려온 접대성 고객, 또는 한번 정도 호기심에서 이용해 보려는 고객뿐이다. 대부분 외국인 투숙객들은 보다 전문화되고 고급화된, 하지만 호텔 한식당보다 저렴한 외부 한식당을 이용한다. 또는 한식이 맵고 짜다는 인식때문에 호텔 내 한식당 보다는 일식당을 접대 장소로 선호한다.

젊은 요리사들도 한식 전공 자체를 기피한다. 국내 100여개 요리 관련 학교 중 한식 관련 전문대학은 고작 4곳 정도다.

◆ 지역 호텔 양식당도 힘들어

대구에는 현재 무궁화 다섯 개 특1급호텔은 3개(인터불고 대구, 인터불고 엑스코, 그랜드). 부산은 모두 6개(조선호텔부산, 파라다이스, 해운대그랜드, 부산 롯데, 노보텔 엠배서더, 호텔 농심)이다.

대구 특급호텔의 경우 거의 인터불고가 큰 행사를 커버한다. 인터불고 양식당 마드리드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지만 일반인들은 그걸 잘 모른다. 일반 손님은 상대적으로 적다. 국제행사 관계자나 기관장이 주 손님이다. 한식당은 일식당 운해에서 일식과 함께 취급을 한다. 그랜드호텔의 경우 그나마 식당 구색을 맞추고 있다. 한식당 포석정, 일식당 어주탁, 중식당 봉성을 갖고 있지만 정통 양식당은 없고 펍레스토랑으로 대체했다. 부산 조선호텔도 사정은 마찬가지. 양식당 '나인스 게이트’는 오래전 문을 닫았고 현재는 세미 양식당인 '옥팀스’ 만 유지하고 있다.

대구 호텔 레스토랑이 힘겨운 이유는 뭘까?

일단 손님들의 마인드에 반(反)양식문화가 숨어 있다. 상당수 손님들은 호텔 양식이 비싸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또한 언제부턴가 호텔 양식은 일반 레스토랑과 달리 결혼식, 동창회 등 모임이 있을 때 먹을 수 있는 '기념음식’이란 인식이 팽배해져 있다. 또한 다양한 양식메뉴 수요가 전멸한 상태다. 결혼식 때도 손님의 90% 이상이 안심스테이크만 선호한다. 등심, 아이립, 생선 등 다양한 메뉴를 준비하지만 외면을 당하기 일쑤다.

주문을 할 때도 스테이크를 어느 정도 구워야하는 지도 구체적으로 주문하지 못한 채 그냥 알아서 달라고 한다. 외국의 경우 주문을 받는데만 10분 이상이지만, 대구는 통째로 ' 알아서 가져오라는 식’이다. 그러니 수준높은 유학파 조리사가 있어도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 신기술을 사용할 겨를조차 없다. 자꾸만 기술이 퇴보한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다 보니 가끔 미식가가 새로운 버전의 주문을 할 경우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클레임이 걸리기도 한다.

상당수 손님들은 양식을 한식으로 취급한다. 이 대목에서 조리사들은 절망한다. 이미 간이 다 된 수프에 소금과 후추를 친다. 또한 한꺼번에 스테이크를 다 잘라놓고, 거기에 김치를 올려 먹기도 한다. 이걸 '대구식 양식문화’로 존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피니언 리더에 대한 양식문화 활성화 운동을 벌여야 할 시점이다.

호텔 레스토랑 퇴조가 양질의 조리사 '탈대구 러시’와 무관하지 않다. 호텔 레스토랑 초봉이 서울과 부산 등에 비해 좋지 않기 때문에 조리사들이 업무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한다. 새내기 조리사들도 예전에는 열정과 경력, 경험 등을 중시했지만 지금은 급여에 목숨을 건다. 조금만 경력을 쌓으면 대구에 있지 않고 서울로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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