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미식가의 세계

  • 입력 2011-06-10   |  발행일 2011-06-10 제42면   |  수정 2011-06-10
대구 경북서도 ‘미식가 만찬’ 열렸다
올림픽 대표 김홍욱 셰프, 청도서 미꾸라지·감 등 특산물 이용한 풀코스 선봬
세계미식가協 1950년 결성 후 교황 등 70개국 3만명 가입…연 6회 정기만찬
에드워드 권, 국내 첫 ‘월드고메서밋’ 정식 초청받아 차가운 삼계탕 등 한식 재해석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미식가의 세계
국가대표 셰프로 선발된 김홍욱씨 후원 기금마련을 위해 최근 청도 연지예당에서 열린 대구경북미식가위원회 만찬장. 이날 최영준 대구공업대 교수(호텔외식조리계열)와 박성숙 세화요리학원장이 김씨의 동료와 후배 등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미식가를 위한 프롤로그

미식가(Gourmet). 이들은 여러 버전의 동일한 음식을 먹어봐서 특정 음식 요리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비교분석적 정보가 없이 그냥 ‘주마간산·중구난방식’으로 식당을 순례하는 탐식가들은 미식가보다 ‘식도락가’라고 해야 맞다.

미식가들은 극도로 정적이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열정과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다. 지상에 하나밖에 없는 맛을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아프리카 오지라도 간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를 전속요리사로 둔 걸 보면 미식가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미식가들의 공용어는 영어다.

국제적 매너도 겸비했다. 격식을 따지는 만찬장에는 남성은 턱시도, 여성은 이브닝드레스가 기본이다. 요즘은 다양해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남성의 경우 구두는 반드시 끈달린 드레스 슈즈를 신어야 했다. 슈트라면 검정과 감색이 주류를 이룬다. 양말도 검정이 기본.

그런데 동양권 무경험자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가 있다. 식탁에서 물을 찾는 것이다. 미식가의 식탁에는 물컵이 없다. 코스 메뉴 사이에 와인이 나오고, 마지막엔 커피도 먹을 수 있으니 사실 물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물이 많이 들어가면 맛을 왜곡시킨다. 입에 들어간 음식물 점도가 희석돼 식감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미식가 모임에서 셰프에게 물을 달라고 하면 큰 결례다.

좌우로 여러 종류의 포크와 나이프가 세팅되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냥 맨 바깥 식기부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차례로 사용하면 된다. 먹다보면 음식에 맞는 식기를 순서대로 놓았다는 걸 알게 된다. 후추와 소금통도 없다. 음식에 어떤 덧칠도 하지 않고 맛을 봐야 셰프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최상의 셰프들이 이미 간을 잘 했기 때문에 추가로 후추와 소금을 뿌릴 필요가 없다. 또한 테이블 옆에 휴지통도 없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평생 서양식 정식 다이닝레스토랑에서 식사할 기회가 있겠는가. 미국이라도 극히 일부 최상류층만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다.

◆WGS

미식가들이 가장 초청받고 싶어하는 테이블은 ‘월드 고메 서밋(World Gourmet Summit·WGS)’.

WGS는 싱가포르가 세계적 식도락 허브를 구축하자는 목표로 1997년부터 발동을 걸었다. 올해 WGS 측으로부터 정식으로 ‘셀러브리티 셰프’로 초청장을 받은 국내 첫 셰프는 에드워드 권(권영민). 그는 거기서 차가운 삼계탕과 백김치 샐러드,인삼 폼 소스가 어우러진 갈비찜과 같은 퓨전 한식, 김치 토마토 잼을 넣은 미니 햄버거,치킨롤 인삼 밤을 곁들인 삼계탕 등 한국 식재료를 재해석한 퓨전 요리를 선보였다.

그는 세계 최고의 호텔로 불리는 두바이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의 2인자 셰프로 일하다가 최근 서울 청담동에 ‘LAB24’라는 레스토랑을 열었다. 지난 4일부터 QTV를 통해 최고의 셰프를 서바이벌식으로 찾는 ‘YES CHEF 2’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또 세계적 미식가들의 입을 감동시키는 떠오르는 스타 셰프가 있다. 서울 강남 신사동 정식당의 오너셰프인 임정식씨. 임씨는 프랑스 최고 요리학교인 코르동블루를 나와 한식에 분자요리 기법을 더해 ‘프랑스풍의 한식’을 개발하고 있다.

한식 분야의 경우 한반도 전역의 제철 나물류를 갖고 퍼포먼스 같은 즉석요리를 통해 ‘회화적 푸드’라는 신지평을 열어 일본 등 세계 미식가들에게 퓨전 한식의 돌풍을 일으킨 ‘방랑 식객’ 산당 임지호씨가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미식가협회

프랑스어로 ‘센 데 로티쇠르(Chaine des Rotisseur·고기 굽는 사람들의 모임)’.

세계미식가협회의 별칭이다. 세계미식가협회는 1950년 파리에서 결성됐다. 동우회 성격의 국제 미식가 모임이다. 이는 1248년 프랑스의 성 루이 대왕이 결성한 왕실의 길드 ‘거위 굽는 이들(Les Oyers 또는 Goose Roasters)’에서 기원한다. 아쉽게도 이 길드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다른 길드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요리를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시키고자 한 길드의 몇몇 미식가와 요리사들에 의해 명맥이 이어졌다.

현재 세계미식가협회에는 70여개국 3만여 회원이 가입해 있다. 요리사, 레스토랑과 호텔 종사자 등의 ‘전문가 멤버’와 와인&파인 다이닝을 즐기고 협회의 정신을 공유하려는 ‘비전문가 멤버’ 두 그룹으로 나뉜다. 교황과 스웨덴 왕도 미식가협회 멤버다. 76년에 결성한 세계미식가협회 한국 지부(회장은 번하드 브렌더 서울 그랜드힐튼 총지배인)에는 현재 주한 외국 대사, 경제인, 호텔 경영인, 외국 회사 중역, 예술가 등이 주축으로 모이고 있다. 이 중 한국 주재 외국인 비율은 50% 정도. 거의 외국인 특급호텔 총주방장 등이 축을 이룬다고 보면 된다.

로컬의 경우 서울과 부산에 이어, 지난해 대구·경북도 로컬 지부 결성을 위한 위원회 활동을 개시했으며, 올해 9월2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한국 요리대표로 출전하는 김홍욱씨 후원을 위한 체인디너(미식가 만찬)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여러 동료·후배 셰프들과 미꾸라지, 감 등 청도 특산물을 이용한 풀코스 요리도 선보였다.

세계미식가협회는 연 6회의 정기 만찬을 연다. 초창기에는 100여명 회원이 한 데 모여 만찬을 즐길만한 레스토랑이 없어 주로 호텔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최근 일반 식당에도 눈길을 준다. 국내 일반 음식점으로는 처음으로 협회 회원이 된 건 서울의 한식당 용수산과 운산. 2009년 봄 서울 여의도 서울시티클럽 지하에 있는 운산에서 갈라 디너 파티가 열렸다. 30년 역사의 용수산과 운산, 두 곳을 함께 운영하는 김윤영 대표는 1990년대 초반에 세계미식가협회 회원이 됐으며, 여덟 번 정도 2년마다 미식가협회 만찬을 진행했다. 미식가들이 한식을 먹은 것 자체가 뉴스가 됐다. 또한 이태원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빌라소르티노’도 미식가협회가 찾았다.

한국도 점차 미식가를 불러 국제적 푸드 페스티벌을 많이 엮으려고 한다.

2009년 10월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어메이징 코리안 테이블(Amazing Korean Table)’에는 프랑스 최대 일간지 르몽드 기자이자 프랑스 최고의 음식 평론가 장 클로드 리보, 이태리 최고의 음식 잡지인 ‘옴니보르(Omnivore)’의 기자이자, 비평가 안드레아 페트리니 등이 한국을 찾았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미식가의 세계
■김홍욱 대표셰프의 청도특산물 풀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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