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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런 멘트로 기자에게 딴죽거는 지인들이 적잖다. 모르긴 해도 얼마전 막 내린 2011전주국제영화제(JIFF)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영화 '트루맛쇼’에서 '매스컴에 소개된 맛있다는 음식점이 100%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는 지적탓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빈말은 아니다. 실제 우리 언론들은 광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식당의 유혹에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10년전 기자는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식당 기사를 적었다.
'절대로 광고와 기사를 연계시키지 말 것, 동료 기자들을 데리고 가지말것, 기사가 나가고 난뒤 그 식당을 찾아가지 말것, 사장이 부탁을 해도 일단 '이건 아니다’란 직감이 들면 관계자들로부터 야속하다는 등 싫은 소리를 들어도 절대 소개하지 말것’
이 원칙을 지금까지 금과옥조로 여긴다. 중간에 본의 아니게 '옥에 티’도 더러 있었지만 '본지는 이제 기사와 광고가 무관하다’란 말을 감히 할 수 있게 됐다. '광고는 광고이고. 기사는 기사’이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정말 맛있는 식당보다 '제대로 된 식당’을 찾는다. 음식기자 초년병 시절에는 맛있는 식당만 죽어라고 찾았다. 10년을 넘어서자 '맛있는 식당은 없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맛있는 음식은 왠지 '화학조미료의 서자(庶子)’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음모(陰謀)가 있는 음식은 분명 '혀’만 유혹한다. 하지만 권위가 있는 음식은 '영혼’까지도 파릇하게 만든다. 식당도 하나의 '문화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주인들도 함부로 식당을 열지 말아야 한다. 식당은 원천 에너지의 공급처다. 그러니 음식 갖고 절대로 장난 못치게 해야 한다.
모든 병이 음식 잘 못 먹는데서 오는 것 같다. 식당 음식 제대로 만들도록 서로 노력해야 한다. 알고 보면 셰프도 '푸드닥터(Food do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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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슐랭가이드
자동차여행 유도 위해 안내서 펴낸 게 대박
전세계 레스토랑 대상 전문 미식가들이 심사 재료상태 등 암행평가
고품격요리에 ★ 등급 도쿄 191개 받아 최다 “타이어 팔기 위한 상술" 美紙보도 도덕성 도마
최근 한국판은 그린판 레드판 비해 권위낮아
■ 자갓 서베이
신문의 식당평가에 불만·자갓 변호사 부부가 펴내
미국 주요도시만 대상·일반인 평가단이 점수 매겨
문화·특색이 반영되고 폭넓은 가격대도 고려
단 한장의 사진도 안 실어 30점 만점 받은 곳 全無
◆ 미슐랭가이드 & 자갓
이런 생각할 때마다 세계 미식가들로부터 '식경(食經)’으로 추앙을 받는'미슐랭가이드(Michelin guide)’가 떠오른다.
프랑스의 세계적 타이어 회사가 왜 세계 최고 권위의 레스토랑 비평잡지를 110년째 펴내고 있는 걸까.
미슐랭가이드는 1900년 프랑스 운전자들을 위한 안내서로 처음 발간됐다. 미슐랭 형제는 타이어 판매가 신통치 않자 고민에 빠진다. 이 때 떠올린 신규 사업 아이템이 바로 도로 지도와 여행 안내서. 자동차 여행을 유도해 타이어를 닳게 해 판매량을 늘리겠다는 의도였다. 첫 미슐랭가이드에는 타이어 교체 방법과 함께 프랑스 내 3천400개 넘는 호텔·레스토랑 정보를 담아 무료배포, 1920년부터 유료로 팔기 시작.
프랑스에 미슐랭이 있다면 미국에는 자갓 서베이(Zagat survey)가 있다.
자갓은 1979년 뉴욕에서 태어난다. 뉴욕의 변호사인 자갓 부부는 친구들과 저녁 식사 중이었다. 그 때 누군가가 '한 유명 일간지의 레스토랑 평가 기사가 엉망’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기자 한 명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은 신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동조했다.
이렇게 해서 200명의 아마추어 평가원들이 모였다. 뉴욕 내 121개의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냉정하게 점수를 매겼다. 자갓 부부는 이것을 취합해 복사본 형식으로 자갓을 펴냈다. 문의가 미국 전역에서 빗발쳤다. 이로 인해 83년 정식으로 자갓을 출간하고 지금 세계 100여개국의 레스토랑 가이드북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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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평가단은 전문 미식가들이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한다. 지원자 대부분이 호텔관광경영학 전공자나 셰프 출신. 6개월간의 훈련도 거친다. 비공개 심사라서 평가원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절대로 공짜 음식을 먹지 않는다. 손님으로 앉아 접시와 식기의 세팅 상태, 요리가 나오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가장 중시하는 건 사용된 재료들의 상태다. 평가는 5단계로 이뤄지는데 스푼과 포크가 엇갈려 있는 모양으로 1~5개로 등급이 매겨진다.
자갓은 전문가보다 대중적 파워를 믿는다.
점수는 일반인 평가단에 의해 이뤄진다. 전문가 집단이 1차로 심사 대상 식당을 추린다. 전문가 집단은 특파원 개념의 자갓 서베이 로컬 에디터와 해당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음식평론가·레스토랑 컨설턴트·교수들로 구성된다. 그 도시의 문화와 특색이 반영되고 폭넓은 가격대의 요리를 내야 한다. 프랜차이즈와 테이크아웃 레스토랑은 제외. 평가단의 평가는 자갓 홈페이지(www.zagat.com)를 통해 진행된다. 이들은 30점 만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 음료와 팁을 포함한 1인당 식사비용으로 적정한 가격을 매기며, 400자 이내의 코멘트도 덧붙인다.
미슐랭이 전 세계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것과 달리, 자갓은 미국의 주요 도시만을 대상으로 평가한다. 자갓에는 사진이 단 한 장도 실려 있지 않다. 음식과 실내 인테리어의 비주얼이 독자들을 현혹시킬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란다. 상호명과 지역·주소·연락처 등 레스토랑의 기본 정보와 점수·적정가격·논평만 전달한다.
자갓은 스타 대신 점수로 판정하는데 30점이 만점이며, 현재 만점 식당은 어디에도 없다. 뉴욕에서는 29점을 받은 '르 베르나르뎅’이 유일하다. 보통 26∼27점 넘으면 미슐랭의 스타급 레스토랑과 견줄만하다.
미슐랭은 고품격 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에는 특별히 별(스타) 등급을 준다. 별 등급을 도입한 것은 1933년부터. 별 하나(원 스타)는 '매우 좋은 품질의 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 별 둘(투 스타)은 '나중에라도 다시 찾아볼 만한 레스토랑’, 별 셋(스리 스타)은 '매우 탁월한 품질의 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다. 별을 받는 곳은 10%에 불과하다. 미슐랭가이드는 두 종류가 있다. 레드판과 그린판, 식당은 주로 레드판, 지난 5월 프랑스에서 발간된 미슐랭 한국판은 여행정보지 수준의 그린판이라서 레드보다 권위가 떨어진다.
역시 일본인 모양이다. 2008년 일본 도쿄가 '세계 음식 수도’로 자리를 굳힌다. 이때 도쿄는 모두 191개 별을 받아 파리(64개)나 뉴욕(42개)보다 훨씬 앞섰다. 별 3개 식당은 모두 8곳, 이중 일식당이 5곳, 프랑스 식당이 3곳이었다. 도쿄에는 식당이 16만곳. 반면 파리에는 10분의 1에 불과한 1만1천곳이다.
◆ 미슐랭도 비판 받아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고 했다.
지난해 10월25일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무소불위의 미슐랭 권위에 대들었다. 미슐랭의 암행조사원으로 근무한 파스칼 레미는 “일본인을 칭찬하고 마음을 잡아 지갑을 열게 해 타이어를 사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미슐랭이 2002년부터 해외 시장에서 자사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미슐랭가이드를 이용했으며, 그에 따라 평가 기준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국내에도 미슐랭 스타일을 벤치마킹해 '블루리본 서베이(www.bluer.co.kr)’가 2005년 창간된다. 이들은 스리스타 대신 스리리본을 부여한다. 하지만 미슐랭에 너무 혹해선 안될 것 같다. 미슐랭보다 더 무서운 건 소비자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 소비자들이 미슐랭 권위에 냉정해질 것 같지는 않다. 너무 '미슐랭! 미슐랭!’하며 주눅들지 말자. 음식은 이미 '무국적주의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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