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플루티스트, 오너셰프가 되다 - 레스토랑 ‘신라’의 박수진

  • 입력 2011-06-24   |  발행일 2011-06-24 제42면   |  수정 2011-07-30
갤러리 같은 ‘유기농 레스토랑’…1개 1000원짜리 계란 등 최고 식재료 고집
서울 오가며 3년 공부 ‘셰프근성’ 배워
제대로 된 요리 내려고 식탁 개수 줄여
벽엔 이우환 등 거장들 미술작 전시도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플루티스트, 오너셰프가 되다 - 레스토랑 ‘신라’의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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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티스트 박수진(52).
끝내 그녀는 오너셰프가 되고야 말았다.

9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작정한 길은 아니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몸이 무척 아팠으며, 평생 품었던 플루트도 접었다. 그녀는 15년간 대구시향 플루트 주자였다. 갤러리 신라와 큐브C 대표인 남편 이광호씨가 아내를 위해 갤러리 옆 공간을 내밀었다. 그래서 찻집을 했다. 2개월 정도 하다가 더 발을 집어넣어 내친 김에 일반 레스토랑을 차렸다.

그런데 먹성이 까다로운 그녀는 솔직히 자기 집 메뉴에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다. 자기 식당 음식은 외면했다. 남편은 “그건 옳지 않은 태도”라고 지적했다. "당신이 먹기 싫은 음식을 손님에게 내놔선 안된다”고 조언했다. 2004년 그렇게 해서 대구에서 처음으로 유기농 전문 레스토랑 신라가 생긴다.

쉽지 않았다. 뭘 제대로 하려고 하니 도처에 복병에 숨어 있었다. 처음 그녀의 레스토랑 상식은 거의‘빵점’. 문화애호가적 호사스러움만 믿고 대들었지만 연방 깨진다. 믿었던 첫 셰프도 그녀를 힘들게 했다. 이론은 100점인데 현실은 ‘빵점’이었다. 손님이 오면 그제서야 근처 백화점에서 고기를 사올 정도였다. 셰프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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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순진했다. 주방장이 모든 걸 알아서 다 해줄 줄 알았다. 결국 내가 뭘 모르니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서울로 가서 ‘셰프들의 비밀노트’란 책에 소개된 전 하야트호텔 총주방장 출신이자 이탈리아 요리로는 국내에서 몇번째 손꼽힐 만한 이만식 셰프한테 매달렸다.

요리에도 순서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가령 나물과 채소를 볶을 때 처음부터 소금을 넣으면 나중엔 죽이 된다. 반드시 마지막에 소금을 쳐야 최상의 식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만식은 스테이크 하나 구울 때도 한 손은 쉬지 않고 불 세기를 조절했다. 음식이 ‘불의 예술’이란 걸 그녀에게 가르쳐줬다. 레스토랑 팁거리를 하나씩 챙겨갔다. 그렇게 해서 2006년 신라 요리 매뉴얼북을 내부용으로 만든다.

2년간 공부하고는 다시 2006년부터는 이탈리아 국제요리학교 서울 분교에 1년간 몸을 담았다. 매주 토요일 서울로 가서 마우리치오 선생한테 또 이탈리아 요리를 배웠다. 그는 그녀에게 요리 재료 계량화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심지어 그는 고온에서는 절대 사용해선 안된다고 알려진 엑스트라 버진 오일도 개의치 않고 사용해 그녀는 퍽 놀란다. 고정관념이라는 게 요리를 망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식재료의 신선도가 결국 가장 중요한 변수란 걸 알았다.

“스승은 ‘자기도 오래 묵힌 냉동 식재료를 갖고 요리를 하라고 하면 20% 이상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오리도 사육한 걸 버리고 실제 자연에서 뛰어다니며 방사된 걸 사용하겠다는 각오를 하라’고 당부했다.”

3년여의 혹독한 수련기간 동안 그녀는 셰프의 근성을 배운 것 같다. 이제 음식을 예전 플루트처럼 불 수 있게 됐단다. 기본기를 갖추고 나니 음식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프랑스 유명 레스토랑 불독에 가서 음식을 먹어봤다. 자기 것보다 더 나은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얻었다. 가끔 갤러리 관계자들이 들러 이 정도 음식이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인정해줬다.

나름대로 신라 콘셉트를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식탁 수를 너무 많게 하지 말자고 했다. 수가 많으면 제대로 요리를 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녀의 레스토랑 앞 마당에는 여러가지 허브가 심겨 있다. 로즈마리, 세이지, 라벤다, 민트, 바질, 루콜라 등이다. 계절과 그날의 온도와 날씨에 맞는 허브를 갖고 샐러드 등에 활용한다.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했다. 허브티가 나왔는데 유리잔에 직접 만든 하얀 면포를 깔았다. 유리잔 부딪히는 소리를 막기 위해서다. 물컵에 지문지우고 컵에 냄새 안나게 하기 위해 항상 깨끗한 수건으로 금세 닦고 말려서 사용한다.

맹물은 비린내가 난다. 반드시 허브향을 살짝 올린다. 흰색 벽에는 세계적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이우환을 비롯해 곽훈, 천경자, 슐탄 등 현대미술의 거장 작품을 식사와 함께 감상하게 했다. 얼마전까지는 칸막이를 안했는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최근 리모델링을 했다.

그녀가 자신이 사용하는 식재료 원가를 공개했다. 올리브 오일은 델파파를 사용하는데 250g에 1만3천원. 발사믹식초의 경우 6년산 모데나산인데 250g에 1만3천원, 소금은 안데스산 천연소금, 모든 재료는 친환경 제품만 사용한다. 호박은 1천900~2천500원, 가지도 1천200~1천900원 짜리를 사용한다. 일반 채소의 4~5배다.

쇠고기도 무항생제다. 100g에 8천500~9천500원선. 계란은 1개 1천원짜리 유정란. 밀가루는 독일 바우크사 유기농으로 1㎏에 6천500~7천500원. 설탕은 브라질산 유기농, 버터도 100% 올가닉 버터로 450g 한 개에 2만원, 마요네즈는 사용 안한다. 우유는 제주도 아이아 앤 골드 청정산, 홍차는 영국산, 녹차는 지리산, 커피도 최상급 원두만 엄선한다. (053)421-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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