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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물음표(?)일까 느낌표(!)일까. 많은 이들은 무조건 느낌표 편인 것 같다. 칼국수는 쉬운데 파스타는 아직 어렵고, 종류도 수백종이라서 그런가. 유럽에서 건너온 물건이라서 그런 걸까.
파스타 마니아들은 그들만의 편견이 있다. 스스로 알아서 실내 분위기에 주눅 들어준다. ‘수입산 문화’란 게 다 그런 속성을 갖고 있다.
국내파 파스타는 해외파 파스타한테 좀 밀린다. 그래서 적잖은 셰프 지망생들이 해외로 연수를 다녀온다. 알고보면 음식이 뭐, 특별한 게 없다. 이탈리아 현지 파스타와 국내파 파스타가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화려하기는 국내가 더 화려하다. 본토는 덧칠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탈리아는 식재료에 목숨을 거는데 비해 우린 소스 등에 목숨을 건다. 식당도 자기 소유가 아니고 경쟁은 치열하고, 특히 절대 다수 단골이 젊은층이니 무턱대고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 그래서 파스타점이 폼은 나도 잘 성공하지 못한다.
이탈리아 현지를 다 누비고 국내로 들어와 파스타 에세이집을 내고 요즘 모 일간지에 음식칼럼을 쓰고 있는 박찬일 셰프. 그는 이제 자기만의 파스타 세계로 들어온 것 같다. ‘이탈리아 파스타 최고’ 그는 그렇게 운운하지 않는다. 스승이 누구냐에도 흥미가 없다. 오직 자기만의 색깔로 파스타를 빚을 때 그게 ‘명품 파스타’가 아닐까.
“어떤 음식 좋아해요?”
“저는 자장면.”
“난 파스타.”
“어떤 파스타 좋아하세요.”
“예, 까르보나라?”
“난 라비올리(이탈리아식 만두).”
우리의 국수는 종류가 달랑 몇 개 안되니 물을 게 별로 없다. 고작 건진국수, 누름(제물)국수, 잔치국수, 무침국수, 어탕국수…. 그런데 이탈리아 면의 대명사인 파스타는 다르다. 종류가 엄청 다양하다. 본토에선 ‘파스타학(學)’까지 등장할 판이다.
다들 너무도 태연하게 ‘이 집 파스타는 백점, 저 집 파스타는 빵점’이라고 단정해버린다. 대단히 곤란한 발상이다. 다른 지역도 그렇지만 파스타는 정말 입소문에 민감한 메뉴다. 이상하게 어디 파스타가 좋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말에 단번에 세뇌된다. 좋다고 하는 파스타를 먹고나서 별로라는 말을 대놓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게 말하면 곧 정보를 준 지인과 냉랭한 관계가 될 것이다.
파스타 종류별로 자기한테 맞는 게 있고 안 맞는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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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우스의 마늘 소스 부시맨빵, 토마토 스파게티, 갈비살 피자. (위에서부터) |
자기한테 맞아도 타인한테 별로인 게 있다. 모두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달랑 스파게티 하나 먹고, 그것도 마침 셰프 컨디션이 바닥인 날 먹고, “이집은 ×”라고 말하는 건 극단적인 처사다. 어떤 집의 파스타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면 그 집 파스타 메뉴를 골고루 다 먹어봐야 될 것 같다. 중국의 한 지방 특정 식당 특정 메뉴 하나만 먹고 국내로 돌아와 “중국 음식 별로”라고 단정하는 것과 비슷한 실수를 파스타 진영에서도 곧잘 저지른다.
파스타가 한국과 눈높이로 만나기 위해선 파스타 마니아 진영에서 먼저 느낌표를 물음표로 바꿔야 된다고 본다. 파스타 종류도 수백종류, 하지만 국내에 들어온 건 빙산의 일각, 일각의 파스타도 브랜드마다 가격차가 엄청나다. 가장 비싼 스파게티와 가장 싼 스파게티의 가격차가 얼마인지 알아보라. 그럼 원가에 대한 감각이 생길 것이다. 6천원짜리 스파게티도 있고, 2만원짜리 파스타도 있다. 액면가만 보지 말고 그 구성의 속내를 들여다 보라.
면발의 익기 정도도 어느 정도일 때 가장 맛있는 지, 그게 내 식성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 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파스타가 가장 잘 익은 상태인 ‘알덴테(Aldente)’도 전문가마다 희망 강도가 다르다.
요즘 식당경영에 관심있는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업종은 단연 커피숍과 파스타 하우스.
자기만의 파스타점. 저들에겐 대로망이다. 저 푸른 초원위에 화이트하우스 짓는 것처럼 벅찰 것이다.
대구 파스타 역사는 고작 10년 조금 넘었을 정도다. 솔직히 맛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시내 INTO, 이탈리아노, B2, 경북대 북문 맞은편 산책, 지산동 까를로, 계명대 성서 캠퍼스 근처 오솔레, 대명동 파스타민, 수성못 근처 나폴리와 빠빠베로 등이 자기 소릴 내기 시작했다. 대구식 파스타에 열중인 셰프가 있는데, 바로 수성구 수성3가 롯데캐슬 옆 ‘테라짜 인 시티’의 셰프 남정율씨(40).
한때는 젊은이들의 거리에 많이 포진했지만 요즘은 아파트촌 이면 도로 등에도 무인도 같은 ‘골목형 파스타점’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숙달된 셰프는 식재료 간의 기운을 한목소리로 낼 수 있게 잘 튜닝한다. 하지만 아마추어 셰프는 식재료를 맘대로 통제하지 못해 마치 장난감 조립하듯 깨작거린다. 흉내를 냈기 때문에 식감이 별로다.
지난 주 아직 마니아들한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각지대에 있는 파스타점 두 곳을 다녀왔다.
수성구 범어동 법원 맞은편 몬티첼로와 수성구 지산동 황금동 롯데캐슬 주변 골목에 위치한 인하우스.
모자란 점도 있지만 실험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이 좋아 보여 소개를 한다.
둘다 오너셰프 체제는 아니지만 주인과 셰프가 혈육처럼 죽이 잘맞아 다행이다. 흥미롭게도 두 집은 매주 일요일 쉰다. 셰프를 위해서란다. 보통 주인과 셰프가 맞지 않으면 1년 못넘긴다. 주인도 셰프를 팍팍 밀어주고 셰프도 주인의 꿈을 놓치지 않을 때 롱런할 수 있다. 주인의 경영적 고집과 셰프의 요리철학이 불협화음을 내면 좀처럼 중재하기 힘들다. 물론 주인이 음식보다 돈에 더 치중해도 그 집은 오래 못간다. 아무튼 이 두 집의 셰프는 성질이 좀 강팍해서 ‘악바리’ 같다.
몬티첼로 셰프 신무경씨(38). 그는 대구예술대 성악과 출신으로 테너가 꿈이었는데 이탈리아로 5년간 유학을 갔다가 음악은 아닌 것 같아 꿈을 접었다. 대신 셰프의 세상에 발을 들였다. 이탈리아 현지 레스토랑 두 곳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지역 곳곳을 돌아 지난해 10월 오픈한 몬티첼로와 손을 잡았다. 말수가 무척 적다. 맛보다 좋은 재료에 목숨을 건다. 주인은 망설이는데 그는 조금 숨 죽은 식재료를 보면 즉석에서 반품요청을 한다.
인하우스의 김영호 셰프(33)는 요리경연대회 참가자처럼 움직인다. 매일 아침 칠성시장에 가서 직접 재료를 구입해 온다. 판박이 메뉴는 거부한다. 매주, 매월, 그리고 계절마다 새로운 자기 필이 스며들어간 톱 메뉴라인을 새롭게 짠다. 실험정신이 가득한 것이다. 집에 가도 새로운 메뉴 생각뿐이다. 방랑식객 임지호처럼 제철 우리의 산과 들에 나는 각종 재료를 갖고 김영호표 신메뉴를 깔고 싶어한다. 아직은 둘 다 무명가수나 마찬가지지만 그 열정만은 나가수 버전이라서 적극 추천한다. 두 집 다 원두커피가 여느 커피숍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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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파사드(건물 입구의 전체적 이미지)’가 깔끔하고 정리정돈돼 있다. 국내 최고의 캘리그래피 고수 강병인씨가 간판 글씨꼴을 만들었다.
스타게티를 특화했다. 빠네, 엔초비, 봉골레, 토마토 아라비아타, 까르보나라 등 8가지를 선보인다.
빠네가 눈길을 끈다. 다른 집에서는 볼 수 없다. 기본형을 토대로 신무경 셰프만의 포인트를 정리해 편곡했다. 빠네는 하드롤 바게트 위에 새우를 곁들인 크림 스파게티 형태인데, 크림 농도를 너무 무르지 않게 잘 안배했다. 봉골레도 선율이 심플하고 칙칙하지 않다. 정확하게 맛의 과녁을 명중시키고 있다. 버섯베이컨 피자를 먹었는데 일단 토핑이 화려하지 않아 맘에 들고 베이컨도 비싼 걸 사용해 믿음직했다. 하지만 샐러드 라인이 너무 한식형인 것 같아 아쉬웠다. 아주 매콤한 토마토 소스의 아라비아타, 치즈 강도를 줄인 까르보나라도 그만의 형식으로 짰다. 신 셰프는 짬이 나면 세계 유명 셰프의 요리 동영상을 섭렵하고 있다. 그는 주방에서 콧노래도 부르지 않는다. 뭔가 작정한 듯하다. 주인 김광수씨(51), 그도 커피숍 8년 경력이 있다. 스파게티 9천~1만2천원. 커피와 디저트도 테이크아웃 가능. 더치커피 4천500원. 피자는 1만~1만5천원.
◇수성구 범어동 13-1 (053)744-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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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골목에서 발견한 가장 편안하고 지중해풍의 인테리어 라인을 갖고 있었다.
인테리어가 참 먹음직스럽다. 회칠이 된 적벽돌벽, 그리고 직접 핸드메이드 버전으로 만든 식탁. 장식품도 덕지덕지 붙이지 않았다. ‘프로방스 스타일’이다. 입구에 김영호 셰프의 얼굴이 현수막에 염직돼 있다. 음식에 자신있다는 뜻. 여긴 자주 메뉴가 바뀌는 게 특징. 셰프가 게으르고 주인의식 없으면 그렇게 못한다.
3만3천원짜리 런치코스를 시켰다. 식전빵-샐러드-파스타-피자-디저트로 이어진다.
마늘 소스가 곁들여진 구운 부시맨빵, 그리고 샐러드. 여느 집에는 상추가 주종인데 여긴 루콜라 등 별종 허브들이 침샘을 공격한다. 어라, 갈비살 피자? 토핑으로 올라온 갈비살이 감동스럽다. 100g당 1만5천원대의 고기에서 볼 수 있는 육즙을 보여준다. 토마토 파스타의 성공 포인트는 토마토홀과 스파게티 양의 안배다. 토마토홀이 수프처럼 흥건하거나 너무 졸아 면에 달라붙으면 무척 질척거리는데 여긴 소스 양도 적당하고 그래서 매끄럽게 면발을 감싼다. 전반적으로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다. 파스타는 1만1천원. 런치코스도 3만3천~3만9천원. 샐러드는 1만2천원. 피자는 1만6천원.그동안 스테이크를 안냈는데 최근 김 셰프가 자기만의 색깔이 깃든 버전을 개발했다.
◇수성구 지산동 976-6 (053)765-7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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