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한민국 국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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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9-30   |  발행일 2011-09-30 제36면   |  수정 2011-09-30
안동국시는 건진·누름 두 종류…거창 어탕국수 유명
부산은 밀가루 냉면인 ‘밀면’히트… 칼국수 안 즐겨
북한서 냉면은 겨울음식…남한에도 ‘진주냉면’ 존재
막국수는 육수 종류 따라 춘천·봉평·양양式 세 종류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한민국 국수
강원도 춘천 막국수

‘국수(麵).’

한자 뜻이 흥미롭다. ‘보리의 얼굴’이란 뜻이다. 뜻을 살펴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국내 승가에선 국수를 ‘승소(僧笑)’라고도 한다니, 뭔가 의미가 통할 듯하다.

국수의 종주국은 중국이다. 너무나 많은 국수가 산재해 있다. 이탈리아 파스타도 실은 중국에서 수입해서 발전시킨 것이다. 한국도 중국 못지 않게 다양한 면요리가 있다. 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만든 이욱정 PD도 국내 최초로 국수의 기원을 파고들었다. 그는 2002년 중국사회과학원이 중국 서쪽 칭하이성(靑海城)의 신석지 유적지에서 발굴한 화석화된 국수를 현지 확인하기도 했다.

국수는 ‘장수의 음식’이다.

유래는 중국 한나라 한무제 때부터다. 어느 날 한무제가 연회석상에서 국수를 받았는데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이 모습을 본 동양 최장수 인물인 동박삭이 기지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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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전과 해물 육수가 인상적인 진주냉면

”황제폐하, 요순시대 800세까지 산 팽조는 얼굴이 무척 길었습니다. 오늘 국수는 그보다 몇 배나 더 긴 것 같습니다. 주방장이 무병장수를 위해 국수를 만들었나 봅니다.”

진시황의 얼굴이 펴진 것은 불문가지다. 이때부터 국수가 잔칫날 대표 먹거리로 정착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국수가 들어온 것은 고려때부터다. 송으로 유학간 고려 승려들에 의해서였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1123)’에 처음으로 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지금은 밀가루가 흔하지만 그 시절 가장 흔한 건 메밀이었다.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랐다. 한 해 두 번 수확이 가능했다. 그걸 갖고 묵, 국수, 전병, 부침 등을 해먹었다. 유학자 이시명의 부인 안동 장씨가 쓴 국내 최고의 한글 고조리서인 ‘음식디미방(1670)’은 메밀을 으뜸가는 국수 재료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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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누름국수

광복 직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메밀·녹두가루는 흔했지만 밀가루는 귀했다. 밀가루 풍년시대는 1950년대 미군이 밀가루를 잉여농산물로 원조해준 덕분에 가능해진다. 삼립식빵이 빵 붐을 일으킨 것도 그 때문에 가능했다. 밀가루 수요는 늘어나면서도 메밀 수요는 줄고 차츰 경작지도 줄어들고 급기야 메밀이 귀해지기 시작한다.

예전 밀가루는 방아나 멧돌로 빻았다. 입자가 거칠 수밖에 없다. 더 고운 입자를 만들기 위해 선조들은 미리 방바닥에 한지 등을 깔고 둘레에 병풍을 친 뒤 가루를 부채질해 무게 순서로 떨어트려 최상급 고운 밀가루를 얻었다. 이젠 다 옛 얘기다. 방앗간이 생기면서 이런 풍습은 사라진다.

◆함흥에는 함흥냉면이 없다

북한에선 겨울에 냉면이 인기다.

우린 냉면을 여름음식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다. 북한에선 ‘겨울음식’. 우리가 하나 알아둬야 할 것은 북한에는 물냉면은 있어도 비빔냉면, 즉 ‘함흥냉면’이라는 말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북한의 대표냉면은 평양냉면(물냉면)밖에 없고, 함흥냉면은 현지에선 ‘농마면’ ‘회국수’로 통한다. 농마는 ‘녹말’의 함경도 사투리.

현재 남한 비빔냉면 주재료는 메밀이지만 북한의 농마면에는 메밀이 없다. 100% 감자 전분으로 빚는다. 전분의 경우 북한에선 감자, 남한에선 고구마가 선호된다. 북한식 물냉면과 남한식 물냉면은 어떤 차이가 날까. 일단 평양냉면은 거의 메밀로만 만든다. 묵처럼 잘 끊어진다. 남한에선 전분을 많이 넣어 고무줄처럼 질기다. 북한의 농마면은 고무줄처럼 질기지만 평양냉면은 그렇지 않다. 육수도 북한식에는 사골육수가 거의 들어가지 않고 오직 동치미 국물만 사용한다. 남한에선 사골육수가 전면에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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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우암동 60여년 역사의 부산밀면의 원조 내호냉면

평양냉면과 맞먹는 게 강원도의‘막국수’다. 춘천에만 막국수가 있는 게 아니다. 세 종류가 있다.

춘천형, 봉평형, 양양형. 면은 세 곳 모두 메밀 85% 정도에 전분을 15% 가량 섞는다. 그런데 육수 스타일이 제각기 다르다. 춘천형은 사골육수, 봉평형은 과일육수, 양양(화진포)은 동치미 국물이 축이다. 양양형이 북한식에 가장 가깝다.

‘북한에만 냉면이 있다.’는 말이 맞을까.

아니다. 남한에도 냉면이 있다. 바로 ‘진주냉면’이다. 진주냉면은 10여년 전 전통음식연구가 김영복씨의 도움을 받아 진주에서 부활됐다. 진주 객사의 교자상 등에 마지막 디저트 형식으로 나왔다. 진주냉면

은 평양냉면과 사뭇 다르다. 일단 육수는 멸치를 중심으로 해산물이 주로 들어가며, 비린내는 벌겋게 단 무쇠를 집어넣어 제거한다. 고명으로 육전을 올려주는 게 특징이다.

◆ 안동은 경상도 국수의 메카

안동에선 안동국시가 유명하다.

안동국시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건진국수, 또 하나는 누름국수(제물국수). 건진국수는 만드는 과정이 매우 정교하고 뚝배기 같은 누름국수와 달리, 백자처럼 단아하다. 건진국수는 귀한 손님이 올 때 정성스럽게 빚는다. 꿩 육수를 사용하며, 면발은 되도록 가늘게 한다. 한 소끔 끓인 뒤 찬물에서 헹군 뒤 그 위에 꿩육수를 붓는다. 누름국수는 서민용.

건진국수는 면을 찬물에 한번 헹구지만 누름국수는 일반 칼국수처럼 한번에 다 끓이는 게 특징이다. 일명 ‘제물국수’라 한다. 안동식 건진국수 전문식당은 안동에 없다. 대신 웅부공원 옆에 선미식당에서 누름국수를 조밥과 함께 낸다. 건진국수를 먹으려면 고택스테이를 하는 칠계재에 예약하면 된다.

최근 대구에 덕마니 팥 칼국수 전문점이 생겼다. 원래 팥 칼국수는 퓨전 동지팥죽으로 보면 된다. 찹쌀로 빚은 새알심 대신 국수가 들어간 거다. 팥칼국수는 원래 전남 보성, 벌교 등지에서 유행했다. 흡사 경상도의 육국수 같다.

◆ 일제 때 발흥한 잔치국수

잔치국수는 원래 일본강점기 때 유행한다. 잔치국수에 멸치 육수를 이용하기 시작한 건 일본 멸치잡이 선주들 때문이다. 일제 때 거제도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일본 선주들은 잡아들인 멸치를 말려 다시용으로 팔기 위해 잔치국수를 고안해 냈다. 일제 때 대표적 국수 공장은 부산 구포와 대구에 밀집해 있었다. 구포국수는 마른 소면의 대명사로 불린다.

물론 현재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공장인 풍국면(대표 최익진)은 대구시 북구 노원동에 있다.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설립자도 한때 중구 인교동에서 별표 국수공장을 경영했다. 이상하게도 부산에선 홍두깨로 밀어낸 칼국수를 즐기지 않는다. 잔치국수가 대세.

부산역 앞 초량 평산옥에 가면 소면이 들어간 돼지국밥을 먹을 수 있다. 또한 이 비슷한 스타일이 제주도에선 제주국수 버전으로 발전된다. 제주국수 육수는 사골로 곤다. 대구에서 맛보려면 중동교에서 황금네거리로 가다 오른편에 보이는 제주국수로 가면 된다.

◆ 밀면의 진격

밀면의 고향은 부산이다.

6·25전쟁 당시 메밀이 턱없이 부족해지기 시작하고 밀가루 시대가 전개된다. 냉면을 즐겼던 피란민들이 고민을 한다. 상대적으로 흔해진 밀가루를 갖고 냉면을 만든다. 밀가루 75%, 전분 25%, 그렇게 배합해 면을 뽑았는데 그게 밀면(밀가루 냉면의 준말)이다. 밀면은 부산 우암동 내호냉면이 원조, 뒤에 가야밀면이 중흥조가 된다. 가야밀면의 육수는 봉평막국수처럼 과일 기운이 많아 좀 달짝지근하다.

◆ 어탕과 올챙이국수, 그리고 쫄면

칼국수와 매운탕이 만나면 어탕국수가 된다. 경남 거창, 충북 옥천, 덕유산권 등지에 산재해 있다. 대구의 경우 대구시 동구 영남일보 부근 골목에 있는 거창식당이 알아준다. 바깥양반 고향이 경남 거창이며, 거창에서 먹던 어탕국수를 대구에서 유행시킨 주인공이다.

이밖에 정선의 콧등치기 국수, 강원도와 영주와 죽령 근처 산간마을에서 즐기는 올챙이국수(구멍 뚫린 바가지에 멀건 밀가루 반죽을 붓고 그 구멍으로 빠져나온 반죽을 뜨거운 물에 빠트리면 되는데 그 모양이 꼭 올챙이 같아 붙여진 이름)도 명물이다.

쫄면 스토리도 듣고 나면 웃음이 나온다. 1970년대 초 인천시 중구에 있는 광신제면이란 냉면공장에서 실수로 탄생한다. 공장 직원이 면을 뽑는 사출기 구멍을 잘못 맞추는 바람에 냉면보다 훨씬 굵은 면발이 나온다. 면을 버리기 아까워 이웃 분식집에 공짜로 줬으며, 분식집 주인이 고추장 양념에 비벼 팔면서 분식집 메뉴로 확산된다.

영주시 하망동의 중앙분식 쫄면은 이미 생강도너츠와 함께 영주의 명물. 구룡포 구룡포초등 맞은편 철규분식의 계란만한 흰설탕 뿌린 찐빵과 통영의 오미사꿀빵이 생각난다. 63년생이니 대구 미성당 납작만두와 갑장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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