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서울로 올라간 대구 음식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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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10-14   |  발행일 2011-10-14 제36면   |  수정 2011-10-14
강남 ‘동인동’의 전 줄 설 정도로 인기폭발
강남 ‘동인동’의 전 줄 설 정도로 인기폭발
교동 전선생도 백기

갑자기 서울로 올라간 지방음식이 궁금했다.

일단 3대째 서울에서 살고 있는 서울토박이 현황부터 살펴보자. 숫자가 너무 적다. 한 조사에 따르면 50여만명쯤이란다. 서울시민 20명 가운데 1명 정도가 토박이. 그러니 요즘 서울의 문화는 상당 부분 지방색의 연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800년 6월, 개혁정치와 문예중흥을 이끌던 정조가 갑자기 승하했다. 11세의 어린 순조가 뒤를 잇자 대왕대비와 외척이 권력을 독점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세도정치는 이후 3대 60년간 안동김씨-풍양조씨-안동김씨의 순으로 진행됐다. 안동김씨들이 바로 지금의 청운동 일대에 가문을 이루고 살았으며, 당시 동네 이름인 장의동의 이름을 따 ‘장동 김씨’로 행세했다. 자연스레 안동의 식문화도 혼례 등으로 인해 서울 속으로 스며든다. 오늘날 서울풍속은 동서남북 각 지방색의 집합이라서 무척 ‘잡탕적’인데 남산과 북촌(안국동, 제동, 팔판동, 삼청동, 화동, 가회동 포함) 정도만 양반가 후손에 의해 겨우 ‘원형적 서울풍’을 갖고 있다.

서울 토박이들의 음식은 상당히 정갈하고 담백하고 맵지도 짜지도 않다. 고려시대 개성음식의 영향이 이어져온 탓이다. 그 흐름을 받고 있는 식당이 서울에 세 군데 있다.

1980년 문을 연 종로구 삼청동 용수산(최상옥씨), 81년 서대문구 대신동 석란(김경호), 84년 신촌의 마리(김영호).

이들 주인은 월남한 개성 출신이다. 이들로 인해 ‘서울식 한정식 문화’가 태동한다. 참고로 서울에 맨처음 호남한식을 소개한 식당은 현재 계동 현대 사옥 근처에 있는 장원(莊園·주정순씨에서 딸 문수정씨로 가업 계승)으로 58년 종로구 청진동에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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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 근처에 위치한 ‘동인동’에서 내놓는 전(왼쪽)과 찜갈비
◆신사동의 모듬전 전문집 ‘동인동’

일단 서울의 대표적인 방랑식객으로 불리는 황광해씨가 이번 기자의 서울 나들이에 동행했다. 네이버 카페 ‘포크와 젓가락’ 매니저. 경향신문 시절 음식전문기자란 말조차 생소할 때 전국을 9바퀴 정도 돌았으며, 서울의 해묵은 식당을 찾아 헤맨 결과를 얼마전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서울의 오래된 맛집 111(네오프랜 간)’로 정리해 출간했다. 또한 유지상 전 중앙일보 음식전문기자와 네이버 블로그 ‘쉐비체어’를 운영하는 호남의 대표적인 식객으로 급부상한 김병대씨도 동참했다.

맨 먼저 간 곳은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 근처의 ‘동인동’이다.

모듬전과 대구 동인동식 매콤한 찜갈비 전문점이었다. 옆에는 ‘남원추어탕’이 있었다. 조금더 걸어가면 ‘전라도밥상’도 있다. 강남 최고의 쇼핑가인 가로수길과 이웃하고 있지만 대다수 식당은 지방 일색이다. 사실 여기선 정통 서울음식을 맛보기 힘들다. 지방출신 서울 거주자들의 밤의 허기를 메워주기에 급급하다. 퓨전 서울식 간장게장으로 대박난 신사동 ‘프로간장게장’도 그런 특수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동인동 주인은 대구 사람이다.

서울식 갈비찜에 도전장을 냈다. 매콤한 대구식 찜갈비, 그런데 먹혀들어갔다. 그건 서울 토박이 때문이 아니라 서울의 지방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5시40분이었는데도 벌써 홀 안은 실비집 분위기로 변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실비스타일의 고깃집은 마포구 노고산동 60여년 역사의 연남서식당이다. 여기는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서서 급하게 고기를 구워먹던 그 스타일이 아직까지 존속되고 있다. 연탄불로 고기를 굽는다.

동인동은 조금 늦게 가면 줄을 서야 될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입구 바로 옆에 전을 굽는 철판이 보인다. 동인동은 신사동 전문화를 평정했다. 바로 옆에 교동 전선생이 왔지만 백기투항하고 말았다. 여기에선 미리 장만해 놓은 칙칙한 전이 아니라 즉석에서 해준다. 주문과 함께 요리를 해주니 전 표면에 기름 포적(泡跡)이 고스란히 남는다. 막걸리와 궁합이 딱 맞다.

동인동 찜갈비는 거의 대구식이다.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이 넉넉하게 들어가 있었다. 대구 출신은 대구에 가지 않고도 고향을 맛볼 수 있게 됐다. 국내산 갈비는 타산이 맞지않아 호주산으로 낸다. 1인분에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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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번에 끓인 뒤 추어탕처럼 퍼내오는 마포의 갱시기김치찌개 전문점인 굴다리의 김치찌개.
◆ 갱시기김치찌개

다음으로 찾은 곳은 마포에 있는 갱시기김치찌개 전문점인 ‘굴다리’.

김치찌개파에겐 중구 주교동 온주정과 함께 유명하다. 여기를 대구 스타일 식당이라고 보는 건 갱시기 때문. 갱시기는 가장 대구적인 음식 중 하나. 콩나물, 묵은지, 썬 가래떡 등 온갖 식재료를 넣고 밥국처럼 끓인 것이다.

갱시기김치찌개는 비계 많은 돼지고기를 수북하게 넣은 뒤 한소끔 끓여놓고 추어탕처럼 손님이 올 때마다 필요한 만큼 덜어준다. 서울식은 갱시기 스타일이 아니다. 즉석에서 주문량만큼 낸다.

서대문구 냉천동 한옥집은 김치찌개를 김치찜으로 바꿔놓은 주인공. 대구도 중구 공평동에 가맹점이 있는데 줄서야 먹을 수 있다.

떡볶이도 대구식(신천동)과 서울(신당동)식이 다르다. 대구는 갱시기처럼 한꺼번에 해놓고 덜어내지만 신당동은 주문받은 양만큼만 즉석요리하는 게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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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따로국밥을 닮은 명동따로.
◆ 따로국밥을 찾아서

신사동 신사역 근처에 있는 ‘강남따로’는 정말로 서울식으로 변한 따로국밥이었다. 여기는 대구식 따로국밥과 조금 달랐다. 맛도 덜 매웠으며, 국물도 맑았다. 대파 대신 콩나물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꼭 전주콩나물국밥·경주 팔우정 해장국·경남 의령 종로식당의 쇠고기국 스타일이었다. 신사동 ‘명동따로’를 찾았다. 거기는 아주 국물이 묵직했다. 대구식과 많이 닮았다. 서울 따로국밥은 청주 스타일에서 탁주 스타일 등 다양하게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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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전주콩나물국밥을 연상시키는 서울 신사동 강남따로.
서울의 탁주문화는 어느 정도 활성화 됐을까.

그렇게 해서 찾아간 두 곳의 퓨전 막걸리집이 있다. 마포의 이박사 신동막걸리와 강남구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과 공항터미널 근처에 있는 헬렌스키친이었다. 두 곳 모두 생긴지는 얼마 안되지만 젊은층으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이박사 신동막걸리는 칠곡의 신동 막걸리 전문점이며, 헬렌스키친은 꼭 카페 같은 막걸리 하우스인데 칠곡 신동막걸리,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 등 30여종의 가장 지방색 짙은 막걸리를 다 선보인다. 그런데 대구의 불로막걸리는 취급하지 않는다. 주인은 특이하게 서울 출신이다.

■ 서울식 음식의 정체성

고춧가루 보기 힘들어…경상·전라와 대조
양반가 육개장은 기제사 때의 ‘탕국’ 흡사
‘설렁탕 공화국’ 불릴 만큼 새벽부터 북적

서울음식은 개성은 물론, 황해·평안남·강원·충청도음식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하지만 경상·전라도음식과는 맛이 대조적이다. 서울음식에는 좀처럼 고춧가루를 보기 힘들다. 서울토박이에게 혀가 얼얼할 정도의 매운 육개장을 들이밀면 한 술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는다. 그들의 혀는 거의 외국인과 엇비슷하다.

육개장(쇠고기국)을 갖고 비교해보자.

원래 대구서 발생한 육개장은 일본강점기 당시 서울로 진출한다. 이후 고사리와 돼지로 요리된 제주식 육개장과 섞이면서 독특한 서울식 육개장 문화가 태어난다.

서울에는 두 종류의 육개장이 존재한다. 강남터미널과 서울역 근처 육개장과 토박이들이 집에서 끓여먹는 육개장. 상업지구의 육개장은 솔직히 너무 지저분하고 느끼해서 제대로 먹기 힘들다. 고사리가 들어가고, 과도한 고추기름, 거기에 계란에 후추까지 푼다. 꼭 만둣국에 쇠고기국을 섞은 것 같다.

하지만 서울 반가의 육개장은 확실히 다르다. 일단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고 양지머리, 사태살 등 정육과 깍둑썰기한 무만 갖고 후추를 뿌려 경상도 기제사 때나 헛제사밥 먹을 때 내놓는 탕처럼 만들어 먹는다. 이런 맹물 같은 육개장을 먹던 사람이 대구식 육개장을 보면 기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초창기 추탕(추어탕) 만은 아주 매웠다는 점이다. 자연 서울에서 설렁탕이 대구의 육개장만큼 인기절정일 수밖에 없었다.

사대문 안 명품 식당은 이문, 영춘옥, 청진옥, 이남장, 잼배옥, 대중옥, 옥천옥…, 사대문 밖에서는 백송, 홍익진국, 용문, 덕원, 봉희, 양지, 영동, 신촌 등이 확고한 기반을 잡았다. 정말 서울은 ‘설렁탕 공화국’ 같다. 설렁탕집은 특히 술꾼들이 속을 풀기 위해 새벽같이 많이 몰려온 덕분에 ‘해장국집’으로도 불렸다.

해장국도 육개장의 한 지류이지만 무엇보다 이 해장국은 육개장과 레시피가 좀 다르다. 대파보다는 우거지와 콩나물, 그리고 정육보다 선지를 베이스로 세팅한 게 특징이다. 대구의 대덕식당 소피국과 가장 비슷하다. 청진옥은 서울 해장국 1번지로 유명하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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