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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식 새재묵조밥 전문점을 8년 만에 성공 반열에 올려놓은 발효 연구가 장성우씨. |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식초향이 반색한다. 꼭 예전 초당(草堂)에 들어온 것 같다. 요즘 식당은 너무 ‘실험수’ 같아 뭔가 아쉽다.
문경새재 전통음식인 새재묵조밥. 이게 수성구 대구시교육청 근처에 자리 잡은 건 8년전. 이 생소한 음식이 지역민에게 어필하기까지 장성우씨는 여러 차례 힘든 고비를 겪었다. 외지 음식에 대해 보수적인 대구에서 뿌리내리는 게 얼마나 지난한 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식초와 효소, 소스 등 지역의 대표적 발효음식 연구가로 활동중인 장성우씨(40).
그의 부모는 문경새재 초입에서 가장 유명한 묵조밥 전문점 ‘소문난식당’을 꾸려간다. 장씨는 어릴 때부터 묵과 동고동락하면서 성장했다. 부모가 묵을 만들 때 전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훗날 대구로 와서 대학에 다닌 그는 식당을 열기 전 온라인 비즈니스를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장씨는 묵말랭이를 만들기 위해 볕에 묵을 말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쩌면 그에게는 사업가적 기질보다 음식연구가 캐릭터가 더 강했는지도 모른다. 점차 고향의 청포묵을 대구에서 꽃 피울 결심을 한다.
“엄마, 대구서 청포묵이나 팔아 볼란다.”
“성우야, 지발∼ 하던 사업이나 열심히 해라.”
하지만 자식 이길 부모가 누가 있을까. 어머니(박남복)에게 부탁을 해서 청포묵을 직접 받아 대구서 팔기로 했다. 고향에서 묵을 보내주면 그가 북부터미널에 가서 수령해 온다. 당시 대구의 묵은 도토리 아니면 메밀묵이었다. 청포묵은 생소했고, 있다고 해도 오리지널 청포묵과는 질감이 사뭇 달랐다. 꼭 투명한 젤리 같았다. 하지만 문경의 청포묵은 옥빛이 감돌고 아이 엉덩이처럼 탱글탱글했다.
청포묵은 묵 중에서 가장 비싸고 갈무리하기도 어렵다. 하절기엔 만든지 2시간 만에 상해버린다. 재고관리가 참으로 힘든 음식이었다. 몇몇 시장에 물건을 내놓았지만 주인들이 선도를 위해 냉장고에 보관하는 바람에 소비자가 제대로 접하기 힘들었다. 재고가 생겨났다. 남은 묵을 재활용하기 위해 묵말랭이로 만들었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별로였다.
묵이 왜 이렇냐? 왜 이렇게 비리냐? 어묵 아니냐? 등등…. 청포묵을 알아보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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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묵채에 조밥을 섞고 된장찌개를 넣어 비비면 새재묵조밥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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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만큼이나 어렵게 만들어진 청포묵과 조밥, 그리고 도토리묵 누룽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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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채와 비슷한 청포묵채. |
◆ “안되겠다, 직접 식당을 운영하자”
그는 결심을 한다.
2004년 12월 직접 청포묵 전문점 ‘새재묵조밥’을 연다. 부모는 극구 말렸다. 그는 배수진을 쳤다. 홀린 듯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2시간 남짓 차를 몰고 고향 집의 묵을 받아 대구로 와서 팔았다. 일단 고향의 재료를 100% 사용하자고 다짐한다. 물은 물론 반찬과 양념, 묵, 심지어 된장찌개까지 모친이 장만한 걸 가져왔다. 도토리묵도 분말을 이용하면 당일 만들 수 있지만, 그는 전통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4일이나 걸린다. 주위에서 다들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다들 이 식당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상당수가 ‘묵조밥이 뭐냐’고 물었다. 장씨는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이해시켜야만 했다. 그는 어느 순간 청포묵 전도사가 돼 있었다. 자신이 직접 홀서빙을 하면서 묵조밥을 알렸다.
처음에는 코스식이 아니라 묵비빔밥 같은 묵조밥 하나만 팔았다.
채 썬 묵에 조밥을 섞어 비벼 먹도록 했다. 조밥을 빼고 멸치 육수만 수북하게 부으면 ‘경상도식 묵사발’ 같았다. 이 집 비빔밥에는 안동 헛제사밥처럼 고추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느끼하다고 생각하는 손님들은 고추장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이 음식은 간장과 된장찌개만으로 간을 해서 먹는다’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다들 비빔밥에는 고추장이 들어가야 되는 줄 알더군요. 문경음식이 대구에 잘 먹히지 않는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 3년만에 찾아 온 고비
3년이 됐다.
하지만 볕이 들 기미가 없었다. 아내는 옛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했다. 돈도 많이 까먹었다. 하루 10만원도 못 파는 날들이 허다했다. 사면초가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툭 하면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우야, 문경은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데 대구는 왜 그 모양이냐. 대구는 문경 음식이 아닌가보다. 빨리 접어라.”
그는 한발 양보를 한다.
‘대구에 맞는 음식으로 묵조밥을 새롭게 변신시켜야 된다’면서 전략을 수정한다. 기존 묵조밥을 베이스로 코스식 한정식 메뉴를 새롭게 개발한다.
죽·샐러드·채소요리·볶음·탕·구이·계절메뉴, 메인요리로는 청포채, 그리고 청포묵비빔밥과 여덟 가지 반찬을 냈다. 반찬은 문경에서 내는 것과 동일하다. 다시마부각·가지볶음·멸치무침·망초나물·호박볶음·물김치·오이지 등을 낸다. 탕평채 같은 청포채는 청포채·오이·당근·표고·황지단·목이버섯·숙주나물·김채·묵은지를 섞어 만드는데 중식당의 해파리냉채 못지않았다.
그때부터 대구가 조금씩 반응을 한다.
장씨는 때맞춰 불기 시작한 웰빙음식 붐을 잘 활용한다. 육고기와 해산물 사용은 최소화하자고 다짐한다. 계절별 음식도 엄선했다. 봄에는 봄나물, 여름에는 생나물 절임음식, 가을에는 버섯류, 겨울에는 묵나물류를 특선으로 냈다. 가급적 모든 식재료는 고향 것을 사용하자고 결심한다. 참기름만 해도 고집스럽게 신토불이 버전만 올린다. 국산깨는 문경에서 온다. 주변마을 기름집을 통해 2∼3일마다 한번씩 짠다. 중국산이 국산보다 3∼4배 저렴하다는 걸 알지만 그는 그걸 사용할 수 없었다. 조선간장을 이용한 궁중떡볶이, 부추콩가루 무침을 선별적으로 냈다.
어느 날 모 기업의 회장이 그에게 쓴소리를 한다. “니맛도 내맛도 아닌 묵요리는 난생 처음 본다”면서 그의 코스 요리에 낙제점수를 주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 건강 식초와 두부, 옥수수수염차, 뽕잎차 등을 선물로 보내 끝내 단골로 만든다.
■ 수성구 ‘새재묵조밥’
문경 어머니 식당서 모든 재료 받아 썼지만 대부분 “느끼하다” 초창기 고전의 연속
“니 맛도 내 맛도 없다” 악평 모 기업 회장에게 음식 성질 등 설명도
코스식 메뉴 개발하고 대구입맛 맞게 변신 시도
조금씩 반응 오더니 건강식 찾는 단골 늘어
◆ 대구식 변형 메뉴도 개발
물론 묵요리는 먹다보면 느끼해진다.
지역 단골을 위해 조금 매콤한 신메뉴도 만들었다. 겨울용 홍합찜이다. 봄에는 무침회, 여름에는 회를 뺀 물회, 가을에는 먹버섯·능이버섯·꽃바랭이·새송이·느타리버섯·표고버섯 등으로 버섯볶음을 낸다.
우엉도리뱅뱅이도 아이디어가 빛난 메뉴다. 원래 도리뱅뱅이는 피라미를 이용하는데 그는 튀기면 비슷한 질감을 보이는 우엉을 이용했다. 또한 ‘전가복’ 같은 오복탕도 개발했다. 5가지의 어패류, 5가지의 버섯류, 5가지의 채소류를 넣고 전분은 찹쌀·현미·견과류·좁쌀 등을 이용해 올렸다.
디저트도 좀 특별나다.
도토리·청포묵·좁쌀밥 누룽지다. 이건 시간과의 싸움을 거쳐서 빚어낸다. 묵을 끓이고 나면 누룽지가 생긴다. 하지만 잘 벗겨지지 않아서 물을 부어 하룻밤을 불려야 한다. 긁어내 양지에서 1주일 남짓 말려야 한다. 그런 다음 180℃ 식용유에서 10초만에 튀겨낸다.
조만간 허가를 받아 식자재 직거래 장터도 만들 계획이다.
문경 과수원의 사과는 물론 재래식 식초, 백초·오미자·오디 효소, 시금치와 황태 등 10종 이상의 별난 장아찌, 제철 나물류, 이밖에 간장·된장·고추장 등도 내놓을 방침이다.
“고진감래라고 봅니다. 대구문화와 잘 접목한 결과 이젠 단골이 꽤 늘었습니다. 환자는 물론, 건강을 지키려는 단골이 늘고 있죠. 매운 걸 좋아하던 이들도 이젠 우리집의 싱거운 메뉴에 잘 적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돈을 버는 맘이 아니라 ‘도(道)를 닦는 맘’으로 음식을 대한다. 절벽까지 내몰린 그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우직한 ‘장인정신’ 덕분이 아닐까. (053)753-6969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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