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국을 찾아서 - (4)복어국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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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2-17   |  발행일 2012-02-17 제42면   |  수정 2012-02-17
60년대초 '삼락' 대구 첫 복국시대 열어…100만원짜리 스테이크 먹는 셈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국을 찾아서 - (4)복어국
황복·참복에 비해 독성이 적은 밀복.


복어 요리는 일제 때부터 등장한 줄 아는데 아니다.

조선의 옛 조리서 ‘규합총서’와 풍속서인 ‘동국세시기’에 복어(鰒魚)에 대한 요리·손질법이 나온다. 조선 후기 이덕무가 적은 ‘청장관전서’는 ‘복어는 복숭아꽃이 떨어지기 전에 먹어야 하며, 음력 3월이 지나면 복어를 먹고 죽는 경우가 많지만 이를 알면서도 먹는다’면서 복어의 독 성분인 테트로도톡신을 경고한 대목도 나온다. 복어 요리는 이미 조선 때 대중화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더 흥미로운 고담(古談)이 많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복어광으로, 그를 위한 ‘찬가’까지 남겼다. 심지어 그는 ‘목숨을 걸고 복어를 먹는다(搏死食河豚)’고 했는데 ‘하돈’은 ‘물돼지’란 말로 복어를 의미한다. 오나라 왕 부차(夫差)를 멸망의 길로 밀어넣은 서시(西施)를 거론하면서 복어의 맛을 잊지 못한 귀족들이‘서시의 젖(西施乳)’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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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국은 고가일수록 매운탕보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지리’버전이 정석이다.


◆ 대구의 복어국 역사

지구상에서 복어요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데는 일본과 한국 정도가 고작이다. 의외로 중국은 거의 먹지 않고 한국과 일본에 수출한다.

제대로 된 복어요리 노하우는 일본에 다 있다. 에도 막부시대만 해도 워낙 많은 이들이 복어 독 때문에 죽자 한때 복어음식 금지령까지 내려진다. 오사카는 일본에서 복어 면허제가 맨 처음 도입된 도시. 파란 대접시에 대패밥처럼 얇게 나비 날개처럼 착륙시키는 복사시미는 복요리 기량을 가늠케 하는 최대 승부처다. 얼리지 않은 상태에서 종잇장처럼 얇게 써는 건 정말 어렵다.

복요리 노하우는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인들에게 전파된다.

많은 이들은 부산을 복어의 메카로 안다. 하지만 아니다. 부산은 돼지국밥, 곰장어 요리, 불고기 등이 더 강세다. 그럼 어떻게 복어의 고장이 됐는가. 1992년 김영삼 대통령 측이 불법선거 모의를 하다 들켰던 남구 대연동 복어요리집 ‘초원복국’ 때문에 부산의 복어가 전국적 명물이 된 것이다. 70년대초에 등장해 이젠 기업형으로 성장한 ‘금수복국’도 부산을 복어의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마니아들은 이런 집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대형화 때문에 다들 육수로 맛을 낼 수밖에 없다. 복어의 진미를 만끽하기 어렵다. 복어의 진미는 뒷골목 해묵은 식당의 주방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더 높다.

광복 전만 해도 대구에서 제대로 복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은 중구 향촌동과 북성로의 고급 일식당이었다. 거기서 일을 하던 일식당 멤버들이 훗날 대구 일식의 주도권을 잡는다.

60년대초 아시아 극장 근처에 있었던 회 전문 ‘삼락’이 대구에서 처음으로 복국 전문시대를 연다. 당시 복국은 현재로 말하면 한 끼 100만원짜리 스테이크를 먹는 것과 진배없었다. 특권층과 미식가에게만 가능했다.

60년대 대구의 섬유공장 사장 등은 비즈니스 차원에서 대신동 진갈비 등 각종 숯불갈비집과 불고기 집을 들락거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동절기만 되면 복국집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연말연시 폭음에 시달린 호주가들은 속을 풀기 위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복국을 찾았다. 비용이 조금 부담스러우면 대구탕으로 종목을 바꾸기도 했지만….

향촌동의 일식집 미향에서 나와 1975년 옛 뉴대구호텔 뒷골목에서 명성식당을 연 최종하씨(66). 삼락과 함께 복사시미 전문점으로 유명했던 명성은 직접 포항에서 올라온 참복어를 동절기 지역 유지들에게만 예약식으로 내놓았다. 당시 경매가만 해도 1㎏에 8만원선. 1인분에 1만원이 넘었으니 지금 시세로는 10만원 이상이다. 최씨는 현재 7호광장 근처로 식당을 옮겨 생태 전문집을 꾸려가고 있다.

60~70년대 대구에는 골목형 복국집이 형성된다.

그 역사를 주도한 대표적인 할머니가 있다. 바로 대하림의 ‘이득천 할매’였다. 대하림은 골목형 복국집에서 시작해 나중에 매머드 식당으로 발전하다가 다른 사람에 의해 수성구 대하림 시대를 연다. 대하림은 이씨 할머니가 70년대말 서울로 올라가서 망한 뒤 대구로 내려와 재기를 노리면서 만든 상호인데 81년 당시 중구 남산동 복명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었다. 나중에 중광스님까지 단골로 왔고, 그의 그림까지 걸릴 정도였다.

70년대 대구는 복국의 메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번창한다.

대표적인 데가 대신동 동산약국 옆 골목의 자갈마당·반월당 등. 현재 나름대로 맛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곳은 4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반월당 네거리 남동쪽 모퉁이에 있는 광성복어(425-8948), 중앙고 정문 옆에 있는 대진복어(수성구 범어3동·754-6988), 원대오거리 자갈마당 복어(358-7112) 정도다. 원래 진짜 복국에는 육수가 필요없다. 맹물로 끓여야 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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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국집은 허름한 ‘골목버전’이 제격이다. 충남 강경읍 황산포구 황산옥(맨위)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복어 전문점으로 불린다. 대구중앙고 근처 대진(가운데), 원대오거리 근처 자갈마당도 골수들이 찾는 곳이다.

◆ 전국의 이색 복어탕집

여러 종류의 복어 중에서 가장 비싼 복은 참복과 황복. 모두 1㎏에 10만원이 넘는다. 식당에서 먹으려면 1인분에 3만원 이상 지불해야 된다. 황복은 장어와 연어처럼 바다에서 놀다 민물로 올라온다. 물론 산란 때문이다. 현재 국내 황복의 메카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강. 타계한 산악인 박영석씨와 만화 ‘식객’의 작가 허영만이 시식해서 유명해진 ‘임진대가집(대표 이선호)’이 이곳에 있다. 이 집을 비롯 황복철만 되면 무려 50여 횟집 및 매운탕집이 임진강변에서 황복국을 판다.

하지만 사철 가능하지 않다.

대충 4월 한 달 정도만 먹을 수 있다. 그 바닥에선 매년 4월20일~6월20일이 제철. 이 두달간 황복은 알을 낳기 위해 임진강으로 올라온다. 수컷은 암컷을 뒤따른다. 부화를 하면 60일 후 바다로 간뒤 정확하게 3년뒤 고향으로 온다. 산란기 황복은 낮에는 쉬고 밤 9시부터 움직이다. 이때 그물을 이용해 잡는다. 강물 안에 청진기를 대면 황복이 이빨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파주에는 황복잡이 배가 140여척이 있다. 2007년부터 황복 양식에 나서 성공을 했지만 타산성이 없어 모두 전을 거두고 있다. 최소 1㎏ 정도라야 맛이 나는데 양식산은 3년이 돼도 200~300g 밖에 안 자라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하구언이 생기기 전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등에서도 황복이 잡혔다. 현재는 하구 둑 때문에 임진강 외에는 잡기 어렵다. 부산의 경우 자갈치 시장, 부산역 근처 영주 터널 근처에서도 황복이 팔렸다.

금강 하구인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강경포구에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 된 복어집으로 불리는 ‘황산옥(041-745-1836)’이 있다. 1915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2대 사장 한상례 할머니가 18살에 시집와 시어머니에게 전수해 57년동안 운영하다가 며느리 모숙자씨에게, 다시 모씨는 아들에게 4대째 손맛을 전수했다. 시동생이 대전에서 지점을 꾸려간다. 시유지 하천부지에 있었기 때문에 2000년 황산나루터 앞에 4층 건물을 지어 옮겼다. 오래 황복 전문점이었다가 하구에 둑이 생기면서 금강 황복을 못팔게 된다.

충남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 갈산시장 인근에서는 특이하게 ‘건복어탕’을 맛볼 수 있다.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 갈산시장 인근에 자리한 44년 전통의 삼삼복집(041-633-2145)에서다. 이정옥 할머니(75)에 이어 막내딸 김용주씨(39)가 손맛을 이었다. 건복어는 조막만한 졸복을 해풍에 시나브로 한 달 이상 말려 사용한다. 마치 황태를 말리듯 눈과 찬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맞게 한다. 요즘 서해안에서는 이를 다시 건조창고에서 1년에서 길게는 3~4년씩 숙성시켜 탕거리로 사용한다. 오래 숙성된 것일수록 깊은 국물맛을 낸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복어 TIP

중국도 94년부터 양식복어를 한국과 일본으로 수출한다. 양식 복어에는 독성이 거의 없다. 그런 복어는 서로의 꼬리를 무는 습성이 있다. 꼬리에 상처가 있으면 대개 양식이다.

현재 6천~7천원대 복어국은 거의 중국 등지의 수입산 냉동 은복을 사용한다. 복국이라고 할 수 없다. 진미는 거의 참복이 갖고 있다. 그런데 수입도 안되고, 자연산 복어는 자연산 홍어처럼 귀해 일반인은 거의 먹기 힘들다. 거제도산 양식 참복도 있다.

생복은 매운탕은 금물. 지리로 먹어야 제맛이다. 육수에 의존하면 프로 요리사가 아니다. 식당에 가서 물어보라, 육수를 갖고 끓이는지. 확률상, 복국은 번듯한 큰 집보다 허름한 집이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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