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1)대구 남구 대명9동 ‘국수’의 구자덕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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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4-06   |  발행일 2012-04-06 제42면   |  수정 2012-04-06
이탈리아 본토의 스파게티·피자 맛을 위해 피클부터 없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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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유학파 셰프 못지않은 독창적 메뉴라인과 고품격 재료를 고집하는 구자덕 셰프. 구 셰프가 최근까지 운영했던 업소(오른쪽 아래) 외관이 특이하다 .
식당주인이 음식을 모르면 그건 ‘범죄’란 생각이다.

식당주인이 요리까지 커버하고 있다면 우린 그를 ‘오너셰프(Owner Chef)’라 부른다. 경영과 주방이 분리된 식당은 결국 주인의 탐욕 등으로 인해 역사적 식당으로 진화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구는 아직 오너셰프 비율이 채 10%도 안된다. 분발해야 될 것 같다. 최근 빛나는 셰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번주부터 지역에서 요리를 자신의 천직(天職)이라 믿고 혼신의 힘을 다해 요리의 진경(眞境)을 개척해가는 미래파 오너셰프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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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안 레스토랑 ‘국수’의 인기 디저트인 빤나코타, 고등어 스파게티, 피자카프리치오사(위에서부터).
남구 대명동 앞산네거리에서 벚꽃길이 멋진 충혼탑 방향으로 차를 몰고가다가 얼핏 그 집 간판을 본적이 있다.

국수(GOOKSU). 옆에 ‘이탈리안 트라토리아(Trattoria) 슬로푸드’란 수식어를 붙여놓았다. ‘이탈리아 가정식 메뉴 전문 슬로푸드’란 뜻. 하지만 상대적으로 돌출돼 보이는 국수란 용어 때문에 다들 칼국수 전문점인 줄 착각해 이런저런 촌극이 벌어진다.

2010년 6월에 오픈했다. 인테리어 비용에 1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반지하지만 앞산의 풍광을 볼 수 있게 가로 5m 세로 60㎝ 크기의 장방형 통요리창을 펼쳤다.

“신선한 재료에서  제대로 된 맛 나와
 양념·향신료에  목숨 걸진 않아”

 브로콜리 등  채소류도 거부
 유정란·의성마늘 고가의 건면 사용

 문희갑 전 시장 우연히 왔다 단골


구자덕 오너셰프(32)는 비주얼이 좋다. 서울 홍대 파스타 오너셰프 스타일이다. 훤칠하게 큰 신장, 자신감 넘치는 맑은 눈동자…. 모델로 갔어도 성공했을 것 같은데 엄청난 노동강도 때문에 아무나 성공할 수 없는 오너셰프의 세계로 점프인했다. 10년전부터 시내 동성로 옛 국제호텔 1층에 들어선 ‘리틀 이탈리아’란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형(구자태) 덕분에 이탈리아 요리 마니아로 성장해갔다. 이탈리아 요리에 목숨을 건 오승훈·윤경수씨와 삼국지처럼 의기투합, 대구에서 가장 제대로 하는 이탈리아 식당을 만들자고 약속한다.

본토의 맛을 위해 음식 맛을 해치는 ‘피클’부터 과감하게 거부했다.

가게 앞에 ‘본토의 맛을 위해 피클을 내놓지 않습니다’란 안내문을 자신있게 내밀었다. 어떤 이들은 그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굳이 피클을 원하면 짭짤한 맛이 감도는 올리브 열매 장아찌를 건넨다.

“피클은 이탈리아에는 없습니다. 일본으로 갔다가 한국으로 수입되는 과정에 생긴 변종메뉴로 보입니다. 자장면집에서 단무지를 찾듯, 우리는 무심결에 파스타와 피자 옆에 피클이 바늘의 실처럼 붙어다녀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정말 음식이 제대로 된 맛을 갖고 있다고 하면 절대 피클을 고집하지 않을 것 같네요.”

신선한 농수산물에서 제대로 된 맛이 나오지 절대 좋은 양념과 향신료에서 오지 않는다고 믿는다. 의성군 다인면에 살고 있는 고향 부모에게 의성에서 가장 좋은 마늘을 보내달라고 했다. 국내산 재료인 경우에도 실제 어느 고장에서 온 건지도 밝힌다. 건면 파스타 및 올리브 등은 상대적으로 고가인 ‘데체코’를 사용한다. 건면의 경우 하절기에는 6분, 겨울에는 7분쯤 삶는다. 흠을 숨기기 위해 이런저런 재료를 실없이 추가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 우연찮게 문희갑 전 대구시장이 이 집 스파게티를 먹고는 단번에 단골이 된다. 1년이 안돼 소문난 레스토랑으로 주목받는다. 맛있는 집보다는 제대로 된 집이었다.

해산물토마토스파게티라고 하면 해산물만 넣지 거기에 브로컬리 등과 같은 각종 채소류를 넣지 않는다. 크림류를 먹고 싶다면 건면보다는 직접 세몰리나(Semolina·파스타를 만들 때 이용되는 정제한 경질밀)에 저가 계란 대신 더 노랗고 응집력이 증가되는 유정란 노른자를 사용한다. 좋은 요리를 하려면 운명적으로 이익이 많이 남지 않는다. 하지만 덜 남아도 더 감동하고 돌아가면 그게 제대로 된 식당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얼마전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한다.

집주인이 집을 비우라고 한 것이다. 모 기업의 대형커피숍이 그 집을 찜한 것이다. 한참 성장중이던 국수는 눈물을 머금고 밖으로 나왔다. 현재 영양사로 활동중인 아내와 힘을 합쳐 재기를 위한 공간을 최근 마련해 현재 인테리어작업 중이다. 오는 6월 중 예전 업소 바로 근처에서 오픈한다. (053)625-1365

이춘호기자 eekh@yeongnam.com


■ 구자덕 오너셰프 일문일답

“대구 파스타 문화는 일본스타일과 결합한 퓨전형…전통있는 가게 만들고 싶어”


-어떻게 해서 요리를 하게 됐나.

“대학졸업 후 LG전자에 취업해 다니던 중 형님이 오너셰프로 있는 동성로 리틀이탈리아에서 틈틈이 일을 도와주며 자연스럽게 이태리 음식을 접하게 되면서 흥미를 갖게 됐다. 평소 운동에 취미가 많아서 여러 자격증을 갖고 있다. 스쿠버다이버와 응급구조사 자격증도 있다.

-창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쉽지는 않았지만 준비와 계획하는 시간을 1년 동안 가졌다. 모든 것은 준비와 계획한대로 움직여줬다. 부모와 형의 도움도 있었지만 회사에서 일할 당시 미래를 위해 조금씩 모아뒀던 돈도 도움이 되었다.”

-대구 파스타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대구 스타일은 이태리 정통 파스타보다는 일본스타일의 파스타와 결합된 퓨전 이태리음식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통스타일을 추구함으로써 재료 본연의 맛과 담백함을 살리고자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국수란 이름이 참 도발적이다.

“국수란…, 이탈리아 음식을 생각하면 파스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국수와 같은 의미일 것이라 생각해서 국수라 정하게 되었다. 또 앞산에 칼국수 가게도 많고 해서….”

-종일 10시간 이상 서 있어야 하는데….

“사명감 없으면 몇 개월 못 버틴다. 자주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다. 틈틈이 직원들과 함께 30분정도의 가벼운 걷기를 하고 있다.”

-면발 컨트롤이 정말 힘들 것 같다.

“면에도 고유의 맛이 있다. 삶을 때도 바닷물 농도 의 물로 면을 삶는데 면마다 삶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삶는 시간의 비밀이란 것은 딱히 없다.”

-본토 재료 구입하는 게 어렵지 않은가.

“매일 칠성시장, 매천시장 등에 간다. 그게 기본이다. 대구에도 이젠 이탈리아 음식이 보편화되면서 전문 도매상이 있기 때문에 재료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토마토 소스는 홀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토마토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지역 외국인들한테 반응이 좋은 것 같다.

“남구 캠프워커 미군부대 군인들이나 군무원들이 많이 찾는다. 외국인 전용 대구 홍보안내 책자인 콤파스(compass)를 보고도 찾아온다.”

-식당 운영과 관련해 국수만의 원칙, 서비스 원칙이 있다면.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몰려와도 면을 미리 삶아두지 않는다. 주문과 동시에 면을 삶고 음식을 만든다. 이태리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이태리 생치즈, 데체코면만을 사용한다.”

-최근 느닷없이 문을 닫게 됐는데.

“뜻하지 않게 갑자기 문을 닫게 되어 속상한 마음은 물론 있지만, 지금의 시련이 좀더 큰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거라고 믿는다.”

-돈을 많이 벌면?

“다른 사업 절대 안 한다. 대대로 전해 내려올 수 있는 전통식당을 만들고 싶다. 틈나면 세계각국으로 요리 여행도 떠나보고….”

■ 니들이 피자맛을 알아?

이탈리아에서 피자가 대중화된 것은 1830년대.

나폴리에서 ‘피체리아’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이탈리아 전역으로 번진다. 나폴리 피자는 8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지킨다. 2004년 이탈리아 농무부에서 규정을 만들었다. 나폴리 피자협회인 AVPN(Associazione Verace Pizza Napoletana)이 내건 ‘나폴리 피자의 8가지 규정’의 골자는?


전기·가스 화덕이 아닌 참나무 장작 화덕을 사용. 화덕 온도는 485℃. 예전에는 베수비오산의 뜨거운 화산암을 사용해 3분내 구워내야 하지만, 워낙 고온이다 보니 피자 밑바닥은 탄 것처럼 까맣게 되기 일쑤다. 잘 구운 감자칩 같다.

피자의 크기는 지름 33㎝, 둥근형으로 손 반죽하고, 크러스트의 두께는 2cm, 피자 가운데의 두께는 0.3cm를 넘으면 안 된다. 토핑도 토마토소스와 치즈만 인정한다. 하지만 국내는 거의 가스 화덕, 그러면서 다들 ‘본토식’이라고 외친다. 기자도 처음엔 그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미국식 피자가 너무 폼을 많이 잡고 맛을 복잡하게 왜곡시켰다. 알칼리성 피자를 산성으로 기죽여놓은 것 같다.

19세기 후반, 많은 이탈리아인이 미국행 길에 오른다. 그속에 조반니 롬바르디라는 이탈리아인도 섞여 있었다. 그가 1905년 뉴욕에 최초로 낸 나폴리 피자 집이 큰 인기. 이후 피자는 풍부한 토핑과 큰 사이즈 등 변형을 거듭한다.


이탈리아 피자가 얇고 기름기 없는 도우 위에 치즈·토마토·바질 등만 올린 가벼운 음식이라면, 미국식 피자는 두꺼운 도우 위에 페퍼로니·소시지·고기·치즈를 듬뿍 올린 무거운 음식이다. 화덕에 굽는 이탈리아와 달리 프라이팬이나 스크린(피자를 얹는 판)에 얹은 뒤 오븐에 넣어 굽는다. 타바스코 소스와 치즈가루도 미국식 피자에서 빠질 수 없는 양념이다. 시카고의 명물 딥디시 피자의 경우 두께가 3㎝ 정도.

미국식 피자는 국내로 흘러들어와 ‘코스트코 피자’로 불린다. 지름 44㎝라는 대형 사이즈에 1.3㎝의 두꺼운 두께, 빽빽할 만큼 풍부한 토핑과 짭짤한 맛이 특징이다.


이런 맛에 길들여지면 이탈리아 본토식 피자는 비스킷 같아 못 먹겠다고 반응한다. 이탈리아 본토 스파게티는 화장기 없는 ‘쌩얼’ 같다. 적당히 잘 익은 꼭 고두밥 같은 ‘알덴테’상태의 면발 앞에서 상당수 경상도 스파게티족은 덜 익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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