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산나물 캐는 사람들 사이에는 영양군이 단연 주목을 받고 있다.
한때는 조지훈, 오일도, 이문열 등으로 인해 ‘문학의 고장’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최초의 옛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지은 정부인 안동장씨(장계향) 덕분에 ‘고조리 1번지’로도 각광을 받는다. 정부인이 평생을 보낸 두들마을에는 이문열의 광산문학관도 있고 옛 반가음식의 원형을 맛볼 수 있게 음식디미방전수관까지 마련해 놓고 음식을 예약 판매까지 하고 있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산채 1번지’로 발돋움을 하고 있다. 지난해는 국내에서 맨 처음으로 서울에서 영양 산채박람회를 열기도 했다.
영양군 면적(815.1㎢)은 서울의 1.3배. 하지만 인구는 1만8천500여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육지 속의 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영양의 대표적 산채마을로 불리는 대티골은 영양에서도 군청 소재지와 28㎞가량 떨어진 일월산 기슭의 오지에 있다. 일월면 용화2리 대티마을 권용인씨는 이제 ‘일월산의 산채 지킴이’로 각인되고 있다. 그의 이력은 특이하다. 1998년 발해 건국 1300년을 기념하려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까지 뗏목으로 항해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동료 4명을 잃어 방황했다. 2004년 부인과 함께 이곳에 정착한 뒤 산마늘과 두메부추 등 토종 작물을 재배하며 농촌교육농장을 운영했다. 뜻을 모은 주민들은 마을 앞 도랑을 청소하고 숲길을 정비했다. 2009년 생명의 숲이 주최한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숲길 장려상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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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면 영양에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는 김춘옥(오른쪽)·종필 자매가 갓 캐낸 검마산 산나물을 거머쥐고 모란꽃보다 더 풋풋한 미소를 날리고 있다. |
해발 900m 이상서
귀신처럼 선별채취
하루 15∼20㎏ 뜯어
능선의 산나물은
빛깔부터 달라
하지만,
뭐가 뭔지 헤매자
“음식기자라면서
이것도 모르느냐,
이건 참나물이고
저건 어수리…”
점심시간이 되자
금방 딴 나물을
씻지도 않고 꿀꺽
야생의 향취 그윽
“집 텃밭서 키운 건
향이 증발하더라고…
나물 무칠 때는
마늘 절대 넣지마”
◆ 수비초를 키운 일월산
해와 달이 가장 먼저 뜬다고 하는 영양 일월산(해발 1천219m).
이 산만큼 여러 이름을 지닌 산도 드물다. 일위산(日圍山), 일우산(日雨山), 쌍요악(雙曜岳)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산이 워낙 덩치가 크고 산 안에서 벌어지는 자연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일월산 하단부에서는 취나물·두릅·참도살피·우산나물 등이, 상단부에는 곰취·병풍대·산당귀·어수리 등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4년 전부터는 다래순은 없어서 못 팔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4월말부터 영양군 전체에서 두릅이 나온다. 전국에서도 유명한 일월면 용화리 폐광산 부지에는 금낭화와 구절초 등 야생화 공원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멸종 위기 식물인 할미꽃과 하늘말나리 등도 특별히 보호되고 있다. 산촌생활박물관은 물론 전국에서 가장 맑은 공기에서만 서식하는 반딧불이를 갖고 있는 생태공원도 울진 왕피천과 인접한 수하계곡에 마련됐고, 잇따라 다양한 산채체험마을들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고 있다. 특히 영양 일월산은 국가산채클러스터의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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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산채축제 관계자로부터 주문받은 산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다람쥐처럼 능선을 뛰어다니는 영양 산나물 자매들. |
◆ 봄바람난 나물 캐는 세 자매
지난 주 금요일 기자는 하루 종일을 일월산 옆에 있는 자연휴양림 검마산한테 헌납했다.
영양의 산나물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고산 나물류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저지대 고장에선 4월이 봄이지만 영양군은 고지대라서 다른 데가 여름 쪽으로 기울어야 비로소 봄의 절정에 달한다.
영양군에 매년 5월만 되면 산나물 때문에 바람이 나는 세자매가 있다고 해서 수소문 해 그들과 함께 산나물 채취 동행취재를 한 것이다. 김영화(67)·김춘옥(64)·김종필(61). 첫째와 둘째는 대구로 시집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왔다. 둘째와 셋째 남편은 산채 캐는 일을 일사불란하게 도와준다. 자매는 완벽한 다이어트체형을 갖고 있었고, 입담은 만담가를 뺨칠 정도였다. 그날은 영양 산채축제 첫날이라서 자매는 무척 바쁜 가운데 산행을 했다. 미리 주문받은 나물 130㎏을 빨리 확보해서 행사장 부스로 옮기는 일이 시급했다. 이들은 많이 뜯을 경우 하루에 15~20㎏을 확보한다.
자매는 고향 연고권 등이 인정되어 비교적 쉽게 산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은 제약이 많다. 일단 국유림 등에는 사전허가를 못받으면 입산을 할 수 없다. 무단 입산을 하면 벌금을 물게 된다. 이날 일단 산림청 관계자에게 입산 허가를 받고 해발 900여m까지 차로 이동했다. 이동중에 군데군데 자작나무 밀식지가 보여 참 운치가 남달랐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매와 같은 문중이면서 약초에 한 경지를 개척한 김제철씨가 차를 몰았다. 그는 항암약초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이날 곰취와 함께 8부 능선 등지에서 많이 발견되는 단풍취를 집중 공략할 계획이란다.
임도 옆에 차를 세우고 일을 시작했다.
정상부로 이어지는 능선자락의 산나물은 여느 도시 인근 산자락과는 빛깔부터 달랐다. 비옥해 보이는 검은 유기질 토양이었다. 셋째가 기자에게 산나물 담을 포대를 내민다. 우편행낭처럼 비스듬이 걸어보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는 온통 녹색의 무명초 투성이일뿐 식용 산나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평소 눈여겨 봐둔 식물보감 지식은 현장에 오니 모두 헛것이 되고말았다. 모두 같은 산채로만 보였다. 하지만 자매는 새가 먹이를 낚아채듯 산나물을 선별채취하며 날렵하게 이동했다. 나는 자매가 찍어준 먹이만 삼킬 따름이었다.
자매가 기자에게 농담을 한다. “음식전문기자라면서 이렇게 산나물에 대해 모르면 어떻게 해. 내가 말하면 따라해봐요. 이건 참나물, 이건 떡취, 저건 어수리, 요건 강원도 정선에서 유명한 곤달리, 이건 우산처럼 생겼는데 일명 고깔나물이고, 밥취, 야 이건 산더덕….”
부럽기만 했다. 자매는 ‘나물의 달인’이었다. 자매의 몸은 바람처럼 가벼웠다. 이들의 포대는 1시간도 안돼 임신 7개월쯤으로 보이는데 기자의 포대는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보다 못한 자매가 자기걸 수북하게 집어넣어준다. 일단 이들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참나물, 검마산의 명물 참도살피, 떡취와 고깔나물만이라도 식별하려고 집중을 했다. 1시간쯤 지나자 눈에 익은 나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거 참도살피 맞죠?”
“어 눈썰미가 좋네.” 자매가 뜯으라고 지시한 걸 복창하면서 채취했다.
◆ 뜯을 때는 나물의 물성대로
무턱대고 기분 내키는 대로 뜯으면 안된다.
나물의 물성에 맞게 순리대로 뜯어야만 했다. 가령 참나물과 홈취 같은 건 밑둥, 밥취는 줄기 중간, 고깔나물과 떡취 같은 건 잎만, 곰취 같은 건 줄기를 구부려보면서 연한 부위와 뻣뻣한 부위 경계를 부러트리면 된다. 자매는 얼추 100여종의 산나물을 식별할 줄 안다.
“산나물은 관목이 너무 우거져 빛이 잘 들어오지 않으면 별로 없다. 예전에는 나무를 너무 많이 베는 바람에 산자락에 나물류가 지천으로 늘렸지만 이젠 고지대로 가야 나물이 풍부하다.”
가장 구분하기 힘든 건 참나물과 취나물류. 특히 수십종이나 되는 취나물류를 잘 구별하려면 이파리수, 이파리 가장자리 모양과 두께, 색의 밝기 등을 동시에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본능적으로 구분하기 위해선 적어도 10년 세월이 흘러야만 된다고 했다.
종필씨가 독초와 약초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독초는 줄기를 끊으면 거기서 검거나 아주 뻑뻑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그 향기가 아주 역하다. 하지만 약초는 이파리가 억세지 않고 광택이 난다. 가령 참나물과 비슷한 독초인 바위취는 냄새가 고약하고 억세다. 참나물은 나물 중의 나물인 것 같다. 머위와 비슷해 보이는 동의나물도 실은 독초인데 잘 구분하지 못해 먹고 혼이 나는 이들이 많다.”
점심 때가 됐다. 자매에겐 지천으로 널린 산나물이 즉석 반찬이다. 별도로 채소를 가져갈 필요가 없다. 두 개 찬합에 가득 들어찬 밥을 보자 시장기가 밀려왔다. 자매가 어수리와 참나물, 참도살피, 곰취를 내면서 야생초 고추장장아찌를 밥에 얹어 싸먹어보라고 했다. 좀 꺼림칙했다. 계곡물에 씻어야 될 것 같았는데 자매는 꿀떡처럼 먹었다. 나는 떠밀리듯 먹었다. 순간 생애 가장 진하고 야생적 향취를 가진 산나물을 삼킬 수 있었다.
자매는 15여종의 산나물 씨앗을 받아 집 텃밭에서 키운다. 그런데 모양은 같아도 향기는 완전 증발해버렸다고 한다. 야생의 힘이란 바로 ‘현장의 힘’이다. 자매는 산나물의 미래에 대해 장담하기 힘들다고 했다. ‘산불 때문에 임도가 필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예전에 그토록 많던 희귀 산나물이 이젠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안타까워한다.
자매는 4월말~6월 중순 가장 바쁘다. 멀리는 강원도 태백까지 나물 캐러 간다.
이날 캐온 나물로 각종 음식을 해먹었다. 전은 역시 두릅, 장아찌는 곰취와 병풍대, 무쳐먹는 건 참도살피와 참나물, 그리고 모시딱지, 말려서 해를 넘겨 먹는 묵나물류로는 취나물류와 고깔나물이 적당하다고 했다. 수정식당은 나물철 ‘간이 나물시장’으로 변한다. 원하는 이가 많아 타지에 팔 게 없다. 집에서 잘라온 음나무, 오가피 가지를 넣어 토종닭백숙을 요리했다. 자매가 이구동성으로 나물 무칠 때 절대 마늘을 넣지마라고 당부했다. 강력한 향기의 마늘이 나물향을 죽이기 때문이란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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