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日에 대구육개장 파는 ‘대구탕집’ 있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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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6-15   |  발행일 2012-06-15 제42면   |  수정 2012-06-27
(テクタン‘태쿠탄’· 육개장의 옛명칭 大邱湯을 가타카나로 표기한 일본어)
20120615
대구상고 1학년 때 출세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현재 고베시 나가다에 있는 대구탕 전문점 ‘마루야카’를 운영하는 이종수씨가 자신의 대구탕에 비해 조금 맵고 걸쭉한 따로국밥식 대구육개장을 감회어린 표정으로 시식하고 있다. 그는 대구탕 주재료로 소꼬리를 사용한다.

‘대구육개장을 따로국밥과 합쳐 ‘대구탕’으로 통칭하면 어떨까.’

그런 의견을 얼마전 지역 음식 관계자들에게 제시한 적이 있다. 반응은 별로였다. 대구시 공무원들도 대구탕은 한자로 적어놓아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에 홍보용 용어로 적절치 않은 것으로 봤다.

이 지면을 통해 여러번 언급했지만, 대구탕은 의미상 3가지 버전이 있다.

따로국밥도 실은 대구육개장의 범주에 들 수 있는데 그럼 대구탕은 뭔가.

대구탕은 육개장의 옛날 명칭이다. 육개장은 일명 쇠고기국인데 소를 함부로 도축할 수 없던 예전에는 소 대신 개를 잡아먹었다. 일명 ‘구장(狗醬·개장)’이라 했는데 별칭으로 개를 대신 한 육개장이란 의미로 ‘대구탕(代狗湯)’이라고도 불렀다. 물론 생선 대구(大口)로 만든 대구탕도 있고,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대구가 전국 최고의 육개장 도시다 보니 ‘대구에서 팔리는 육개장’을 축약해서 ‘대구탕(大邱湯)’이라 했다. 따로국밥이란 말이 생긴 건 6·25전쟁 때, 그 이전 대구육개장은 대구탕으로 더 많이 불렸다. 이런 사실은 소설가 김동리, 한국 최고의 식품사학자 중 한 명이었던 대구 출신의 이성우 박사가 자신의 저서 ‘한국요리문화사’(교문사·1985년)에 잘 언급해 놓았다.

◆ 40년째 영업 ‘고베의 명물’

아무튼 기자는 잃어버린 대구탕의 흔적이 정말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대구시 북구 읍내동 동네잔치메기탕 박경식 사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일본 고베에서 전통 대구탕 전문점을 경영하는 일본교포가 대구에 온다고 했다. 물론 생선 대구탕이 아니고 쇠고기국 버전의 대구탕이니 호기심이 더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이종수씨(75)를 따로국밥 원조 ‘국일따로식당’에서 어렵게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고향에 계시는 노모 생신에 입국했다.

이씨는 경북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출신으로 대구상고 1학년 때 더 많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큰아버지가 있는 일본 도쿄로 건너갔다. 하지만 세상은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잘못된 인연 때문에 적잖은 돈도 잃어버렸다. 그렇게 해서 엘리트의 꿈을 버리고 조리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음식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도쿄의 ‘명성원’에 들어가서 거기서 ‘일본식 육개장’ 요리술을 틈틈이 배우게 된다. 매운 한국식 육개장과 달달한 일본식 육개장을 절충해나갔다. 아들이 없는 명성원 주인은 성실한 이씨를 양아들로 잡으려 했다. 그는 거기서 배운 음식 솜씨로 독립을 했다. 40여년전 고베시 나가다에 대구탕집 ‘마루야카 쥬엔(苑)’을 오픈한다. 물론 교포를 대상으로 시작한 것인데 이제는 꽤나 유명해졌다. 홋가이도, 규슈에서도 택배 주문이 올 정도로 고베의 명물이 됐다. 하지만 10년전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의 가게는 쑥대밭이 된다. 한국말을 알아서 KBS와 인터뷰도 했다.


교포 이종수씨
40년전 문 연 이후
日전역 배송 등
음식명소로 키워


양지머리 대신
소꼬리 이용해 눈길
부재료도 무 빼고
콩나물·미소된장
고사리 등 사용


얼큰한 맛보다는
시원하고 감치는 맛…
대구보다 더 뻑뻑
대덕식당 선짓국에
가까운 스타일


◆ 감미로운 일본식으로 변주하다

이씨에게 대구탕의 유래에 대해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 듣는 얘기라면서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고향에는 아직 94세 된 노모가 살고 있다. 어릴 적 그 노모가 끓여준 경상도 육개장 맛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마루야카를 개업할 때 고향을 생각한다는 의미와 교포에게 한국식 쇠고기국의 추억을 선물한다는 의미를 담아 대구탕(大邱湯)이란 메뉴를 내건 것이다. 애향심이 남달랐던 것 같다. 마루야카 메뉴판에는 가타카나로 ‘テクタン’를 병기해놓았다.

이씨의 대구탕에는 양지머리와 같은 정육이 들어가지 않고, 소꼬리를 식재료로 사용하는 게 흥미로웠다. 채소류의 경우 대구에서는 무, 대파, 마늘이 축을 이루는데, 그는 콩나물, 젠마이(고사리), 이밖에 파와 마늘, 고춧가루, 심지어 미소된장까지 풀어넣었다. 그런데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무는 없었다. 고춧가루도 우리처럼 매콤한 마른 홍고추가 아니고 일본 고춧가루를 사용했다.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조리용 술인 미림까지 넣었다. 미소된장, 고춧가루, 간장, 맛술, 설탕 등으로 양념을 만들었다. 얼핏 보기에 토장국에 꼬리곰탕을 섞은 스타일로 보였다. 모르긴 해도 일본인들의 입맛까지 겨냥해 매콤한 것보다는 시원하고 감치는 국으로 변주를 한 것같다. 그는 청양고추 맛이 스며들면 상당수 일본인들이 먹지 못한다고 했다.

곁반찬은 김치, 오징어젓갈, 나물류로는 콩나물, 시금치, 무생채 등을 올려놓았다. 김치는 일본식 기무치가 아니라, 한국식 김치에 가깝도록 담갔다. 새우젓과 오징어젓갈을 반반씩 섞고 거기에 생강, 마늘, 쪽파, 깨, 양파를 넣고 믹서에 넣고 갈아 김치 발효용 소스로 집어넣는다.

마루야카 쥬엔(苑) 대구탕은 우리의 육개장보다 더 뻑뻑하다. 대구의 대덕식당 선지해장국 스타일에 가까웠다. 감미로운 쇠고기국이었다. 통상 일본에서는 젓가락으로 밥을 먹고, 국은 차처럼 들고 마시는데 그는 밥은 젓가락, 국은 숟가락으로 먹도록 유도했다. 초창기에는 일본인과 한국인 비율이 7 대 3이었는데 이젠 맛이 인정돼 일본인이 더 많이 온다. 고베시에만 이런 스타일의 대구탕 집이 몇 개 더 있단다. 한 그릇 가격은 낮에는 900엔, 저녁엔 600엔. 나름 맛을 유지하는 바람에 고베관광지도는 물론 전국음식명소에도 소개됐다. 타지에서도 찾는 바람에 냉동시켜 냉동탑차로 하루만에 일본 전역으로 배송도 하고 있다.

이씨가 소꼬리를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 대답했다.

“소꼬리 하나를 시장에서 사올 때 500엔 정도 준다. 약 20인분 잘라 사용할 수 있는데 뿌연 육즙을 만드는 사골과 달리 아주 맑고 담백한 맛을 내기 때문에 정육 대신 소꼬리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장남 이규석씨(40)가 가업을 잇는 수업을 받고 있단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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