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이영재 셰프 인터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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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7-27   |  발행일 2012-07-27 제42면   |  수정 2012-07-27

“사람의 욕심에 의한
인위적 사향커피 생산 반대

상당수 고객, 방송에 현혹
맛 등 본질 알려하기보다
그 커피점의 분위기 마셔”

-요즘 몇 달만 배우고도 전문가 행세를 합니다. 커피전문가 인플레이션시대 같아요.

“모든 걸 아는 것 같은데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지도 몰라요. 커피가 너무 세분화되어버렸습니다. 커핑이라고 해서 생두를 골라내는 전문가, 볶는 로스팅 전문가, 커피를 잘 갈아서 액을 추출해내는 드리퍼. 그런데 이걸 토털로 잘 하는 분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커핑전문가는 좋은 생두를 가져야 맛있다 하고, 로스터는 잘 볶아야 된다고 주장하고, 드리퍼는 잘 내려야 한다고 주장할 겁니다. 누구 말이 맞죠?”

-커피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선 최소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된다고 믿습니까.

“물과 원두가 만나는 타이밍의 절묘함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선을 긋기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하며, 10년 넘은 전문가도 한잔의 커피를 내릴 때는 진지함과 따뜻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스프레소는 거의 무조건 쓰다는 것 이상의 담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에스프레소에는 좋은 거품(Crema·크레마)이 감지되어야 합니다. 시종일관 쓰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죠.”

- 최근 고가의 ‘사향고양이 똥 커피’로 알려진 루왁이 마니아에게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희소성에 의해 비싸지는 부분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한 것이니 고가의 커피에 대해서 어떤 답변도 못드리겠습니다. 다만 사람의 욕심이 부르는 인위적인 사향커피의 생산은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 커피숍 개점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충고와 고언을 주시죠.

“기본을 모르면 반드시 흔들리죠. 초심·기본·원칙을 지키라는 겁니다. 누가 시킨다고 덜컥 오픈하지마세요. 좋은 생두와 좋은 원두를 볼 줄 아는 안목, 커피맛에 대한 미각의 훈련, 이것은 많이 마셔보고 많이 다녀봐야 합니다. 모든 걸 걸면 길이 보입니다.”

-다들 로스팅룸을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있는데.

“요즘 로스팅룸이 마치 프로의 전유물인 것처럼 확대재생산 되고 있는데 저는 ‘글쎄요’란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손님을 확보하면 나도 로스팅룸을 가진 것처럼 과대포장하고 싶은 욕구도 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로스팅룸 운운하지 않는 것은 내가 커피를 평생의 업으로 갖고 싶은 맘 때문입니다. 커피 본질의 측면에서 볼 때 아직 커피의 맛이 본 궤도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로스팅룸이 자칫 치부를 감춰버리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맛을 알면서부터 겁이 나죠. 세상에 가장 맛있는 커피가 내가 볶아서 내가 내리는 커피라고들 하는데, 숍을 하는 이가 가장 경계해야 될 대목이라고 봅니다. 로스팅룸이 자칫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저는 ‘바로 이거다’란 절대적 깨달음이 오기 전까지는 로스팅룸을 갖지 않을 겁니다. 임시적으로 로스팅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제 실험품이지 제품으로 내놓을 거란 생각도 아직 하지 않고 있어요. ”

-요즘 고객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상당수 고객은 커피의 본질을 믿고 탐구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취향, 자기의 트렌디한 커피 문화를 즐기러 이곳저곳을 방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커피 맛이 좋다고 하지만 실은 그집 커피 분위기를 마시고 있는지도 모르죠. 모 커피 브랜드의 경우 국내 가장 파워풀한 브랜드죠. 그런데 그게 어떻게 보면 방송과 언론 플레이 탓인 것도 같습니다. 다들 커피의 본질을 알려고 특정 업소에 가는 게 아니라, 다들 그 집이라고 언론 등에서 대서특필하니 아 거기가 커피를 제대로 하는 곳이겠거니 하면서 도취적으로 선택하는 겁니다. 그럼 어느 날 커피문화가 죽을 겁니다. 누가 요즘은 차문화가 대세라고 하면 모두 찻집을 차리겠죠. 대중적 취향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봐요.”

(그가 ‘친하면 더 조심해라. 우리나라 사람은 친해지면 예의와 교양이 무너진다. 친한 단골에게 더 예의를 찾아라’는 말을 들려줬다. 그리고 전자동 머신에서 벗어나 수제로 넘어와 커피 추출액과 눈높이로 만나는 것. 그때부터 바리스타의 1장1막이 시작된다고 그는 믿는다. 그는 친절이 외식업의 마지막 필살기라고 본다. 프로적 우직함이 아마추어의 오도방정적인 싹싹함보다 한 수 위란 생각이다. 아직 배우는 바리스타를 굳이 인터뷰한 건 그가 커피를 배신하지 않을 거란 직감 때문이다. 그가 한눈 팔면 제보를 꼭 해달라.)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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