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13) 대구 수성·대봉동 ‘셰프N’ 의 남정율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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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1-09   |  발행일 2012-11-09 제42면   |  수정 2012-11-09
“내 음식철학은 푸지미즘…외형적 미학 치중하다보면 식감 떨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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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과 눈높이로 만나고,아무리 힘들어도 식재료를 직접 구입하러 다니고, 요리의 진미를 위해 절대 식재료를 미리 장만해 두지 않고, 주문받는 즉시 요리에 돌입하는 남 셰프. 그는 항상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창의적 메뉴를 찾기 위해 틈만 나면 사색에 잠긴다.

그리스 근해에서 가장 파랗고 낙조가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운 산토리니섬.

음식의 식감 탓인지는 몰라도 당국자들은 건축법상 파랑과 흰색만 사용하도록 규제한다. 심지어 명도와 채도까지 지정해준다. 거기 오너셰프는 잘 익은 식빵 같은 풍성한 맘씨뿐만 아니라 누비장의 바느질처럼 정교한 조리술을 자랑한다. 나이가 들수록 기품이 생기고 손님들도 존경을 한다. 조리사를 존경하면 결국 존경받는 음식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직 한국은 ‘조리사=음식’이란 등식이 잘 성립되지 않는 것 같다.

올해 41세의 남정율 오너셰프.

메인 요리의 경우 스테이크·생선류를 1천여 가지로 변형시킬 수 있단다. 하지만 대구는 그의 실력 일부만 보고 있다. 더 부려먹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리 배운 지 20년 만에 자기 브랜드를 걸었다. ‘셰프(Chef) N’. N은 그의 영문자 이니셜의 첫글자. 음식 만들 때 이름을 걸고 만들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다. 지역 양식당가에서 아직 주방을 지키는 셰프 중에서는 고참급이다.

1992년 유니온관광호텔 인턴을 시작으로 팔공파크호텔, 그랜드관광호텔, 에어포트관광호텔 등 호텔에서 7년, 마로니에, 블루문, 산토리니, 그린비 등 일반 전문 식당에서 13년을 근무했다. 현재 수성동과 대봉동에 자기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꾸려나가고 있다.

프랑스 ECA(에스코피에 요리 연구회·1990년 오픈) 연구원이자 DE(세계 에스코피에 제자의 모임) 회원이다. 6년전에는 경희대 호텔조리학과 최수근 교수를 축으로 ECA 멤버로 활동했다. 어느 날 그 회원 중 한명이 중국 베이징의 한 호텔에 근무하게 됐다. 그때 프랑스 에스코피에 제자 모임인 DE 실무자가 베이징에서 요리대회를 개최했는데 회원이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 관계자가 국내 ECA를 알았고, 프랑스 담당자가 확인차 한국으로 와서 활동과 성과를 보고 깜짝 놀란다. 검토한 끝에 그와 정욱영 경주대 호텔외식사업부 교수가 올해 DE 특별회원 인정서를 발급받게 된다. 현재 전국에서 모두 20명이 그 자격증을 받았다.

이달초 대구법원 맞은편에 에스코피에요리학원(원장 김보라)이 개설됐다. 그도 참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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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선 드물게 자신의 영문자 이니셜 첫자를 따서 로고를 만든 남정율 셰프. 이름을 걸고 음식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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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중식버전의 스파게티인 볶음파스타. 주문자 생산방식으로 지역의 국수공장이 만든 찹쌀가루 들어간 굵은 가락국수를 사용하는 게 특징.


 “요리 이전에 식재료다”
 스테이크·생선류 요리
 1천가지로 변형 자신

 
삼겹살·된장·묵은지와
 스파게티의 조화 시도
 대구식 파스타 구축중


 자신만의 간장소스 위해
 5년간 비율 맞추는 노력


 단맛은 주로 포도 이용
 드레싱 제조 6일 공들여
 샐러드엔 소 염통 사용도


◆ 학원 대신 호텔로 직행하다

그는 요리학원 대신 곧바로 호텔에서 요리를 배운다. 배짱 좋게 전화를 걸어 면접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김충교(전 신라호텔 요리사) 사단에서 요리를 배울 수 있었다. 이후 경희대 최수근 교수, 서원대 외식사업부 박경곤 교수한테도 정신적인 가르침을 받는다. 그는 아직 사부가 만든 레시피북을 갖고 있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칼에 대해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늘 그분은 ‘칼을 네 몸처럼 닦고 갈아라’고 했고 ‘모르는 걸 배울 생각을 하지 그냥 얻어가려고 하지 마라’고 충고했습니다.”

3년간 밑바닥 일을 했다. 당시만 해도 식재료 백화점도 거의 없어 필요한 건 직접 만들어 사용해야만 했다. 2002년 갑자기 독립하고 싶어 일반 레스토랑인 씨월드에 들어간다. 당시 대다수 샐러드 방식은 획일적이었다. 그는 채소 하나하나의 질감을 살렸다. 드레싱이 채소의 기운을 누르지 않도록 가볍고 심플한 스타일로 나갔다. ‘샐러드가 살아 있네’란 반응을 얻는다.

하지만 지금 그는 허덕인다. 임차료 내고, 직원 월급 챙기고 가족 생계비 충당하고, 재투자 비용까지 마련하려고 하니 피 말리는 자기와의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 식재료만 보고도 메뉴 떠올리다

“요리 이전에 식재료입니다.”

제철 해산물이 궁금하면 새벽같이 차를 몰고 포항 죽도시장 경매 코너로 간다.

“아마추어는 경매 과정을 봐도 저걸 사용해서 무슨 요리를 하면 좋을지 전혀 감이 없습니다. 10년 이상 경력이 있어야 식재료를 보고 메뉴를 떠올릴 수 있죠. 방랑식객 산당 임지호씨는 길에 핀 잡초를 보고 순식간에 새로운 음식을 조리하잖아요. 저는 판박이 메뉴를 싫어해요. 계속 새로워야죠.”

얼마전 호루래기(오징어 새끼) 200마리를 3만5천원에 구입했다. 고등어, 자연산 돔 등 2~3일 내 소진할 양만 골라서 사온다. 그걸 갖고 호루래기 파스타를 만들었다. 메인 요리로 당일 소진이 안되면 다음날 전채요리로 돌린다. 북구 매천시장도 자주 노크한다. 해풍 맞은 방풍나물과 세발나물을 샐러드에 투입한다.

◆ 보기 좋은 게 먹기도 좋다고?

그는 이탈리아에 가보지 않고도 그만의 파스타 라인을 갖고 있다. 일명 한국형 파스타. 디테일하게 얘기를 하자면 ‘대구스타일 파스타’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삼겹살, 된장, 묵은지 옆에 스파게티를 붙여놓기도 한다.

그의 요리철학은 ‘푸지미즘’이다. 음식이 너무 미학적인데 치중하면 식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먹음직스러운 것과 시각적인 것을 구분하려고 한다.

그가 기자를 위해 특별하게 만든 ‘볶음파스타(일명 매콤한 해산물 파스타)’를 내놓았다. 꼭 대구십미 중 하나인 대구백화점 맞은편 중앙반점의 야키우동을 연상시켰다. 화학조미료 없이 며칠간 빚은 천연 소스가 면발의 식감을 팍 올려주었다. 숙주나물과 죽순도 인상적이고 신선한 해산물이 푸짐하다. 표고버섯 들어간 샐러드와 커피까지 포함해서 1만5천원이니 정말 착한 가격이 아닐 수 없다.

소스 만드는 과정을 소상히 알려준다. 간장에 버섯, 다시마, 해초류, 국내산 고추, 마늘 ,양파 등을 넣고 4시간 정도 90℃에서 달인다. 간장은 국내산 진간장과 국간장 비율을 8대 2로 섞는다.

그는 자기만의 간장 소스 맛을 내기 위해 마치 사진작가가 조리개와 셔터를 한 클릭 옮겨가며 감도를 맞추듯 비율을 세밀히 조절해가면서 5년여만에 완성시킨다. 물론 시중의 간장만 그대로 넣어선 아무리 해도 이 맛이 나지 않는다.

스파게티 대신 식감을 푸짐하게 하기 위해 특별한 면을 주문했다. 지역의 면사랑이란 업체를 통해 공급받는다.

“일반 밀가루에 찹쌀가루와 콩가루 비율을 더 높게 잡은 게 특징인데, 기존의 굵은 면과 달리 식감이 더 졸깃합니다. 밀가루만 사용하면 빨리 퍼지고 소스를 빨리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음식이 짜지죠.”

단맛도 가급적 설탕을 배제해서 만든다. 주로 포도를 이용한다. 포도를 믹서에 간 뒤 걸러서 그 즙을 중불에서 끓이다가 약불로 1시간 정도 졸이면 걸쭉한 발사믹식초 톤이 나온다. 이걸 드레싱 만들 때 섞어서 사용한다.

드레싱도 올리브오일·식초·소금에다가 레드와인, 양파, 마늘, 바질 등 12가지를 넣는다. 2~3일 실온에서 발효 후 냉장고에서 70시간 이상 숙성시킨다.

현재 저가 레스토랑 상당수는 식초, 설탕, 오일 등만으로 만든 가벼운 오일드레싱만 갖고 샐러드를 만든다. 심지어 시중에서 파는 드레싱을 사용하기도 한다. 직접 만들면 재료비를 50% 아낄 수 있다. 샐러드에 소 염통, 훈제참치, 버섯류도 과감히 사용한다. 방풍나물을 올리브오일에 살짝 볶아 소금간 해서 스테이크에 싸 먹게 한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셰프 N의 쓴소리

음식단체는 맛을 놓고 비판문화를 형성시켜 가야 하는데 단체가 맛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럼 음식문화가 획일적이고 경직되죠. 좋은 셰프가 다 질식하게 됩니다.

제철 식재료를 한 손에 못 꿰면 절대 좋은 오너셰프가 될 수 없습니다. 평생 식재료 공부해야 합니다.

젊은 셰프들이 파스타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1~2년 배워 레스토랑을 열죠. 하지만 이들은 완벽한 염도조절에 실패합니다. 그래서 감으로 요리를 해요. 아무리 바빠도 1인분씩 요리를 해야 되는데, 대다수가 큰 프라이팬에 2~3인분씩 벽돌 찍어내듯 요리합니다. 파스타용 바지락을 삶을 때 염도가 0.4%에 가닿습니다. 염도계 사용하지 않고 이를 감지해야 됩니다.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염도는 0.35 정도입니다. 절대 편하기 위해 미리 식재료를 준비해 두면 안됩니다.

싸고 맛있고 품질 좋은 음식은 이 지구상에 없습니다. 싼 걸 먹으려면 집에서 라면 끓여드세요.

국내산 제철 재료만 갖고 파스타 만들면 평균 2만5천원 이상 받아야 합니다. 부카니에라(해산물 토마토 파스타)의 경우 원가만 9천300원. 해산물(새우·꽃게·갑오징어·관자·조개)은 3천500원, 토마토 소스 1천800원, 전채·스프·샐러드 4천원.

더 싼 것? 그럼 식재료가 생물에서 냉동, 그리고 해묵은 수입산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죠. 더 싼 것보다 제대로 된 걸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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