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14)대구 수성구 범어동 ‘국수사’ 의 김유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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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1-30   |  발행일 2012-11-30 제42면   |  수정 2012-11-30
맛국물 한 말 만드는데 50만원대 고급 사케 두 병 사용…정통초밥 추구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14)대구 수성구 범어동 ‘국수사’ 의 김유호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정통일식초밥집 ‘국수사’의 김유호 오너셰프. 그가 낸 초밥은 10시간 정도 숙성을 거친다.

점심이 끝난 직후 불쑥 식당을 방문하면 제대로 맞아들이지 못한다. 셰프는 이미 저녁 준비도 잊고 사생활에서나 엿볼 수 있을 법한, 조금은 빈둥거리면서도 해이한 기색을 노출한다. 심지어 룸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도대체 저 사람이 과연 조리사가 맞을까란 의구심이 들 정도로 품행이 저급하다. TV 시청에 정신이 빠져있는 매니저도 있다. 점심과 저녁 사이, 식당다운 기운이 실종됐다면 그건 분명 오너셰프가 돈만 벌기 위해 식당을 차린 경우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본 가이세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정통 료칸(旅館)은 식사 때나 평상시나 구분없이 그 분위기가 언제나 식당스럽다. 분명 대를 이어오는 전통과 역사가 집안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이고, 주인도 음식을 돈 이상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대구는 어떨까?



중1때 입문 전국 일식당서 공부
가이세키 요리·사케 대구에 첫선

촛물·밥 배합 후 10시간가량 숙성
초밥용 말이계란도 직접 제조…
일본 본토 맛에 버금간다 평 들어

복어 지느러미 태운 히레사케는
졸복이 아니라 양식 참복 사용


◆까탈스러운 오너셰프

이미 까탈스러운 오너셰프로 소문이 나있다. 수성구 범어동 대구KBS방송총국 근처에 있는 초밥집 국수사(菊壽司). 대구에서 일본풍이 가득한 초밥집을 차린 주인공, 김유호 사장이다.

김천 출신으로 1971년 중1 때 요리에 입문한다. 서울 무교동의 ‘삼원’에서 일식집 직제를 배운다. 곧 여의도 ‘어치’에서 3년여 있으면서 복사시미의 정체를 안다.

“당시에는 냉동복어가 없었습니다. 냉장고가 없어 함석 속에 톱밥을 넣어 간이 냉장고를 만들어 얼음 붓고 그 위에 생선을 올려뒀습니다. 70년대초 국내에선 붉은 생선을 먹을 줄 아는 이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후 자갈치 시장 맞은편 ‘부산초밥’에서 스키다시 담아주는 일을 했다. 이때 한성 게맛살로 게맛살초밥을 냈다. 누드김밥(캘리포니아롤)을 선보여 다른 조리사를 주눅들게 했다. 그의 누드김밥이 부산 영화관 막간 무대에 홍보됐다.

84년 경주 도쿄호텔에서 일본 조식과 튀김, 전골, 송이요리 등을 배운다. 주말에는 뷔페 담당. 일식당 대표로 김밥을 수십종 만들어내니 다들 뒤집어졌다. 그때부터 승승장구. 88올림픽 때 대표 요리사로 차출돼 한 달간 경주관광호텔에서 교육 받은 뒤 경주 도쿄호텔에 배치된다. VIP만찬을 만들면서 구절판과 신선로도 배웠다.

서울 조선호텔에 있다가 리베라호텔 오픈 멤버로 들어간다. 거기서 전문 스시를 배웠는데 당시 일본 깻잎으로 불리는 시소(차조잎·일본 매실장아찌인 우메보시 붉게 물들이는 재료)를 보고 놀란다. 시소가 고명으로 올려지는 걸 보고 느낀 바가 많다. 시소잎은 비린내를 제거해주고 시소싹은 사시미와 곁들여 먹을 수 있게 했다. 꽃도 피면 그 열매를 튀김도 하고 사시미와 먹을 수도 있었다.

그후 대구 동대구호텔 일식당 책임자로 왔지만 하루 만에 사표를 낸다.

“지배인이 와이셔츠 바람으로 주방에서 담배를 피우더라. 특급호텔이라고 하는데 너무 충격이었다.”

회장의 도움으로 오사카 로열호텔에서 1개월 교육을 받았다. 또 충격이었다.

“거긴 한국과 달리 공짜 반찬이 전혀 없더라고요. 단무지도 없고 초생강과 장국만 나왔어요. 우리와 달리 말린 청어알(가즈노코), 연어알(이쿠라), 갑오징어(이카) 등으로 초밥을 만들더군요. 자세부터 다르데요. 오전 2시에 밥을 하고, 오전 11시 오픈해서 오후 2시까지만 하고 문을 닫더군요. 절정의 초밥을 내놓기 위해서죠. 그때가 지나면 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우동 맛국물을 낼 때 쇠를 달궈 국물 안에 넣어 비린내를 제거하더군요.”

간장 만드는 법도 한국과 달랐다. 상당수 공장 간장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거기서는 간장을 사다가 일단 다시마(곤부), 설탕, 사케(준마이급), 가쓰오부시를 넣고 거의 1개월 정도 냉장고에서 숙성시킨다. 짜지도 않고 술 냄새도 안나고 간장 냄새도 안난다. 이것도 오직 사시미용에만 사용한다.


◆ 대구에서 초밥1번지 개막

1995년 대구로 왔다. 수성구 지산동 지산초등 부근에 초밥1번지를 냈다. 당시 대구 첫 초밥집이었다. 거기서 3년 정도 하다가 두산오거리 대어 옆에 유호초밥1번지를 오픈한다. 초밥을 넘어 일식집을 한다. 1만2천원짜리 특초밥이 인기였다. 재료가 문제였다. 매일 오전 6시20분 특급열차를 타고 부산 자갈치에 가서 신선한 해물을 사서 양쪽에 30㎏씩 사들고 오전 9시 새마을호 타고 대구에 내리면 10시였다.

3년여 있다가 대구과학고 맞은편에서 ‘향(香)’을 냈다. 이어 황금네거리 근처에서 국수사를 론칭한다.

“국수사는 일식맨들에게 가장 인기 좋은 상호죠. 다들 국수사를 많이 애용합니다.”

다시 범어네거리 옛 미조리 자리로 옮겨온다. 2002년이었다. 거기서 정통일식을 냈다. 가이세키 요리를 대구에서 처음 낸다. 17종류가 나왔다. 이때 지역에서 처음으로 게 사시미를 서비스로 냈다. 하지만 식재료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시소·아스파라거스·다캉·시츠미(혼합 맛고춧가루) 등을 구하기 위해 서울로 갔다. 일본은 재료 때문에 수시로 들어갔다.

2006년부터 사케를 취급한다. 대구에서는 1호다. 당시 그곳 초밥은 일본 본토와 비교해도 거의 비슷하다는 평을 받았다. 일본 안가고도 일본 본토의 맛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미식가들이 좋아했다. 2004년 현재 자리로 이전한다.


◆ 정통초밥집 구분법

정통초밥집이라면 일단 자기만의 간장이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맛국물(다시)과 밥짓는 방법을 살펴봐야 한다.

김 셰프는 “나는 50여만원짜리 고급 사케인 구보타 만쥬(久保田 萬壽)를 두 병 넣고 맛국물을 만든다. 맛국물 한 말 만드는데 원가만 140만원”이라고 밝혔다.

오전 10시에 출근한 뒤 직원들이 먹는 밥을 갖고 조금 덜어서 촛물(식초·설탕·술 혼합)을 넣고 선풍기 돌려 한 시간 만에 얼치기 밥을 뭉쳐서 팔고 있는 초밥집도 있다. 그건 ‘일반 횟집’이다.

김 셰프는 보통 오전 6시에 초밥을 만든다.

“촛물에 밥을 배합해서 숙성시킨다. 10시간 정도 숙성시킨다. 일반 밥짓는 것과 방법이 다르다. 쌀을 불린 뒤 가스불로 가열해 17~18분이면 밥이 된다. 뜸은 30분 들인다. 나무곽에 퍼넣는다. 70~100인분을 퍼낸다. 촛물은 최소 1ℓ 정도 들어간다. 면포를 덮어서 김을 흡수시킨다. 안 덮고 그냥 식히면 촛물이 밥에 스며들지 않고 찐득해진다.”

그가 냉장고에 있던 초밥용 말이계란(다시마키)을 보여주었다. 최소 이걸 만들 정도면 어느 정도 실력을 믿어도 된단다.

계란 120개, 설탕, 준마이급 사케를 넣고 숙성을 최소 다섯 시간 한다. 이때 붉은 기운이 감돌고 부드러워진다. 고운 체에 걸러서 일반 큰 국자로 김 반장 크기만한 프라이팬에 구워 다섯 겹을 말아 내장고에 보관한다. 정종이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한달을 보관해도 괜찮다. 이때 표면을 키친페이프로 감싸두는 건 물을 빼고 술향기가 머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향기는 일종의 엿질금 구실을 한다. 인건비, 재료비 등을 생각하면 이런 거 만들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대충 칠성시장에서 파는 냉동 다시마키에 만족한다.

요즘 식재료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일본 음식은 제대로 수입이 안되고 있다. 그래서 국내 재료로 둘러친다. 일식집이라고 해도 거의 ‘퓨전한식톤’으로 추락하고 있단다.


◆ 히레사케 이야기

히레사케는 복어 지느러미를 태워 뜨거운 사케에 넣은 것이다. 그런데 일반집에선 거의 저렴한 졸복 지느러미를 사용한다. 한봉지에 4천원밖에 안된다. 졸복은 일본에서 식용이 아닌 사료용이다.

정통 히레사케는 참복 지느러미를 사용한다. 1㎏에 170만원선. 자갈치 시장에 가도 구할까 말까다. 그가 일본 양식산 참복 지느러미를 보여준다. 9개 6g만 들어있다. 그가 한 잔에 2만5천원짜리 히레사케를 낸다. 식었는데도 비린내가 안난다. 구울 때 약한 불에서 5~7분 태우는 듯 굽는단다. 보통은 가스불에 급히 굽는 바람에 가장자리만 타고 살점부위는 살아서 비린내가 난다. 졸복 히레사케는 한잔 5천원, 참복 히레사케는 4배 이상 비싸다. 제대로 된 메뉴가 왜 비싼지 알만하다. (053)765-4567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김유호 셰프의 푸념

“나도 한계가 있다. 일단 손님층이 너무 얇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걸 다 펼쳐보이기 어렵다. 정통초밥은 1인분 12만~15만원을 내야 한다. 새우는 대하를, 전복은 20만원짜리를 썰어내야 한다. 몇 만원짜리 1인분은 짝퉁초밥이다. 비싼 걸 나쁜 걸로 아니, 다들 저급한 재료로 생색용 초밥을 낼 수밖에 없다. 초밥집도 먹고 살아야 한다. 제발 재료값이 얼마인지 확인하고 주문했으면 좋겠다. 우리집 혼마구로 오토로 1인분은 30만~200만원이다. 딱 8조각만 준다. 서비스도 없다. 그걸로 끝이다. 다른 말이 필요하다면 그건 ‘진검요리’가 아니다. 봄날의 진짜 벚꽃과 인조벚꽃의 차이는 천양지차. 맛을 모르면 다 같은 요리로 보인다. 그게 진짜 셰프를 절망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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