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겨울 먹거리 (1) 매생이와 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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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2-07   |  발행일 2012-12-07 제42면   |  수정 2012-12-07
‘우주식량’ 매생이, 한땐 미운 사위 골탕 먹이려던 장모의 ‘심술국’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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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 득량만에서 매생이를 채취하고 있는 어민. <사진제공=장흥군>


한후무산(寒後無産).

서리가 진군하면 육지의 한해 농사도 끝. 그래서 예전 겨울맞이는 전쟁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양식과 시설재배, 그리고 냉동식품 등으로 인해 이젠 보릿고개도 없다. 사철 먹을 게 흘러넘친다. 아파트족들은 ‘산지(産地)’에 둔감하다. 요리를 해먹기보다 외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철 식재료의 족보를 따지지 않는다. 그러니 유통상인들의 농간이 더욱 심해진다. 하지만 힐링푸드에 관심이 있다면 제철특산품의 고향을 따라잡아야 된다.

겨울엔 식재료의 몸짓이 카랑카랑해진다. 산수유 열매는 꽃이 만발하는 봄보다는 빨간 열매가 인상적인 겨울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 엄동설한인데 농수산품이 나올까 싶은데 살펴보면 설중매(雪中梅) 정신으로 진군하는 먹거리가 적잖다. 횡계와 구룡포 덕장의 황태와 과메기는 추워야 흥겹다. 해조류에는 찬바람이 인다. 그래서 겨울에 더 친근하다. 대구에선 유난히 겨울철 마재기(모자반)·싱기(파래)·꼬시래기 초무침이 인기였다. 하지만 향토밥상에서 거의 사라진 상태다. 제주도와 해남은 겨울배추의 메카이고, 포항 곡강은 대한민국 최고의 시금치(포항초)의 고향이다. 춥지만 동백꽃 같은 식재료가 한반도 곳곳에 숨어 있다. 수확 과정에 감춰진 이야기를 잘 모르는 ‘겨울 먹거리’를 찾아가 본다.


◇ 매생이 
달고 고운 바다이끼류
청정 전남 일부만 자라
웰빙식품 각광 받은 건
겨우 10여년에 불과해
서남해안 ‘굴국’ 유명

◇ 김 
‘17C 광양 태인서 양식’
日보다 60년 앞선 기록
최근 충남 서천도 생산
염산 등 약품 사용 않는
장흥‘무산김’각광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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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서남해안의 겨울철 명물인 매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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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완도 등 전남 바닷가 어민이 대한 즈음에 속을 풀기 위해 즐겼던 해우국(일명 생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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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먼저 김을 시식한 김여익 공을 기리기 위한 광양시 태인동에 있는 영모재.

◆ 5대 영양소 함유 ‘매생이’

남해안가에선 초봄·초겨울 맞이 특별한 국이 있다. 초봄엔 ‘도다리 쑥국’, 초겨울에는 ‘매생이 굴국’이다.

특히 매생이는 이 계절 가장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장모가 미운 사위에게 굳이 이 재료로 국을 팔팔 끓여 내놓는 이유는 뭘까? 매생이국은 끓여도 김이 잘 나지 않는다. 실보다 가늘고 촘촘한 올이 빽빽하게 엉켜 김을 머금고 있어서다. 보기에는 짙은 색깔 때문에 오히려 차가워 보인다. 그래서 미운 사위가 오면 슬그머니 내놓는 음식이 된 것이다. 딸 속 썩이는 사위, 뜨거운 줄 모르고 먹었다가 ‘에라이~ 입천장이나 데어라’는 속셈이다.

매생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 때문. 그의 측근들이 고향에서 즐겨먹던 매생이국을 찾으면서 서울에서 매생이칼국수 등이 번지게 된다.

하지만 매생이는 서남해안 김양식장에서는 골칫덩이였다. 김발에 잘 달라붙어 자라기 때문에 김 양식 어민은 걷어올릴 때 염산 등과 같은 약품으로 제거해야만 했다.

그런데 2000년 들어 탄수화물·단백질·지방·비타민·무기염류 등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고단백 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전남 바닷가에서 소금 먹고 자라는 함초가 최근에 비싼 힐링푸드로 상종가를 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매생이는 지금 우주식량으로 지정될 만큼 웰빙식품일 뿐만 아니라 강원도 삼척~영덕 해안 물곰탕과 함께 겨울철 해장국의 리더격으로, 예전 생복·대구·생태·동태탕·북엇국의 인기를 넘겨다보고 있다.

매생이는 조류가 완만하게 흐르고 물이 잘 드나들며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만 자란다. 이런 이유로 매생이는 환경오염의 척도로 평가받는다. 동·서해안에서는 볼 수 없다. 전남 장흥·장성·고흥·강진·완도 등에서만 자란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장흥의 진상품으로 기록돼 있다. 매생이는 김, 파래 같은 바다 이끼의 일종이지만 이들보다 훨씬 곱고 달다. 김은 말리고 파래는 새콤하게 무쳐 먹지만 매생이는 주로 국을 끓여 먹는다. 매생이는 채취하고 3일이 지나면 맛과 향이 변하는 데다 산에 약해 식초에 버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매생이 1번지는 어딜까?

사람들은 전남 장흥군 득량만이 보이는 대덕읍 내저리를 가장 주목한다. 현재 장흥군의 220여 가구가 이걸 생산하고 있는데 11월에 종자를 뿌리고 12월부터 설 무렵까지 채취한다. 그 지역에선 주로 굴이 들어간 매생이 굴국이 인기다.


◆ 친환경 바람 부는 ‘김’

대한(大寒) 즈음 광양~완도 바닷가 어른들은 ‘해우국’을 즐긴다.

해우란 ‘물김’을 말한다. 완도읍의 재래시장 등에서 한 재기에 2천여원에 팔리고 있는데 예전엔 광양시 태인동 태인 물김으로 끓인 해우국을 제일로 쳤다. 된장 아니면 쌀뜨물을 주재료로 마늘과 참기름, 소금 정도만 있으면 끝이다.

2008년에 흥미로운 책이 발간됐다. 김 시식지 유족 보존회(회장 김옥현, 전 광양시장)가 ‘광양 김 시식지’책자를 발간한 것이다. 이 책자에 의하면 광양시 태인동은 우리나라 김의 주산지인 완도보다 무려 170년이 앞서고 세계 최초의 김 양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일본의 겐로꾸시대(1688∼1703)보다 최고 60년 전에 김을 양식했단다.

김 시식의 주인공은 바로 김여익 공. 조선 인조 때인 1640년부터 1660년까지 광양 태인도에서 처음 김을 양식했다는 내용이 1714년 2월에 당시 광양현감 허심이 쓴 김여익 공의 묘표에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지리지 등 문헌상에도 나타나 역사적인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지금은 광양제철소의 건설로 예전의 자취를 잃었지만 1919년 종중에서 건립한 영모재와 김여익 공의 위패와 묘표문이 보관되어 있는 인호사, 김 생산 도구 32종 53점이 전시되어 있는 김 시식 유물 전시관이 당시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김 시식지는 1987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고 김과 관련한 지정 문화재로는 전국에서 유일하며, 김의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놀이인 ‘용지 큰줄다리기’가 약 300년간 이어져오고 있다.

구전에 따르면 진상된 김으로 수라를 맛있게 먹은 현종이 제조상궁에게 재료 이름을 물었다. 상궁도 잘 몰라서 “광양에 사는 김 아무개가 고안해낸 음식”이라고 하자 현종은 “그럼 오늘부터 저 바다풀을 김이라 하여라”고 분부하면서부터 해태가 김이 됐다고 한다.

전남 해안에서는 뭐가 최고의 김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김 천지다. 난형난제(難兄難弟)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전남 고흥은 최근 한국김산업연합회와 함께 ‘대한민국 김의 날’을 선포하였고 7천400여㏊의 김 양식장을 가진 해남도 김의 고장임을 알리고 있다. 이에 앞서 대한민국 김산업계에 신선한 도전장을 낸 곳이 있다. 바로 장흥의 ‘무산김(無酸苔)’이다.

김 양식장에도 그늘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염산 같은 강산 계열의 공업용 약품을 사용했다. 그걸 사용하면 김발에 잡조류가 달라붙지 않아 제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생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난리가 났다.

그런데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 관행에 종지부를 찍은 어촌 마을이 있다. 소설가 한승원씨가 귀향해 살고 있는 장흥군이다. 어민 189명이 2008년 5월 유기산을 사용하지 않는 ‘무산김’을 생산하자고 다짐한다. 그렇게 해서 2009년 2월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어민이 직접 참여한 <주>장흥무산김을 설립했다. 장흥군도 어민을 돕기 위해 유기산 구입비용 3억 원을 양식기자재 구입비로 전환해 지원하며 힘을 실어 주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장흥군은 김 양식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CCTV를 설치해 놓고 서로 감시하며 신뢰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군청에서도 언제든지 김 양식장을 화면으로 보며 혹시나 유기산을 쓰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생산량은 줄었다. 일손은 몇 배로 더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민은 서로 격려하고 때로는 서로 감시자가 되어 경쟁도 했다. 무산김의 청정 이미지를 어민 스스로 하나씩 만들어 간 것이다. 이러한 관리 덕에 친환경수산물 인증과 국제유기인증(IFOAM)을 획득했다. 다들 궁금해할 것이다. 왜 유기산을 사용하는가.

원리는 간단하다. 양식과정에서 잡조류가 붙는데, 이때 농약처럼 염산 등을 뿌리면 사라진다. 하지만 이 대목이 항상 말썽이었다. 무산김은 대신 새벽같이 발을 수면 위로 올려 햇볕을 쬔다. 해가 지면 수면 아래로 발을 내린다. 평균 4일에 한번씩 김발을 뒤집어놓기도 한다. 김은 바람과 햇볕을 이기지만 잡조류는 금세 죽어버린다. 당연히 관리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고 가격도 비싸다. 현재 100장 한 속에 8천300원. 일반김보다 두 배가량 비싸다.

김은 일반김(참김), 모무니돌김, 잇바리돌김으로 나뉜다. 보통 참김은 매년 11~12월 출하되는데 두 차례 돌김을 채취하고 나면 그 다음 참김이 들러붙어 4월까지 서너차례 수학된다. 일반김은 고흥~장흥~완도, 돌김은 진도~무안~신안이 주산지다. 최근에는 해수 상승으로 인해 충청도 서천 등에서도 난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잇바리돌김은 꼭 곱창처럼 생겼다고 해서 ‘곱창김’으로 불리며 매년 10월 중순 진도에서 첫 출하가 된다. 한때 완도도 김 주산지로 유명했는데 2003년부터 전복에 주력하면서 옛 명성을 잃어버렸다.

모두 투명한 화학소금 묻힌 조미김에 길들여져 있다. 참기름 바르고 프라이팬에 구운 날김을 빻은 깨 넣은 지렁(조선간장)에 찍어 현미찹쌀밥을 싸 먹어보라. Hurry up!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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