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겨울 먹거리 (2)국내 최고 미역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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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2-21   |  발행일 2012-12-21 제42면   |  수정 2012-12-21
진도 독거도미역 20가닥에 100만원 ‘국내 최고價’…대통령도 쉽게 못 구해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겨울 먹거리 (2)국내 최고 미역
울진 고포미역을 캐는 해녀. 수심 3~4m까지 들어가야 된다.

아이를 낳은 산모. 고통스러우면서도 더없는 극치감을 느낀다고 한다. 아이를 낳을 때, 이마가 나오기 시작하면 가장 아프다고 한다. 그러나 귀만 나오게 되면 아기는 쉽게 쏙 빠진다. 그래서 태어난 날을 ‘귀 빠진 날’이라 한다. 귀 빠진 날 아침에 꼭 먹는 미역국. 고려시대부터 이런 풍습은 계속됐고, 특이하게 그 상에는 이렇다 할 만한 반찬이 올라가지 않고 그냥 쌀밥과 미역국, 그리고 정화수만으로 끝이다. 산모가 먹는 미역은 넓고 길수록 좋으며 또 그것을 살 때 값을 깎아서도 안 되고, 그것을 꺾어서 들고 가서도 안 된다는 금기가 있다. 깎거나 꺾거나 하면 태어난 아이의 운명이 깎이거나 꺾이는 것으로 본다. 산모가 미역을 먹는 우리나라의 관습은 아주 오래인 것 같다. 당나라 때부터 고래가 새끼를 낳고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미역을 뜯어먹고 있는 것을 본 고려인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져 온다. 미역은 건조된 상태로 장기 유통된다. 그래서 사철이 제철이다. 과메기용 물미역은 물론 지금이 제철이다. 미역 수확철은 봄~여름철이다. 하지만 미역 관리에 있어 겨울만큼 중요한 시기도 없다. 대한민국 3대 미역은 진도 독거산미역, 울진 고포미역, 경남 기장미역이다. 이번주엔 고포·독거도미역을 수확하기 직전에 가장 중요한 절차인 겨울철 미역바위 씻어내기 작업과 용왕제를 방불케 하는 수확에 얽힌 스토리를 알아본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겨울 먹거리 (2)국내 최고 미역
가장 비싼 자연산 돌미역이 나오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독거도의 갯바위. 해녀들이 없어 어르신들이 거친 파도를 헤치고 직접 상층부 미역을 따고 있다.


◇울진 고포미역

타지보다 올 길어 인기
미역바위 씨앗 잘 붙게
각질 제거하듯 청소…
매년 10월엔 고사 지내
수심 깊어 해녀가 채취


◇진도 독거도미역

양이 적어 늘 품귀현상
거의 산모 선물용으로
광주·전남에서만 소비
오돌오돌 쫄깃쫄깃한
쫄쫄이를 최상으로 쳐


◆ 울진 고포미역

울진에선 자연산 돌미역을 ‘돌곽’ ‘풍락초’라 부른다. 미역바위도 전라도와 달리 여기선 ‘미역짬’이라고 한다.

‘짬’은 연안 어장에 형성된 바위군락을 이르는 울진지방의 방언인데 대게가 집중적으로 잡히는 바위지형을 ‘왕돌짬’과 비교해 보면 알 만할 것이다.

수확 후 미역귀가 압착해 있던 자리를 제대로 청소하지 않으면 잡해초가 지저분하게 붙어 포자가 돌에 잘 붙지 못한다. 그럼 이듬해 미역 생산량이 급감한다. 어민들은 품앗이 정신을 발휘, 초겨울 돌밭에 나가 뒤꿈치 각질 제거하듯 싹싹 깎아내야 한다. 여러 해초가 돌에 많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풍습은 울릉도 어민들도 동일하다.

짬은 해당 어촌계의 공동소유이며 공동생산, 분배를 통한 협업노동의 정수를 보여주는 어로현장이다. 울진 연안의 해촌의 경우, 마을마다 대략 5~8개의 짬을 보유하고 있으며, 해마다 정월에 어촌계원들을 대상으로 ‘짬 뽑기’를 통해 짬을 분배한다.

울진 미역은 울릉도의 명이나물과 비슷했다.

1930~70년초 보릿고개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미역은 목숨을 살려낸 소중한 먹을거리였다. 미역의 생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람과 해류이다. 울진군 북면 나곡리 고포마을은 매년 3~5월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로 고온다습한 높새바람이 불어온다. 이 바람은 잘 자란 미역을 사흘이면 윤기로 반짝거리는 ‘울진 돌곽’으로 탄생시킨다. 물론 양식이 아니고 자연산이다. 고포리와 나실마을에서 생산되는 고포미역은 스무 올을 기준으로 한 단에 20만원을 호가한다. 고포미역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미역보다 올의 길이가 긴‘장곽(長藿)’이어서 더 인기다.

울진 고포마을에서는 지금도 ‘짬 고사’라는 독특한 제의가 있다.

미역의 생장을 기원하는 일종의 용왕제이다. 해촌의 아낙들은 매년 10월, 미역이 포자를 내리는 짬을 흡사 자기 몸을 씻듯이 잘 닦아낸 뒤, 보름달이 뜨는 날을 잡아 집에서 정성껏 빚은 막걸리에 좁쌀을 섞어 미역바위에 뿌리고 미역씨앗이 바위에 잘 붙도록 빌었다.

미역바위 닦기를 이 지역에선 ‘기세닦기’라고도 했다. 10∼11월중순, 어촌계별로 품앗이를 이뤄 ‘낫대’와 ‘씰개’를 들고 정성 들여 미역바위를 닦는다. 낫대와 씰개는 짬을 닦을 때 사용하는 도구로 괭이를 곧게 펴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 낫대는 웃자란 해초를 벨 때, 밀대는 짬에 촘촘하게 붙은 해초를 제거하는데 사용한다. 씰개는 끝이 뭉뚝하기 때문에 바위에 붙은 이끼나 해초를 긁어내는 데 유용하다. 울진군은 31개소 어촌계에 모두 1천255㏊의 짬을 갖고 있다. 이 사업에는 31개 어촌계 2천500여 어민이 참여한다.

이 작업이 끝나고 이듬해 봄 높새바람이 불어오는 보름동안 고포마을을 비롯해 해촌 사람들은 ‘떼배’를 띄우고 해녀를 동원하여 돌미역 채취에 나선다.

높새바람이 불어오는 보름동안 울진 북면 고포마을과 해촌 사람들은 농번기에 들어간다. 미역이 거의 수심 3~4m 아래에 있기 때문에 어르신이 채취하기 어렵다. 그래서 해녀를 공수해 와야 된다. 고포마을에서는 주로 죽변 봉수리에 뿌리를 내린 해녀들과 채취 계약을 맺는다. 오전 7시~ 오후 6시 채취한 미역량을 기준으로 해녀가 3할, 어촌계가 7할을 갖는다. 해녀들은 연신 미역짬으로 자맥질하고 어촌계원들은 해녀들이 채취한 돌미역을 떼배로 나르며, 아낙들은 싱싱한 돌미역을 불(백사장)의 미역발에 널어서 말린다.

양식미역이 대세가 되면서 명맥이 끊어질 지경인 울진 어민들의 노동요인 돌씻기(시르게질) 노래를 들어보자.

‘어이샤 어이샤 이 돌을 실걸려고 /찬물에 들어서서/ 바다에 용왕님네/ 구부구비 살피소서/ 나쁜 물은 썰물따라 물러가고/ 미역물은 덜물따라 들어오소 / 백색같이 닦은 돌에/ 많이많이 달아주소.’

◆ 진도 독거도미역

국내에서 가장 비싼 미역은 어디서 나올까.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독거도에서 나오는 자연산 돌미역이다. 워낙 비싸 품귀 현상을 보이면 한 뭇(20가닥)에 100만원을 상회한다고 한다. 80년대 전두환이 자기 며느리 먹인다면서 독거도미역을 진상하라고 하명했단다. 전남도지사한테 독거도미역을 구해 보내라고 명령을 내렸고, 도지사는 진도 군수한테 명령하고, 군수는 당시 여성 이장이었던 여성자씨한테 미역 수배령을 내린다. 그때 독거도미역은 다 팔고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광주 독거도미역 전문판매장까지 가서 그 미역을 다시 청와대로 올려보냈다.

여기로 가려면 진도 조도 서망항에서 오후 3시, 섬사랑 9호를 타야 한다.

하루 한차례 진도 서망항에서 조도 어류포항 사이를 왕복한다. 독거도·탄항도·슬도·혈도·죽항도·섬등도 등의 작은 섬들이 이 항로에 있다.

독거도 발전소 앞 묵정밭은 돌미역을 말리는 건조장. 독거도에는 15가구 19명의 주민이 산다. 주민들은 각자의 미역밭에서 자란 미역을 베어다 말린다. 여기선 독거각·돌각·산모각·독거도미역 등 이름도 다양하다. 독거도미역은 자연산 돌미역이지만 산고를 거쳐야 된다. 수확은 봄날이지만 겨울에 미역 포자가 잘 붙을 수 있게 갯돌을 잘 닦아내야 한다.

지금도 독거도미역은 양이 많지 않아 서울까지 못 올라가고 대부분 광주 전남지역에서 소비된다.

독거도미역은 바위에서 자라는 자연산 돌미역이지만 양식장 못지않게 많은 손길을 필요로 한다. 미역 포자가 하나라도 더 많이 바위에 붙도록 하기 위해 겨울이면 ‘갯닦기’ 작업을 해야 한다. 수확은 하절기지만 갯바위를 깨끗이 청소하는 갯닦기는 겨울에 이뤄진다. 칼바람 맞으며 바닷물에 들어가서 하는 갯닦기는 미역 건조만큼이나 고역이다. 갯바위에 포자가 붙어야 미역이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 포자는 미역귀라 부르는 머리 부분에서 나와 바위에 붙는다.

포자가 갯바위에 부착되어 자라기 시작하는 음력 4월경부터는 매일 물을 끼얹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미역 순이 햇볕에 말라 죽기 때문이다. ‘보리밟기’나 마찬가지다.

다 자란 미역은 7월 중순~8월15일 낫으로 베어온다. 가장 좋은 걸 보면 ‘약이 찼다’고 한다. ‘빳빳하니 품질이 좋다’는 뜻이다. 들이는 공력에 비하면 미역 값이 비싸다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지금이야 묵정밭이 많아져서 밭에다 미역 건조장을 만들었지만 예전에는 바닷가 바윗돌에다 말려야 했으니 품이 더 들었다. 그 다음에는 김처럼 대나무로 만든 발장을 써서 말렸는데 곰팡이가 많이 펴서 매번 세척하느라 고생이 심했다. 지금은 그물로 만든 발장을 미역 건조대로 쓰니 많이 편해졌다.

이곳 돌미역은 그 생긴 모양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각각이고 가격 차이도 크다.

잎이 넓적한 ‘떡각’, 줄기가 거의 없이 잎만 댓잎처럼 늘어진 ‘댓잎 미역’, 잎은 적고 거의 줄기로만 이루어진 ‘쫄쫄이’. 오돌오돌하고 쫄깃쫄깃한 쫄쫄이를 최상품 미역으로 친다. 떡각은 나오는 양이 많아 값이 싼 편이다.

독거도미역은 2가닥을 한 구찌로 셈하는데 10구찌가 한 뭇이다. 최상품은 20가닥 한 뭇에 100만원을 호가한다. 일반 미역의 다섯 배. 그래서 거의 산모들에게 선물용으로만 팔린다. 한참 잘 나갈 때는 미역 한 뭇 팔아서 송아지 한 마리를 샀던 적도 있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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