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겨울 먹거리 (3) 월동채소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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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1-04   |  발행일 2013-01-04 제42면   |  수정 2013-01-04
여름 시금치는 맛없는 서양계…겨울 포항초는 동양계로 달고 검푸른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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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월동배추의 메카인 전남 해남군의 눈맞은 해남배추. <해남군 제공>

거의 모든 엽채류는 서리를 맞으면 다 녹아버린다.

그래서 남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서리가 내리기 전에 농사를 갈무리한다.

대한민국 고랭지채소 1번지인 강원도 대관령, 대한민국 월동 채소 본거지는 제주도~해남권. 전자는 하절기, 후자는 동절기 다른 지방 채소가 다 동면에 들었을 때 기지개를 켠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전국 최초로 ‘월동 무 재배신고제’를 도입, 월동채소의 가격안정을 도모하기로 했다. 월동 무는 12월 중순부터 다음해 4월까지 제주에서만 출하되는 겨울철 특화작목이다. 이밖에 제주도의 4대 월동채소는 월동 무·당근·양배추·마늘.

육지에도 우리가 잘 모르는 월동채소가 있다. 대표적인 게 포항초·해남 월동배추와 세발나물.


◇ 포항초

전남 신안 섬초와 함께
시금치계의 ‘양대산맥’
海風이 맛과 향의 원천
흙먼지 많은 게 좋아


◆ 포항초를 찾아서

포항초는 포항의 ‘월동 시금치’로 불리지만 전남 신안군 비금도 등에서는 ‘섬초’라 부른다. 다시말해 동해안 시금치의 대장은 포항초, 남해안 시금치 대장은 섬초로 보면 되겠다. 포항초는 400g 한 단으로 묶여나가지만 남해 섬초는 묶지않고 캐낸 채 그대로 팔린다. 가격은 포항초가 조금 더 비싼데 현재 한 단에 2천~2천500원선.

포항초는 전국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 원리, 세계리 등에서 30여가구가 35㏊, 남구 흥해읍 곡강리 20여가구가 10㏊, 구룡포 호미곶면 대보리 7~8가구가 5㏊, 북구 청하 근처에 4㏊의 재배지가 있다.

포항초 성공 신화의 인프라는 이등질 경북친환경농업연합회장과 정태근 곡강2리 이장이 주도적으로 닦아나간다. 곡강에 시금치 인프라가 깔리기 시작한 건 1989년. 포항은 토질이 시금치 재배에 딱 조건이 맞다. 그래서 일제 때 일본 농사꾼들도 시금치를 재배했다고 한다. 지금은 포항제철이 들어서 있는 백사장에까지 시금치밭이었다고 한다. 포항은 강수량이 매우 적은 곳이다. 특히 겨울에 눈이 거의 오지 않아 노지에서 시금치를 재배하기가 좋다. 겨울 최저기온도 대개 영하 5℃ 정도에 그친다. 게다가 모래밭은 물 빠짐이 좋아 시금치 재배에 아주 적당한 토양이다.

곡강의 시금치 전도사들은 곡강을 시금치 마을로 만들기 위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을 노크했다. 품질 인증을 받기 위해서였다. 무농약 재배를 해야만 엽채류 상품의 품질 인증을 유지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들에게는 상당히 힘든 요구조건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금치의 무농약 재배는 생각도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정부 방침이라 어쩔 수 없이 품질 인증을 유지하기 위해 결국 무농약 재배를 결심했다. 힘들지만 올바른 길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무농약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었다. 3년 동안은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 병충해가 심해 시금치 이파리가 망사처럼 되었고 하나도 출하할 수 없었다. 시금치 작목반 동료들 몇몇이 재배를 포기했다.

포항초는 9월에 파종하는데 10월 하순까지 병충해가 극성이란다. 그 시기만 지나면 포항은 급격히 기온이 떨어져 병충해 피해가 크게 줄어든다. 그러니 그 시기에는 어쩔 수 없이 농약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온갖 실험을 거쳐 유기농 시금치라 부를 수 있는 포항초를 재생산할 때까지 3년이 참으로 힘들었다.

호미곶 시금치는 대보면 보리밭과 함께 겨울을 난다.

보리농사가 힘들어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시금치로 종목을 바꾸는 농가가 늘고 있다.

대보의 시금치 밭은 삼면이 바다다. 삼면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엄청나다. 이곳의 시금치 브랜드는 ‘호미곶해풍시금치’. 달고 진한 맛의 포항초를 키우는 것도 이 해풍이다.

우리나라에서 키우는 시금치는 대개 두 가지 종자로 나뉜다. 봄에 파종해 여름에 먹는 ‘서양계 종 시금치’와 가을에 파종해 겨울에 수확하는 ‘동양계 종 시금치’다. 서양계는 병충해가 적고 더운 기후에 잘 크는데 대신 맛이 싱겁다. 여름에 먹는 시금치들은 다 이 종류다. 이와 달리 동양계는 이파리가 두껍고 맛과 향이 진하고 달착지근하며 병충해도 많다. 물론 포항초와 섬초도 동양계로 분류된다. 겨울 시금치는 종자부터 여름 시금치보다 달고 맛이 있다.

포항초나 섬초라고 해도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우거나 비교적 바닷바람이 덜 부는 곳에서 키운 것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노지의 것보다는 맛이 훨씬 떨어진다. 심지어 같은 밭의 것이라도 해안 가까이에서 바닷바람 많이 쐰 것들일수록 더 달다고 한다. 식물의 맛과 향이란 결국 자연 속에서 벌레와 추위, 바람 같은 악조건 속에서 버텨내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강인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밭에서 수확한 시금치는 실내 작업장 안에서 단으로 묶는 작업을 한다. 노지 시금치의 모양은 다르다. 흙먼지가 많이 묻어 있고, 이파리 색깔은 아주 검푸른 빛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밥상에서 보는 착하게 생긴 시금치는 노지가 아니고 거의 비닐하우스산이라는 걸 일반인은 거의 알 수 없다.

한편 서해안 신안군 비금도의 명물이 된 섬초는 1996년부터 귀한 몸이 됐다. 현재는 726㏊의 경작지를 갖고 있다. 매년 9월하순 파종해서 이듬해 2~3월 수확된다. 청정해안의 점질토인 게르마늄성분이 풍부한 갯벌토양에서 자라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노지와 하우스에서 자란 시금치에 비해 게르마늄 함량이 월등히 높다. 또한 강한 해풍을 받고 자라 잎이 일반시금치보다 두꺼운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게다가 얼고 녹기를 반복해 단맛이 강하고 섬유질 함유량도 매우 높다. 최근에는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해 2008년 신안시금치클러스터사업단까지 가동했다.


◇ 해남배추

일본산 종자 보급된 후
전국 생산의 75%로 1위
대부분 3∼4월에 출하
지리표시 등록 품질인정


◆ 해남 배추

이젠 사계절 배추를 맛볼 수 있게 됐다. 물론 저온저장술과 고랭지재배술 덕분이다. 배추는 낮은 온도에서는 그다지 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신선한 김치를 먹고 싶어도 70년대까지 동절기에는 먹을 수가 없었다. 70년대 중반 들어서 제주도에서 내한성이 보강된 일본산 배추종자가 보급되어 시장 출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80년대초 전남 해남군 화원면에 거주하는 몇몇 농가가 이 종자를 구입하여 재배를 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전국 출하량 1위인 해남의 겨울배추가 되었다.

1~2월에는 해남의 월동배추, 3~4월에는 월동저장배추, 4~5월에는 김해 및 아산 등지의 하우스 배추, 6월에는 전국적으로 조금씩 생산되며, 7~10월에는 삼척·영월·태백 등 고랭지 배추, 10월 중순부터는 춘천·홍천·제천·문경·의성·봉화 등 전국적으로 가을배추가 출하되며, 11월 중순~12월은 김장 배추로 해발 300m 이내의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나온다.

여름철 배추는 중소형 종자라서 포기가 그리 크지 않다. 대략 3~4㎏정도. 그에 반해 가을·겨울 배추는 4~6㎏. 해남이나 진도에서는 겨울철 해풍에 배추가 잘 얼지 않는데 월동배추이기 때문이다. 해남 월동배추는 지리적표시제 11호로 등록되어 고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해남 배추가 자리를 잡은 건 80년대초. 그 이전에는 보리농사가 주였다. 처음에는 화원면 장춘리, 문내면 석교리, 황산면 우황리, 산이면 대진리, 마산면 연구리 등으로 재배 공간이 확충된다.

현재는 전국 월동배추 생산량의 75%가 해남산. 첫 수확은 1월초. 판매는 5월초까지 이어진다. 혹한이 오면 월동배추도 동파를 입기 때문에 농가에서는 거의 1월 중에 수확을 해서 저온창고에 보관했다가 2~3개월만에 판매를 한다. 5년전부터는 해남 절임배추도 함께 팔고 있다.

겨울배추생산자단체협의회측은 “해남겨울배추는 2월 중에 수확하여 저온창고에 보관하였다가 3~4월에 출하하는데 이때 김치를 담그면 굳이 추운 겨울에 김장한다고 고생할 필요도 없고 김치냉장고에 두고 8~9월까지 싱싱한 김치를 먹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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