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칼국수 명가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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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2-08   |  발행일 2013-02-08 제42면   |  수정 2013-02-08
“면발과 육수가 한몸 된 농익은 맛” 대구는 지금 칼국수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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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만큼 다양한 국수집을 가진 고장도 드물다. 최근 동아일보 채널A가 ‘착한 칼국수집’으로 공인한 달성군 가창읍의 한 칼국수집은 직접 밀밭까지 경작하고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물을 만나면 아교풀처럼 끈적끈적해지는 ‘글루텐’. 단백질 성분의 일종인 이게 있어 칼국수는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국수맛을 내기 위해선 밀가루를 잘 반죽해야 된다. 강력·중력·박력분을 어떤 비율로 섞을 건지, 어느 정도 반죽하고 얼마나 숙성할 건지, 그 다음엔 얼마나 잘 퍼지게 끓일 건지, 어떤 육수를 사용할 건지, 고명과 양념장은 어떻게 할 건지…. 모두 다섯가지 관문을 잘 통과해야 된다. 아마추어는 칼국수집이 가장 쉽다고 여긴다. 그런데 실은 가장 어렵다. 대다수 밀가루 비린내(풋내)를 잘 다스리질 못한다. 육수는 너무 감미롭고, 면발에선 비린내가 나면 맛세포(미뢰)가 혼돈스러워진다. 면발과 육수가 한 몸이 안 되면 농익은 맛이 나오지 못한다. 예전 부엌 시렁에는 두 자 남짓한 손가락 굵기의 사리젓가락이 있다. 이게 요술을 부린다. 칼국수를 삶을 때 면발이 제대로 익었는지를 알기 위해 젓가락에 면발을 걸어 허공으로 휙 올려 광선에 드러난 면발 색깔을 보고 다 됐는지 여부를 감별한다. 덜 익으면 아이보리빛 심이 보인다. 이탈리아 스파게티는 반대로 덜익은 심이 보여야(알덴떼 상태) 제대로 된 것이다. 스파게티는 공장에서 한번 익혀서 말렸기 때문에 굳이 다 익힐 필요가 없다. 하지만 국내 일반 밀가루 면은 완전히 익혀야 한다. 면발이 공중에 있으면 온도가 내려가고 그게 다시 용기 속으로 들어가면 온도차로 인해 대류현상이 일어나 잘 숙성되는 것이다. 안동 등지에서는 건진국수가 유행한다. 이건 한소끔 익힌 면발을 찻물에 한번 헹궈내 면발이 더 졸깃해진다. 제물국수(누름국수)는 찬물에 헹구지 않고 제자리에서 원스톱으로 끓여낸다.

■칼국수 명가들 

 식당 옆에 밀밭 두고 직접 반죽 홍두깨로 민
‘가창 할매밀칼국수’ 전국서 순례 ‘대박’

 범어동 ‘착한칼국수’ 깍두기 국물 넣으면
 오묘한 맛 더해져

 염매시장 옆골목엔 내공 깊은 두 집 맛대결
 서문시장 50여곳도 안동식 건진국수 경쟁

 동곡·경주·명덕은 대구 3대 할매칼국수…
 도청교 할매칼국수는‘콩국수 지존’ 불리어

◆대구는 국내 최고의 국수고장

대구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수의 고장’.

전국에서 국수 소비량도 가장 많고 다양한 버전의 국수집이 즐비하다. 일제 때 국수산업이 가장 활성화된 곳도 대구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도 중구 인교동에서 별표국수로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 된 국수공장이 북구 노원동에 있다. 바로 풍국면이다. 1933년 문을 열었다.

대구와 필적할 수 있는 국수고장은 부산. 국수도 지역색이 있다. 부산·경남권은 소면(잔치국수), 대구·경북권은 칼국수에 목을 맨다. 경남 거창 등 하천을 낀 강촌에서는 매운탕에 칼국수를 넣은 ‘어탕국수’가 특화된다.

바닷가에선 해물탕에 칼국수가 섞인 ‘해물칼국수’가 유행이다. 경북 구룡포읍에는 ‘까꾸네 모리국수’가 해물칼국수의 본산격. 홍합, 미더덕, 아귀 등 제철 해물이 수북하게 들어간다. 최근 구룡포읍 구룡포2리에 모리국수의 아성을 넘보는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해물탕 전문가인 손연이 여사장이 이끄는‘용궁식당’이다. 구룡포에는 오래된 국수공장이 있다. 바로 제일국수공장. 진공관 버전의 국수공장을 보고 싶다면 여기로 가면 된다.

소면과 칼국수 중간급 국수는 중면. 이 걸 가장 즐기는 고장은 제주도다. 제주도는 2009년 일도2동 삼성로~신산로에 제주국수문화거리를 조성했다. 현재 20여개 업소가 밀집해 있다. 고기국수는 제주산 돼지수육을 고명으로 올리고 경상도와 달리 채소류 대신 당근채를 올린 게 인상적이다. 대구는 중동교 근처 제주국수(761-3877)가 고기국수를 판다.

◆착한칼국수집

최근 대구에서 가장 대박이 난 칼국수집은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가창할매밀칼국수(767-4249). 동아일보 채널A 인기프로인 ‘먹거리X파일’의 이영돈 PD가 이집 식재료의 진정성을 인정, 인정패를 전달한 착한칼국수집이다. 순례객까지 생길 정도다. 식당 옆에 진짜 밀밭이 있고 수확해서 방앗간에서 도정한 뒤 직접 반죽해 홍두깨로 밀어 칼국수를 만든다. 이젠 집에 밀 빻는 기계도 갖다둘 계획인데, 이런 버전은 전국 어디에도 없다. 동동주 항아리 비슷한 질그릇에 담겨져 나온 칼국수. 60년대 시골 할매의 표정이다. 한눈에도 통밀 빛깔이 감돈다. 감자와 부추, 호박, 김가루, 빻은 깨 등이 들어가는데 씹히는 맛이 너무 수수하고 자연스럽다.

수성구 범어동 효산병원 골목안에 있는 착한 칼국수(764-5082). 감히 상호에 ‘착한’이란 말을 넣은 사장이 누군지 궁금해서 찾아가봤다. 먹어봤다. 면발은 우동 사리처럼 매끌거리지 않고 투박하다. 국물은 싱겁다 할 정도로 심심. 깍두기 국물을 넣으니 한맛이 더 났다. 하지만 감미로운 육수에 길들여진 사람은 맛이 없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주방을 확인했다. 화학조미료통이 없다. 채소 공급과 반찬만들기는 팔공산 예비군훈련장 근처 음양동에 기거하시는 어머니가 거의 책임진다. 국수집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콩잎김치, 무말랭이김치, 그리고 국물을 넣으면 국수맛이 더 오묘해지게 하는 깍두기도 모두 ‘착한표’다. 매일 오후 3시쯤 반죽하고 다음날 오전 6시에 국수를 뺀다. 칼국수 속에 모녀간 진한 정이 숨어 있다.

◆번지없는 주막형 칼국수집

염매시장 옆 골목 안에 있는 14년 역사의 밀밭국수(252-6222)가 도전장을 냈다. 정말 비좁고 허름하다. 안동 출신인 여사장이 직접 반죽을 미는데 안동반가의 기품을 갖고 있다. 한 그릇 4천원. 그러면서 콩가루·계란을 넣고 하루 푹 반죽을 숙성시킨다. 식탁은 네개. 그래도 은명숙 여사장은 자부심 넘쳐 ‘까칠이 여사’로 불린다.

가창댐에서 헐티재 방향으로 차를 몰고가다보면 동재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양지마을 초입이 보인다. 길가에 꼭 허물어질 듯 앉아 있는 앉은뱅이 집이 있다. 수십년째 혼자 사는 할머니가 직수굿하게 국수를 끓인다. 국물도 면발도 요란하지 않다. 멸치 육수에 건진국수 스타일이며 김치와 깍두기가 범상치 않다. 정말 속이 편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오는 게 싫다고 해서 연락처는 생략.

◆전통시장 노점형 칼국수집

서문시장에 호떡, 삼각만두 등 숱한 간식거리가 있지만 가장 만만하고 대중적 인기를 끄는 곳은 칼국수.

면발을 한번 찬물에 헹궈서 그릇에 담은 뒤 뜨거운 멸치육수를 넣고 삶은 호박채를 듬뿍 올려준다. 다들 안동식 건진국수 스타일이다. 50여개 업소가 3개 구역에 분산돼 있다. 서남빌딩 뒷골목에는 합천할매, 미광, 진미, 선아, 초선, 삼미, 남양, 손가, 할매2 등 11개가 몰려 있다. 예전에는 가방골목이었는데 너무 후진 곳에 있어 다른 곳으로 옮겨간뒤 ‘국수촌’으로 변모했다.

4지구와 1지구 사이에는 모두 13개의 포차형 칼국수집이 운집해 있다. 점심 때 2층에서 아래를 보면 장관을 이룬다. 다른 데보다 2천원 정도 싸고 고추를 아끼지 않고 내민다. 동산상가 옆에는 잔치국수촌이 형성돼 있다. 근처 ‘주차장 칼국수’도 행인들에게 인기다. 정식 점포는 아니고 삼베업소 주차공간을 이용한다. 무한리필이 되며 면발이 특히 굵다.

서남빌딩 뒷골목의 전설적 칼국수 왕근이. 젊은 하창직 사장은 5년전 그만두고 대신 모친이 13년전부터 지키던 북구 구암동 왕근이(대요식당·326-2154)가 본가 구실을 하고 있다. 육수 온도는 계절에 따라 먹기좋게 조절해 꼭 메밀소바를 먹는 것 같다. 왕근이란 ‘억수로 많이’란 대구 사투리. 칠성시장에는 보문칼국수가 대표격.

◆가도 후회 안할 칼국수집

경북도청 방향으로 가다가 도청교 건너기 전 침산교회를 끼고 아래쪽길로 우회전하면 보이는 칠성동 할매칼국수(422-8101). 대구에선 ‘콩국수의 지존’으로 불린다. 여기로 옮기기 전에는 칠성시장 옆에 있었다. 이때는 간판도 없었고 영업시간도 이차연 할매 맘대로였다. 이젠 경영합리화를 꾀했다. 디자인도 생각하고 홈페이지까지 마련했다. 그런데 콩국물에 땅콩 등 견과류가 들어가 맑은 콩국물을 생각한 사람은 좀 부담스러울 것이다. 동절기엔 오후 6시까지만 영업.

대구 3대 할매칼국수도 기억하자. 달성군 하빈면 동곡장 한켠에 있는 동곡칼국수(582-0278)는 44년 역사를 가진 대구권 건진국수의 원조격. 면발은 서문시장보다 가늘어 굵은 중면 같다. 73년 문을 연 대구백화점 남쪽 골목 안 경주할매칼국수(425-2358)는 작고한 황금연 할매의 얼이 깃든 곳. 남구 대명2가 명덕로터리 근처에 있는 명덕할매칼국수(651-7969)는 손주연 할매의 손맛이 이어지고 꽁보리밥이 따라나온다. 영남대병원 옆 골목에 있는 미원칼국수(473-5977)도 내공이 있다.

가창 대림생수 옆에 있는 토담집 도토리칼국수(767-1326)는 일반 칼국수에 질린 마니아가 많이 찾는다. 묵은지 넣고 먹으면 또다르게 다가온다. 팔달교 지나 강북 쪽에선 태전동 순애집(312-9254), 달서구 쪽에는 도원동 보훈병원 옆 듬북칼국수(634-0563)와 부산 굴칼국수(636-1244) 등이 추천할 만하다. 경상감영공원 옆 포정동 상주전통칼국수(257-0502)도 단골이 많다. 향촌동 성인텍 골목에 가면 대구에서 가장 싼 2천500원짜리 잔치국수를 만날 수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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