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닭이야기(중)-삼계탕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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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6-28   |  발행일 2013-06-28 제42면   |  수정 2013-06-28
닭과 인삼이 만난 건 100년도 안돼…무라카미 류의 소설에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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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날 이열치열 보양식의 선두주자인 삼계탕. 이제는 해산물이 들어간 해계탕 등 약선요리 기법을 활용한 다양한 기능성 삼계탕 시대가 개막됐다. 사진 속 삼계탕은 황금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대동삼계탕.
삼계탕 먹기 전에 닭 상식부터 익혀 보자.

닭, 예전엔 가장 만만한 날짐승이었다. 소는 보물 같은 동력원이니 잡아먹는다는 건 언감생심. 삼복 철에는 개 아니면 닭을 갖고 개장을 끓여 먹었다. 개장은 보신탕의 옛말. 개장의 아들은 육개장, 또 그 아들은 닭개장 정도가 된다.

닭개장이 궁금하면 대구시 동구 불로동 ‘경주보양탕’으로 가면 원형을 알 수 있다. 셋 모두 결대로 찢어 내 국을 끓여 먹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닭백숙과 삼계탕의 상관관계에 대한 스토리는 그렇게 풍부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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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헌엔 한 번도 등장 안 해

1942년 조리서에 인삼가루 첫 등장

80년대에 대중화 89년엔 “계삼탕”

北에선 물 없이 쪄 최근엔


콩물·들깨 낙지먹물·누룽지 대나무·전복 등

기능성 퓨전 유행 별별 삼계탕 다 나와

굽는 삼계탕도…


경북선 영주 ‘풍기’

대구에선 금곡·백자 대동·약전 알아줘

◆역사 속의 삼계탕

조선시대 닭요리는 어땠을까.

1670년 발간된 국내 첫 한글 고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 연계찜(영계찜)과 수증계(닭찜) 레시피가 나온다. 수증계는 닭을 기름에 볶고 물과 밀가루를 부어 걸쭉하게 만든 뒤 갖은 채소와 함께 먹는 요리다.

19세기에 나온 ‘규합총서’에 따르면 삼계탕과 비슷한 음식이 나온다. 승기악탕과 칠향계다. 닭 속에 뭔가를 집어넣어 국을 만들어 먹는 음식이란 점에서 삼계탕과 유사하다. 물론 속에 들어가는 재료는 현재와 사뭇 다르다. 승기악탕에는 술, 기름, 식초 이외에 박고지, 표고버섯 및 돼지비계, 칠향계에는 도라지, 생강, 파, 천초, 간장, 식초, 기름 등이 들어간다. 현재 영주 시내에 ‘칠향계’란 상호를 가진 삼계탕 전문점이 있다.

조선 어느 문헌에도 인삼을 삼계탕 재료로 사용한다는 구절은 보이지 않는다.

인삼의 경우 18세기 중반 개성상인에 의해 재배가 본격화된다. 인삼이 흔하게 각인된 건 개화기 시대 이후부터라는 게 정설이다. 1942년에 발간된 조리서인 조선요리제법에 백숙 레시피가 등장하는데 지금 삼계탕과 비슷하다. 여기엔 인삼과 찹쌀이 등장한다. 인삼은 통삼이 아니라 인삼 가루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삼계탕이란 말이 대중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1989년 조풍연씨가 펴낸 서울잡학사전에 ‘계삼탕 만드는 법’ 설명이 나온다. 1951년 보건복지부 주요 음식 가격표에 ‘닭고음’이란 메뉴가 등장한다. 북한에는 ‘닭곰’이란 요리가 이와 비슷하다. 닭을 잡아서 내장을 빼고 그 안에 찹쌀과 황기, 밤을 넣고 찜통에 넣어 물 없이 오랜 시간 쪄 먹는다. 최근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쪽 기업가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삼계탕 명가를 찾아서

국내 삼계탕 붐은 언제부터 일어났을까?

대중적인 흐름은 1980년대 초중반에 형성된다. 삼계탕이 여름 보양식의 대명사로 떠오른 건 90년대 초부터다.

역시 일본관광객이 붐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일본인은 고려인삼에 혹한다. 지금도 인기 한식 선두군에 삼계탕이 속한다.

70년대 밀물처럼 들어오던 일본인 관광객이 삼계탕을 즐겨 찾으면서 이들을 겨냥한 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특히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는 자신의 소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에서 삼계탕을 대한민국 최고의 요리로 소개했다. 중국 영화감독 장예모는 ‘진생 치킨 수프’라 부르며 한국을 찾을 때마다 즐긴다.

요즘 별별 삼계탕이 다 등장한다.

서울에 있는 왕후장상 ‘두계탕’은 닭을 콩물에 삶은 삼계탕이다. 먼저 황기·엄나무·가시오갈피 등 5가지의 한방재료에 닭을 삶는다. 이어 비지를 걸러 낸 콩물을 넣고 다시 끓이면 완성이다.

서울 호수 삼계탕은 ‘들깨삼계탕’으로 유명하다. 진한 들깨 국물에 영계 한 마리를 빠뜨린 형상이다. 닭 머리와 발을 푹 곤 국물에 찹쌀·땅콩·들깨, 배를 꽉 채운 닭을 넣고 다시 1시간30분 정도 삶는다. 고소한 들깨 국물이 별미.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한 낙지집에서는 ‘먹물삼계탕’까지 개발했다. 이 밖에 구워서 내놓는 굽는 삼계탕도 있다. 인삼 성분이 들어간 소스에 숙성시킨 닭을 바짝 마른 옥수수알로 피운 불에 굽는 방식으로 조리한다. 조리 후에도 인삼 성분이나 향이 달아나지 않는다고 한다.

경기도에서 출발한 본가 장수촌은 ‘누룽지삼계탕’으로 떴다. 큰 접시에 닭 한 마리가 올려져 있고, 뚝배기에는 닭죽과 함께 노릇노릇한 누룽지가 큼지막하게 얹혀서 나온다. 삼계탕이라기보다 백숙에 가깝다. 조리 방법은 간단하다. 압력밥솥에 물과 함께 찹쌀과 녹두를 깔고 닭을 얹은 뒤 인삼·마늘·대추·밤 등을 넣고 푹 찌면 된다. 바닥에는 누룽지가 만들어지고, 국물은 졸아들어 먹음직스러운 죽이 완성된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너편 수림은 ‘대나무삼계탕’의 원조집이다. 왕대나무를 배처럼 깎아 불에 달군 돌을 깔고 그 위에 닭·인삼·전복·낙지를 얹으면 된다. 닭고기 외에 전복이 주로 들어가면 대나무전복삼계탕, 낙지가 주인공이면 대나무낙지삼계탕 등으로 불린다. 둘을 함께 사용하면 대나무전복낙지삼계탕이 된다.

이런 집은 대다수 기능성·퓨전 스타일이라서 롱런할지는 불투명하다. 대다수 중장년층은 역시 오리지널 삼계탕을 즐긴다. 국물도 심플하고 내용물도 간단하다. 깔끔하면서도 깊은 국물맛. 하지만 그렇게 빚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가장 오래된 삼계탕 전문점은 서울 중구 서소문동의 고려삼계탕(1960년 개업)이다.

이밖에 장안삼계탕(1971년·서울 중구 북창동)·강원정(1978년·서울 용산구 원효로)·토속촌(1983년·서울 종로구 채부동), 풍기삼계탕(1980년·경북 영주시 하망동)·금곡삼계탕(1989년·대구시 중구 공평동)이 블로거들에게 러브콜을 많이 받고 있다.

풍기는 이름과 달리 풍기 읍내가 아니라 영주 시내 경찰서 인근에 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함께 영업을 시작했다. 닭고기는 인근 양계장에서 5주 정도 키운 육계를 사용한다. 무게는 550~600g 정도. 50마리씩 솥에 넣고 센 불에 약 40분, 그리고 약한 불에 15분 정도 삶으면 완성이다. 닭의 배 속에는 4년근 풍기인삼·찹쌀·대추·밤·통마늘이 들어간다. 한약재를 넣어 보기도 했지만 색깔이나 맛이 달라 곧바로 포기했다고 한다.

특히 90년대 초 출발한 대구시 수성구 들안길 금산은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체인 삼계탕 시대를 개막했고, 지역에서 처음으로 개그맨 전유성을 앞세워 삼계탕 광고를 한 업소로 유명하다. 금산은 전복삼계탕 등 5종의 각종 삼계탕을 개발했다.



◆대구에서 삼계탕을 먹는다면

지역에서 가장 맑으면서도 깊은 맛을 가진 ‘4인방 삼계탕집’이 있다. 바로 금곡·백자·대동·약전삼계탕이다. 퓨전이 아니고 우직하게 옛날 스타일을 고집한다.

금곡은 대구백화점 인근 금싸라기 땅에 들어서 있다. 삼계탕집을 하기 전에는 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프렌치 레스토랑 ‘아비뇽’이 있었다. 건물 외벽은 온통 담쟁이덩굴로 뒤덮였다. 작지만 주차 공간이 있다. 육수는 아주 맑은 편이고 대추와 인삼만 넣는 게 특징.

대구MBC 남측 골목 안에 있는 백자는 14년 역사를 갖고 있는데 요즘 급상승하고 있다. 청송에서 직접 방목한 3천400원짜리 닭을 사용하고 8가지 잡곡과 황기, 당귀, 오갈피, 밤, 대추, 마늘 등이 속에 들어간다.

수성구 황금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대동은 옛날 삼계탕 국물 맛을 찾는 마니아가 애용한다. 특이하게 큰 닭 앞가슴살로 육수를 내고, 사람이 많이 몰려도 냉동은 맛이 급감한다고 해서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냉동을 하면 닭뼈 색이 검게 변한다. 부추무침에는 직접 짜 온 참기름만 사용한다. 3단계로 나눠 1시간 남짓 끓이는데 국물이 깔끔하면서 묵직하다.

약전골목 안에 있는 약전삼계탕은 ‘약령시 전속 삼계탕’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외국 관광객이 중구 근대골목 도심투어할 때 많이 찾는다.

이밖에 가리산, 연화정도 나름의 인지도를 갖고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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