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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의 대구 건립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지역미술계에서 간송미술관을 대구에 적극 유치에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때 대구미술사가 한국미술사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한국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던 대구미술의 저력을 간송미술관 건립 등을 통해 다시 한번 되살려내자는 미술인들의 바람이 그만큼 큰 것이다.
대구미술은 한국의 근대화단 형성에서 큰 영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정치를 포함한 대부분이 수도권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그 위상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문화예술 전반이 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지역미술계도 점점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3년 전 대구시립미술관인 대구미술관이 건립된 데 이어 국내 3대 사립미술관 중 하나인 간송미술관도 대구에 들어올 가능성이 커지는 등 지역미술계가 다시 활성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구미술의 저력, 현재 지역미술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최근 다시 활성화될 조짐을 보이는 지역미술계의 분위기 등을 3회에 걸쳐 연재함으로써 지역미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국내 3대 사립 미술관 ‘간송미술관’유치 총력
한국미술 주도 대구의 저력 또다시 주목
유명 작가중 대구출신도 많아 “부흥의 밑그림”
한국미술사에서 대구미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지역의 한 원로작가는 “서양화가 들어온 한국 근대미술역사를 중심으로 볼 때 대구미술사가 한국미술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한국미술역사에 대구지역 미술이 큰 영향을 주었다는 설명이다.
우선 한국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작가가 많다. 그리고 한국 현대미술의 활성화에서 기폭제 역할을 한 현대미술제 등 파급력이 강한 미술행사도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현재 한국미술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작가 중 대구출신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점도 대구미술의 저력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서양화 도입은 고희동이 일본 동경미술학교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15년을 원년으로 한다. 대구에 서양화가 들어온 것은 20년 이상정에 의해서 였는데 대구에 처음으로 서양화구를 들여왔고 최초로 서양화를 제작했다.
미술평론가 권원순씨는 “우리나라 서양화 도입과 5년의 간격을 두고 일본으로부터 직접 서양화를 도입하고 자생적으로 출발했다는 데 대구 서양화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찾을 수 있다.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은 화가들은 서양화를 많이 그렸는데 이들이 광복과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활발히 활동해 서양화는 어느 미술장르보다 활성화됐다”고 설명했다.
60년대 들어 지역 대학에 잇따라 미술학과가 생기고 여기에서 배출된 많은 작가의 활동으로 지역에서 서양화는 미술분야의 주축이 되고 국제무대에 활동을 벌이는 작가도 늘고 있다. 권씨는 “그 긴 역사만큼이나 미술대학에 서양화과가 많다. 또 작가의 숫자나 작품 수준에 있어 한국 제2의 서양화 도시로 볼 수 있을 정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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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출신의 미술인들. 한국 근대화단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이인성과 서병오를 비롯해 현재 국내화단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곽훈, 정강자, 주태석, 정종미 화가(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영남일보DB> |
근대미술사에서는 물론 현재 국내미술계에서 대구출신 미술인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한국 근대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대구출신의 서양화가 이인성과 서화가 서병오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천재화가로 불린 이인성은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시서화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서병오는 국내를 넘어 중국에서도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서양화단에서는 이인성의 스승인 서동진, 맨 처음으로 선전(1922년 조선총독부에서 연 국내 유일의 관전(官展)으로 당시 신인등용문이었음)에 5회 입선한 박명조, 선전에 10차례 가까이 입상해 전국에 이름을 날린 서진달·김용조 등도 근대미술의 탄탄한 디딤돌 역할을 했다. 서병오의 경우 1922년 교남시서화연구회를 설립해 대구가 시서화의 중심도시가 되는데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현재 한국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에도 대구출신은 많다. 국내는 물론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곽훈, 김수자, 이강소를 비롯해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 및 중견화가로 정강자, 주태석, 정종미, 구자환, 이수동, 김일해, 박일용, 김성호, 도성욱 등이 있다.
한국미술의 중심인 서울에서 큰 화랑을 운영하는 지역출신의 화랑주도 여럿 된다. 한국화랑협회 회장을 3번이나 역임한 권상능 조선화랑 대표, 제15대 한국화랑협회장을 지낸 표화랑 표미선 대표를 비롯해 미화랑 이난영 대표, 송아당 이정은 대표, 이목화랑 임경식 대표 등이 모두 대구 출신이다.
70년대 대구는 현대미술제로 다시 한번 한국미술의 중심축임을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전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가가 대거 모여든 ‘대구현대미술제’가 74년부터 79년까지 다섯 차례 대구에서 열렸다. 이강소 최병소 박현기 등 대구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 추진한 이 행사는 서울, 부산, 대전 등지에서 많은 작가들이 참여해 당시 언론에서 ‘전위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미술제는 전국 주요 도시에 현대미술제를 만들게 하는 기폭제 역할도 했다. 이를 벤치마킹해 서울현대미술제를 비롯해 강원, 부산, 광주, 전북, 광주, 전북, 강원 등지에서 현대미술제가 만들어졌다.
미술평론가이자 ‘대구근대미술산책’의 저자이기도 한 김영동씨는 대구미술의 저력에 대해 “대구근대미술을 아는 사람은 흔히 한국 근대미술사를 압축해 놓은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출중한 인재가 많이 나와 중앙에서 활약한 작가와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 많기 때문”이라며 “대구지역 미술을 빼놓고서는 우리 근대미술사를 연구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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