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누구를 위한 로스쿨인가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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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12   |  발행일 2015-05-12 제30면   |  수정 2015-05-12
[취재수첩] 누구를 위한 로스쿨인가

“법은 하나야. 나한테도, 당신한테도.”

최근 인상 깊게 본 ‘펀치’라는 공중파 드라마에 나온 대사다.

법은 하나다. 드라마에서 준법정신이 투철한 법무부 장관이 멋있게 던진 말이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의 아들이 병역비리에 연루됐단 사실이 밝혀진다. 장관은 “내 아들은 3대 독자”라며 구구절절 변명을 일삼는다. 타인에게 엄격한 법이 장관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했다.

최근 그 비슷한 일이 법을 집행하는 자와 법을 가르치는 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지난달 감사원이 ‘경찰청 기관운영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자료의 경우 평소 각주까지 읽는 편이다. 그런데 경찰의 로스쿨 재학 문제와 관련해 잘 보이지도 않는 세 줄짜리 각주에서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대구·경북경찰청 직원 11명이 112신고센터에 복무하면서 로스쿨에 재학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학업 강도가 세고, 무엇보다 성실한 출석이 뒷받침돼야 할 로스쿨 학업과 경찰 업무를 병행했다고? 그것도 112신고센터 소속 경찰관이?

취재 결과 문제의 대학 중 한 곳이 대구 K대 로스쿨이었다.

감사원 설명대로라면, 로스쿨에 다닌 경찰관은 근무 이탈이 없었다고 주장하니 결국은 K대 로스쿨이 경찰 재학생에게 학사관리의 특혜를 준 것이었다.

문제가 불거진 후 강신명 경찰청장은 “휴직을 하고 로스쿨을 다닐 수 있도록 규정을 보완하겠다. 공부하고자 하는 공무원이 로스쿨을 다니는 것은 정부가 권장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생업을 포기하지 않고 로스쿨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야간 로스쿨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면 이해했겠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법 전문성이 필요한 직종이 어디 경찰뿐이며, 휴직하고 공부하고 싶은 직종이 어디 경찰뿐이랴. 설령 강 청장 말대로 공무원이 로스쿨에 다니는 걸 정부가 권장해야 할 일이라고 해도, 아직 규정 개정 전 아닌가?

‘편법과 부정, 기만과 도덕적 해이, 자기합리화…’. 많이 배워 언변에 능하고, 법을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이 강한 것들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문제와 연관된 많은 이들이 여전히 문제점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신들이 로스쿨 졸업 후 판검사가 될 수도 있다. 스스로에게 관대한 이들이 어찌 남에게 엄격한 잣대를 댈 수 있겠는가? 당신들에게서 배운 이들이 유수의 법률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크고 작은 부당행위에 눈감는 이들이 어찌 법학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당신들은 정직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과, 직무에 충실한 경찰과, 근면성실하게 학업에 임한 로스쿨 학생들을 우롱했다.

법을 잘 알테니 그간의 부당에 대한 자신들의 공소시효는 스스로 정하라.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노진실 <1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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