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역사가 녹아있는 근대건축 .5] 구 도립대구병원(경북대병원 구관)

  • 이지용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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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10   |  발행일 2015-09-10 제7면   |  수정 2015-09-10
르네상스풍 외관에 고딕·기와 가미한 붉은 벽돌조 2층 건물
[대구의 역사가 녹아있는 근대건축 .5] 구 도립대구병원(경북대병원 구관)
경북대병원 구관은 1928년 경북도에서 도립대구병원 본관으로 지은 벽돌조 2층 건물이다. 건축 공사는 공정별 분할청부 방법으로 30여개 업체가 참여하였으며, 작업 연인원은 7만4천1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대구의 역사가 녹아있는 근대건축 .5] 구 도립대구병원(경북대병원 구관)
[대구의 역사가 녹아있는 근대건축 .5] 구 도립대구병원(경북대병원 구관)
1928년(위)과 1978년의 구 도립대구병원.



중구 동문동 대구 첫 공립병원 소실 뒤
1928년 삼덕동으로 이전하면서 신축

건축공사 공정별 분할청부 방식 도입
7만4천여명 투입…벽돌 232만장 쓰여
기초·바닥 구축엔 철근콘크리트 적용

건물 정면 중앙에 현관포치·옥탑 세워
좌우 벽면 세로창문 배열 대칭성 강조
내부 바닥·계단 인조석 물갈기로 마감


대구 최초의 근대적 의료기관은 1899년 12월 남성정교회(구 제일교회) 안에 문을 연 제중원(濟衆院)이다. 제중원은 1906년 동산동으로 이전하여 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일본인들이 개원한 의원은 대부분 민영의원으로 환자의 진료나 시설구비 등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어 국립 또는 공립병원의 설립이 요청되는 상황이었다.

1905년 여름, 일본 도쿄에 본부를 둔 동인회(同人會) 부회장 가타야마가 대구를 방문하여 일본 거류민과 대구지역 유지들에게 동인회의 취지와 사업 방향을 설명하면서 진료를 위한 병원 설립과 조선인 의사의 양성, 만주와 조선 주요 도시에 2~3개의 의원을 설립할 계획을 언급하였다.

당시 공립병원 설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대구의 일본인 거류민과 대구지역 유지들은 철도의(鐵道醫)로 개업하고 있던 후지나와를 앞세워 대구 동인의원 건축비로 5천엔 지원을 약속 받았다.

[대구의 역사가 녹아있는 근대건축 .5] 구 도립대구병원(경북대병원 구관)
경북대병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 도립대구병원(사적 제443호) 내부.

1906년 여름에는 동인회 부회장이 대구에 와 동인의원의 부지를 선정해 주고, 건축비 조달에 대한 절차를 결정해 줌으로써 대구동인의원의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1906년 8월 대구부 동문정(東門町·현 중구 동문동)에 대구동인의원 신축공사를 시작, 그해 12월 목조 단층건물을 완공하고 이듬해인 1907년 2월10일 진료를 시작하였다.

대구동인의원은 1910년 9월 조선총독부 지방관제에 의하여 ‘관립 대구자혜의원’으로 개편되고, 1925년 4월 조선도립의원 관제에 의해 경북도로 이관되면서 ‘도립대구의원’으로 개칭되었다.

도립대구의원은 1926년 3월 불의의 화재로 완전 소실되었다. 화재 이후 진료활동은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병원 본관이 소실된 직후부터 재건축을 둘러싸고 경북도는 물론 대구의 유지들 사이에서도 논의가 분분했다. 그해 4월25일 경북도지사가 총독부 재무국과 절충 끝에 병원 부지를 새로 마련하고, 화재의 염려가 없는 새 병원을 신축하기로 확정하였음을 발표하는 한편 자문기관인 경북도 평의회에서도 병원 신축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1926년 7월21일 개최된 경북도 평의회에서는 병원의 이전 신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거출문제, 신축건물의 규모와 재료, 장차 병원 부지 내 의학전문학교 설치를 고려하여 넓은 부지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것 등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이후에도 대구의학전문학교 승격 문제와 맞물려 수많은 논의가 이어졌다. 오랜 논의 끝에 병원 부지가 대구부 동운정(東雲町·현 중구 삼덕동)으로 결정되고, 1927년 6월 신축공사에 착수하여 1928년 3월30일 붉은 벽돌조 2층 건물을 준공하였다. 본관 건물이 신축된 후 동문정 구 병원에 남아 있던 건물들을 병원 본관의 동쪽으로 옮겨 이축·신축하고 1929년 5월 대대적 낙성식을 하였다.

광복 후인 1945년 10월에는 대구의학전문학교가 대구의과대학으로 개편됨으로써 도립대구의원은 ‘대구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이관되었고, 1952년 4월에는 경북대학교의 창립에 따라 ‘경북대학교 의과대학부속병원’으로 계승되었다가 1988년 3월1일 ‘경북대학교병원’으로 개칭되었다.

경북대학교병원 구관은 1928년 경북도에서 도립대구의원 본관으로 지은 벽돌조 2층 건물이다. 건물의 설계와 감독은 경북도 회계과 영선계에서 하고, 공사는 공정별 분할청부 방법으로 30여개 업체가 참여하였으며, 공사 작업 연인원은 7만4천1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된 벽돌은 총 232만장이었는데 외벽에 쌓은 벽돌만 부산요업주식회사에서 가져오고, 나머지는 모두 대구형무소에서 만든 벽돌을 사용하였다. 석재는 호남지방에서 생산된 황등석재(화강석)를 쓰고, 전등(펜던트, 샹들리에, 브래킷 등)과 전선은 일본 오사카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 당시 병원의 부지면적은 8천305.935㎡였고, 본관 건물안에는 각과 진료실 및 대·소수술실, 병리시험실, 뢴트겐실 등에 급수, 난방, 급탕, 소화설비 등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경북대학교병원 구관은 모임지붕에 기와를 이은 ‘一’자 모양의 붉은 벽돌조 2층 건물로, 의과대학 본관(구 대구의학전문학교, 1933)과 마주하여 북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외관은 전체적으로 르네상스풍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버팀벽(扶壁), 수직창 등의 고딕(Gothic)적 요소들이 부분적으로 가미되어 절충적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이 건물은 건립 당시 ‘L’자 모양이었으나 좌측으로 1칸을 달아내어 증축하고, 우측 날개 부분을 철거하여 현재 ‘一’자 모양을 하고 있다.

건물의 평면은 ‘一’자 모양으로, 가운데 복도를 둔 중복도식이다. 정면 중앙의 현관을 지나면 로비가 있고 이 로비의 앞쪽에는 계단실, 좌우측의 중복도 양쪽에는 여러 실(室)들이 남쪽과 북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2층 복도는 1층과 같은 위치에 있으며, 각 실들은 이 복도의 양쪽에 배열되어 있다.

건물 외관은 정면 중앙에 현관 포치(porch)와 옥탑(turret)을 우뚝 세우고, 그 좌우측 벽면은 일정한 간격으로 버팀벽을 세워 구획을 지우고, 그 사이에 세로로 긴 창(1층은 평아치창, 2층은 반원아치창) 한 쌍씩을 배열하여 정면성과 대칭성을 강조하는 한편 창문 위와 처마부에 화강석 다듬돌로 수평띠(cornice)를 넣어 안정감을 느끼게 하였다.

정면 주출입구는 사각형 벽돌기둥과 화강석 원기둥을 한 쌍으로 하여 좌우에 세우고, 그 위에 슬래브지붕을 올려 포치를 구성하였으며, 포치의 난간벽은 치형(齒形)장식을 한 화강석 돌림띠로 꾸몄다. 포치의 앞쪽에는 계단을 설치하고, 양 측면에는 경사로를 두어 자동차가 현관문 앞까지 이를 수 있도록 하였다.

옥탑은 지붕 위에 2층 높이로 올려 방형(方形)지붕에 동판(銅版)을 마름모꼴로 잇고, 지붕 꼭대기에 절병통을 설치하였다. 옥탑 1층은 4면이 모두 벽으로 막혀 있고, 2층은 4면에 세로로 긴 창을 내어 사방을 조망할 수 있게 하였다. 지금은 주변의 높은 건물들로 막혀 있지만 예전에는 이 창을 통해 대구 시가지는 물론 북쪽 멀리 있는 팔공산과 동쪽의 신천, 남쪽의 앞산까지 조망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건물의 구조는 벽돌조로, 외벽은 방한·방습에 대비하여 공간(中空)쌓기로 하고, 창문의 인방과 처마에는 화강석 다듬돌을 넣어 쌓았다. 기초와 바닥은 철근콘크리트로 구축하였는데 2층 바닥은 ‘井’자 모양의 보를 걸고, 그 위에 슬래브를 구성하였다. 내부 바닥과 계단은 인조석 물갈기로 마감하였으며, 벽과 복도의 천장은 회반죽 마감 위에 수성페인트를 칠하였다.

이 건물에 나타난 특징은 건축공사가 공정별 분할청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이전 시기의 건물들과는 달리 바닥과 포치의 지붕 등을 철근콘크리트로 구성한 것과 벽돌쌓기 수법 그리고 포치와 옥탑, 버팀벽, 수직창, 수평띠, 페디먼트(‘△’ 모양의 장식 모티브), 지붕창 등 다양한 서구적 형태요소를 채용하여 건물의 정면성과 대칭성을 강조하면서 위엄을 나타내고 있는 점이다.

경북대학교병원 구관은 지금까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한국 근대사와 건축역사 연구의 자료적 가치가 큰 건물로 인정받아 2003년 1월28일 사적 제443호로 지정되었다.

공동취재= 윤재웅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김수영 기자 sykim@yeongnam.com

■ 구 도립대구병원(사적443호)
주  소 대구시 중구 삼덕2가 50
건립연도 1928년
규  모 지상 2층, 연면적 294.76㎡
 <대구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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