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 대구의 '40' '20'에게 '대구'를 묻다 ①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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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22   |  발행일 2016-01-22 제33면   |  수정 2016-01-22
'상인의 도시' 상인의 셈법 잘 발휘할까
생생 톡톡…X세대(40대)에게 대구사람·대구의 정치란?
20160122
대구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기, 6·25전쟁을 거치면서 한때 ‘동방의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진보적 도시였으나 박정희 정권과 군사정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보수의 아성’으로 불리고 있다. 4·13 총선을 80여일 앞두고 위클리포유가 20대와 40대 대구 토박이들과 ‘대구발(發) 정치담론의 장’을 마련했다. 이들이 진단하는 대구는 어떤 도시일까. 대구시 중구 대구백화점 앞 동성로. <영남일보DB>

대구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1968년 사회과학자 최홍기는 대구사람의 사회적 성격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구사람은 권위적이고 전통적이며 폐쇄적이라고 했다. 이후 1980~2000년대까지 지역의 여러 사회과학자가 조사한 결과는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전통주의와 폐쇄주의는 옅어지는 반면 보수성과 배타성은 심화됐다. 스스로 버려야 할 의식이 보수성, 체면 중시, 연고주의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회과학자들은 이러한 정서가 정치적으로 나타나 보수정당을 선택함으로써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넘어 수구라는 오명까지 얻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68년 이전 대구사람도 그랬을까.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 대구는 정치적으로 ‘동방의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진보도시였다.

대구가 진보도시에서 보수도시로 바뀐 원인은 무엇일까. 대구의 X세대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 권상구, ‘소리공간’ 대표 김명환 , 문화기획가 전충훈씨를 통해 ‘대구’를 알아봤다. 강단의 학자가 아닌, 거리에서 대구를 공부해 온 40대 3명이 대구사람, 대구의 정치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들은 ‘내 쪼대로’의 쿨한 삶을 지향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대구지역 대학생 4명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대구’와 청년의 애환에 대해 들어봤다.

이제 40대 중반이 된 X세대는
다양하고 보편적이며 탈정치적
출세보다 ‘꼴리는 대로’ 산 세대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유행어 생겨난 것도 우리때였다
한총련 의장 연설은 뭉클했지만
우리 우상은 신해철·서태지였다

▲X세대의 총아였던 뮤지션 서태지가 이제 40대 중반이다. 90년대 젊은 세대를 대표했던 이들은 경제적으로 풍요했고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았으며 자기주장을 당당하게 내세웠던 세대다. 스스로가 느끼는 X세대의 특징은 무엇인가.

▶김명환 “90년대 X세대는 문화를 소비하는 세대였다. 음반이나 책도 처음 밀리언셀러가 나왔다. 대구의 음반판매량은 서울 다음으로 많다. 재즈, 클래식 등 장르도 다양하다. 하지만 부산은 그렇지 않다. 취업이 늘 힘들다고 하지만 우리 세대는 악을 쓰고 주류에 편승하기 위해 출세하기보다 소위 ‘꼴리는 대로’ 산 세대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란 말이 생겨난 것도 우리 세대 때다. 음악으로 말하자면 X세대 이전은 도제식으로 대중음악을 배웠지만 우리 때는 대학에서 실용음악이 등장했다. 음악을 해도 생계형이라기보다 즐기면서 했다. 서태지를 비롯해 유재석, 장동건, 배용준, 박진영 등이 동갑내기들이다. 하지만 운동권가요는 지금도 변한 게 없다. 제국주의를 경멸하면서 대부분 일본의 엔카 멜로디에 행진곡 리듬이다. 같은 저항음악이라도 밥 딜런이나 밥 말리, 레게 음악을 보라. 가사도 설득적이다. ‘너의 권리를 위해 일어나라’와 같이 보편적 감성을 자극한다. 우린 음악이 선전 수단이요 장식이란 느낌이다.”

▲X세대의 정치관은 어떠한가.

▶권상구 “386민주화 세대와 새천년 세대 사이 낀 세대다. 민주화세대로부터 학습했으며 대학자율화 세대다. 우리 세대는 시위를 통해 세상을 바꿔본 경험이 없다. 이전 세대는 거리에서 헌법을 바꾼 역사가 있다. 우리 세대 이전엔 대학 학생회는 이념으로 도배돼 있다시피 했다. NL과 PD로 나뉘어 있었다. 우린 열사의 세대가 아니다. 한총련 의장의 연설은 뭉클했지만 신해철과 서태지가 우상이었다. 하위문화라는 것, 서브컬처와 인디문화도 이때 생겼다. 시민사회에 정치가 깊숙하게 개입하는 것을 거부했다. 환경이나 인권문제, 제3세계에 관심을 가졌다. 영국의 에든버러축제를 모방한 프린지페스티벌이 1998년 대학로에서 ‘독립예술제’란 이름으로 시작됐다. 문화기획자란 명함도 이때 생겼다. 예총이 1세대라면 민예총은 2세대, X세대는 시민사회라는 제3섹터다. 4학년 때 경북대에서 총학생회 장례식이란 퍼포먼스를 주도한 적이 있다. 99년 서울대총학생회장에 힙합댄서 출신이 당선됐다. 다양하고 보편적이며 과격하지 않은 탈정치적 세대다.”

▶전충훈 “신문이나 방송 같은 전통매체보다 하이텔이나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을 보면서 세상의 소식을 들은 세대다. 한메일 계정도 이때 나왔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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