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시대?…통념을 깨는 中 위진남북조 시대 해석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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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26   |  발행일 2016-03-26 제16면   |  수정 2016-03-26
이민족들의 역할·공헌에 주목
불교·도교, 확산·영향력 분석
5∼6세기의 역사 긍정적 평가
분열기의 중국
혼란의 시대?…통념을 깨는 中 위진남북조 시대 해석

후한 제국이 무너지자 중국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다. 그러나 이 분열은 중국 문화권의 확장과 다양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특유의 박람강기를 동원해 그 복잡한 변화상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한나라와 당나라 사이 400여년 동안 중국은 지리적 정의가 바뀌었고, 외부 세계와 한층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가족의 모습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고 문학과 사회 영역에서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새로운 종교가 등장했다. 새로 개발된 양자강 유역은 쌀 생산 중심지로 부상했다. 문학은 수도를 벗어나 원림, 사찰, 전원 별장 등 새롭게 등장하는 사교 공간과 지역 문화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자기인식이 분명한 상류층 가문이 성장하자 물질적 부로 규정되는 전통적인 한나라 시대의 호족과는 다른 지배층 개념이 형성되었다. 후한을 무너뜨린 종교 반란 뒤에 새롭게 나타난 도교와 불교는 국가, 경제를 포함한 삶의 모든 측면에 변화를 불러왔다. 한과 당 사이의 수 세기는 이처럼 중국에 깊고 영원한 자취를 남겼다.

혼란의 시대?…통념을 깨는 中 위진남북조 시대 해석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 지음/ 조성우 옮김/ 너머북스/ 556쪽/ 3만원

후한 제국이 무너지고 수·당 제국이 다시 통일하기까지 400여년에 걸친, 흔히 ‘위진남북조’라 부르는 이 시대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을 어떠할까.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이민족이 중원을 점령한 미증유의 혼란기, 분열의 시대, 불교와 도교의 확산 같은 것이 아닐까. 게다가 수많은 왕조가 명멸한 탓에 전공자가 아니라면 각 왕조의 이름, 연도, 지역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 시기에 대한 중국의 지성사는 허무주의, 현실도피, 퇴폐처럼 부정적 표현으로 설명되곤 한다. 이는 기존의 중국사에서 통일되고 군사적으로 강성했던 시대를 중심으로 서술하려는 경향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이 시대의 역사가 무시된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북중국과 남중국의 지리를 새롭게 정의하며 유력 가문의 등장과 군사 왕조의 특징을 풀어낸다. 또한 이 시대의 내부에 밀착해 도시, 농촌, 가족, 종교,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중국 역사에 끼친 영향을 풍부한 서술과 간결한 정리로 쉽고 흥미롭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남북조 시대의 역사에서 비한족인 이민족들이 맡은 역할과 공헌에 주목한다. 중국이 항상 강력하고 중앙집권화한 왕조가 다스리는 지역이라는 기존의 통념과는 전혀 다른 곳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남북조 시대는 한국 고대사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한국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 풍부한 배경지식을 제공한다. 또한 수·당 제국이 다시 중국을 통일한 의미를 한나라 제국의 계승 혹은 부활이라고 주장했으나 사실 수·당 왕조는 5~6세기에 북중국을 지배했던 이전의 오랑캐 왕조에서 발전한 많은 제도와 관행을 흡수했음을 지적한다.

분열기의 중국, 남북조 시대는 과연 중국사와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저자는 남북조 시대의 가장 중요한 발전을 양자강 이남 지역에 전면적으로 진출하고 정착하면서 중국에 대한 새로운 지리적 정의가 이뤄진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유력 가문이 원림과 장원 등으로 새로운 권력지형을 만들었으며, 불교와 도교가 중국인 삶의 모든 면을 변화시켰다고 분석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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